불교학술원장 인환스님

후학 양성에 매진한
종단의 대표적 학승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스님은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강의하며 한국불교의 교학 발전과 후학양성에 매진한 종단의 대표적인 학승이다. 1952년 효선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인환스님은 1953년 석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6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특히 계사 석암스님과 인환스님의 인연은 각별하다. 단일계단이 시행되지 않았던 당시 자운스님과 함께 실질적인 전계대화상 역할을 도맡았던 석암스님은 인환스님이 계율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됐으며, 훗날 인환스님은 석암스님의 법을 이었다.
구족계를 수지한 인환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해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스님은 1968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대에서 ‘신라불교 계율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님으로는 최초로 일본 도쿄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이다. 도쿄대 졸업 후 모교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스님은 해외포교를 택했다.
해외포교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1970년대 인환스님은 숭산스님과 함께 북미포교에 나섰다. 숭산스님이 미국에서 선을 전할 때 인환스님은 캐나다 토론토에 대각사를 창건해 한국선불교를 전했다. 이곳에서 7년 여간 캐나다에서 교민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간화선을 지도했던 스님은 198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국대 교수로 있던 지관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으로부터 급하게 귀국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귀국한 스님은 1982년 동국대 교수 소임을 맡아 모교로 돌아왔다. 이후 스님은 후학들을 지도하며 불교대학원장과 불교문화연구원장, 정각원장 등을 역임해 학교발전을 이끌다 지난 1996년 정년퇴임했다.
최근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장과 동국역경원장으로 복귀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년퇴직한 지 15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스님은 한국불교학 관련 문헌을 집대성하는 ‘21세기 통합대장경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서울 경국사에서 28년째 주석 중이다.
고운사 조실 근일스님

참선법회 선풍 진작
고운사 사격 ‘일신’
제16교구본사 고운사 조실 근일스님은 참선법회 등을 통해 선풍을 진작시켜 고운사를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사찰로 만든 스님이다.
도원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근일스님은 1961년 은해사에서 도원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7년 해인사에서 성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극락선원에서 경봉스님을, 해인사에서 성철스님, 묘관음사에서 향곡스님, 용주사 중앙선원에서 전강스님을 모시고 수행하는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한 근일스님은 고운사 주지 취임 이후 매월 말 철야참선법회를 주도, 새롭게 선풍을 진작시켰다.
특히 근일스님은 말기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뜸과 정진으로 병을 극복할 만큼 용맹정진하는 수좌다. 스님은 ‘평소 화두를 깨치면 생사를 여윈다’고 법문해 놓고선 내 정진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의사의 수술에 의지해야겠냐는 생각이 들어 병원 수술 대신 뜸과 정진만으로 완쾌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또한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몸에서 고름이 나오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화두를 놓지 않고 정진했다. 선방에서 함께 정진하던 도반스님들이 성냥으로 고름을 뽑아주고 나병환자들이 먹는 약을 먹을 만큼 전신에서 고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스님은 병을 치료하라며 성철스님이 준 5000원이라는 당시 굉장한 거금을 갖고서도 인근 기독교병원에 삼보정재를 줄 수 없어 병원행을 포기하고 뜸과 약으로 병을 치료했다. 음식만 먹으면 가려움이 더해져 단식을 했다. 화두를 들 때 이빨을 꽉 깨물고 참선하다보면 3~4시간 후면 선정에 들고 아픈 것도 가려운 것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고 회고할 만큼 수행을 함에 있어 반틈을 보이지 않았다. 이같은 값진 경험을 통해 스님은 “정말 공부하려고 하면 다 도와준다”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체득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근일스님은 제9~12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조계종 재심호계위원 등 종단 주요소임을 맡아 종단발전에 이바지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능인중고등학교 이사와 이사장을 맡는 등 청소년포교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부은 스님은 현재 고운사와 부석사, 삼보사 조실 소임을 맡아 후학을 양성하며 지역불교 발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영주암 회주 정관스님

