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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원로 비구니 세주당 묘엄 명사의 영결식이 지난 6일 수원 봉녕사에서 사부대중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신재호 기자 | ||
지난 6일 수원 봉녕사 우화궁 앞에서 봉행된 묘엄명사의 영결식에는 5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해 스님의 가는 길을 장엄했다. 특히 법전 종정예하가 법어를 내리는 등 비구니 스님의 영결식으로는 이례적으로 종단장에 준한 의식이 전개돼 묘엄 명사가 종단에 끼친 업적을 방증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진제스님, 전계대화상 고산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등 원로 스님을 비롯해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 교육원장 현응스님,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등 종단 주요 인사들도 참석해 묘엄 명사의 입적을 추모했다.
원로·교구본사 주지 등 대거 참여
종단장 준하는 의식으로 업적 기려
더불어 전국비구니회장 명우스님, 운문사 승가대학장 명성스님, 청암사 승가대학장 지형스님 등 비구니 원로들도 대거 참석했다. 종단 내부뿐 아니라 사회적인 회향에도 매진한 묘엄 명사의 원적을 추도하기 위한 정.관계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명종 5타로 시작된 영결식은 총무원 문화부장 진명스님의 사회로, 삼귀의와 조계종 어장 원명스님의 영결법요, 문도대표와 전계.전강제자의 헌다 헌향, 화성 신흥사 주지 성일스님의 행장 소개 등으로 진행됐다. 이어 추도입정 순서에는 묘엄 명사의 생전모습이 화면에 비치며 참석대중의 환희심을 더했다.
참석대중들은 묘엄 명사가 하루속히 사바세계에 다시 나타나 중생을 제도할 것을 바랐다. 법전 종정예하는 원로의원 진제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오늘 명사는 적멸을 통해 해탈의 자유를 얻어 임운자재(任運自在)하게 됐다”며 “주인옹(主人翁)으로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소식을 일기일경(一機一境)으로 한번 나투시라”고 전했다.
전계대화상 고산스님은 “오늘은 스님께서 평생 교육도량으로 일구신 이곳 봉녕사에서 스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모여 법향을 피워가며 스님을 애도한다”며 “속환사바하셔서 광도중생하시기를 바란다”고 추모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추도사를 통해 “묘엄 명사님은 마지막까지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고 가르침을 남겨주신 진정 우리들의 사표이며 생사에 자재하셨던 선지식”이라며 “스님께서 다시 오는 날 대웅전 앞 800년 향나무는 스님의 향훈을 잊지 않고 기뻐하며 맞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이밖에도 교육원장 현응스님과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이날 조사를 낭독한 운문사 승가대학장 명성스님의 심경은 더욱 각별해 보였다.
명성스님은 “통도사 보타암과 진주 도솔암에서 운허스님께 경학을 배우던 도반스님, 함께 동고동락했던 과거가 생각나지 않습니까”라고 회고하며 “구름이 떠다니지만 하늘은 본래 고요하고, 꽃이 피었다 지지만 나무는 항상 한가하다는 말이 있듯이 스님은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고 애도했다.
영결식 후 묘엄 명사의 법구는 경내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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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엄 명사의 다비식 모습. 신재호 기자 | ||
■ “불 들어갑니다…어서 나오세요”
명사 법구, 추모 서원 담은 만장따라
소박하면서 꾸밈없는 연화대 오르다
묘엄 명사의 법구는 사부대중의 추모와 서원 글을 담은 색색별 만장을 따라 다비장으로 향했다. 인로왕번이 앞장선 운구행렬은 다비장까지 가는 길의 좌우로 도열한 사부대중의 마중을 받았다.
5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운구행렬은 묘엄 명사의 40년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봉녕사 곳곳을 돌아 다비장에 당도했다.
스님의 법체는 꽃종이로 꾸며진 연화대로 옮겨졌다. 평소 묘엄 명사의 성품을 반영한 듯,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연화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법구가 연화대에 안장되자 사부대중들도 연화대를 중심으로 둘러섰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며 합장하던 대중들은 거화봉에 불이 붙자, “불 들어갑니다. 스님 나오세요”를 연신 부르짖으며 묘엄 명사가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중생을 구제해달라고 기원했다.
“불 법 승” 외침과 함께, 불을 붙이는 거화의식이 거행되고 연화대에 불길이 오르자 참석대중은 묘엄 명사가 연기로 화해 하늘로 날아가는 마지막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배웅했다.
한편 묘엄 명사의 49재는 12월8일 초재를 시작으로, 12월15일과 22일, 29일, 2012년 1월5일, 12일을 거쳐, 마지막 7재인 19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10시30분 수원 봉녕사에서 봉행된다.
■ 종정예하 법어
“대기대용으로 용무생사의 격외시적을 보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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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 법전 / 조계종 종정 | ||
명사(明師)의 입적(入寂)은 본처(本處)로 환귀(還歸)함이요, 본분(本分)의 참모습을 나툰 것입니다. 그러나 명사(明師)가 이룩한 적멸(寂滅)속에는 생사(生死)를 따르지 않고 오고 감이 없는 일점영명(一點靈明)이 있습니다.
이 일점영명(一點靈明)은 중생(衆生)과 