평생 미래동량 양성
‘어린이포교 원력 실천’
부산 영주암 회주 정관스님은 평생 한국불교의 미래동량을 양성하는 어린이포교에 매진한 스님이다. 1954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정관스님은 1954년과 1957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을 수료한 뒤 1955년 범어사에서 수선안거 이래 제방선원에서 14안거를 성만한 뒤 본격적인 포교활동에 뛰어들었다.
정관스님의 행장은 화려하다. 지역포교 뿐만 아니라 어린이포교, 복지포교 등 포교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다. 포교에 대한 일반적인 원력이 부족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부터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한 원력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대학생 등 계층포교와 불교언론과 사회복지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불법을 홍포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정관스님은 범어사와 쌍계사 주지, 부산시 불교연합회장, 학교법인 금정학원 이사장, 대한불교신문 이사장, 불심홍법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포교에 앞장섰다.
스님은 어린이포교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 부었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포교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와 사단법인 동련 등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어린이포교단체의 창립에 참여하지 않은 단체가 없다고 단언할 만큼 스님은 어린이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스님은 부산불교학생연합회 초대회장, 부산불교어린이지도자회 초대회장,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 초대회장, 부산불교고등학생연합회 총재, 영주암유치원 초대원장 등을 역임하며 어린이와 청소년포교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같은 어린이포교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06년 제18회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님은 사회복지법인 불국토 이사장과 재단법인 불국토청소년도량 이사장 등을 거쳐 현재 사단법인 불국토 이사장 소임을 맡으며 지역민을 위한 복지증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스님은 은사 동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조석예불과 대중공양, 마당쓸기의 일과와 함께 참선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정진하고 있다. 아울러 선찰대본산 범어사 내 암자인 영주암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은 불자들을 위한 시민선원을 열어 불자들의 수행정진을 점검,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간화선의 길>, <화두는 나의 전 재산이다>, <죽음이 없는 선의 길>등 10여권이 있다.
전 교육원장 암도스님

전국 방방곳곳 설법
‘이 시대 부루나존자’
전 교육원장 암도스님은 ‘설법의 달인’과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 등으로 불릴 만큼 가는 곳마다 쉽고 재미있게 법회를 이끄는 부루나 존자다.
천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암도스님은 1955년 백양사에서 덕림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암도스님은 ‘절집에도 현대교육을 받은 스님이 절실하니 대학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받아들여 서른이 넘는 나이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진학해 학업에 매진했다. 학사와 석사에 이어 ‘인도불교의 삼학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설법제일 부르나 존자로 비유에 비유되는 암도스님은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부처님 법에 목마른 불자가 요청하면 전국 어디던지 달려가 설법하며 불법을 홍포하고 있다. 스님은 머리를 설득하기 위한 설교는 일회성에 그치는 만큼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감화가 있는 법문을 위해 법문내용을 미리 수첩에 정리하는 등 법문준비에도 소홀함이 없다.
법문내용을 적던 스님의 작은 수첩에는 어느덧 법문내용이 아니라 법문일정만으로도 빈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설법을 또 다른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스님은 “어림짐작으로도 법문횟수가 6000회가 넘은 지 오래”라고 밝힐 만큼 여느 스님보다 설법을 강조하며 법문을 이어가고 있다.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전국을 누비는 분주한 가운데도 조계종 총무원 감찰국장을 시작으로 총무부장, 교무부장, 총무원 부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등 25년간 종단 내외의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정성을 다하는 가운데 ‘지킴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동국대 선학과 강사에 이어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동국대 정각원 상임법사, 교육원장 등을 맡아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백양사 주지 소임을 살며 교구발전과 더불어 지역포교에도 앞장서기도 했다. 종단 소임을 마친 뒤 다시 주지 소임을 맡았던 백양사로 돌아온 스님은 운문암과 청량암에서 정진한 뒤 현재 담양 마하무량사에서 주석하고 있다. 스님은 1986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서훈했으며 저서로는 <변하는 것은 변치 않고 변한다>와 <불교의 근본진리> 등이 있다.
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불교신문 2713호/ 4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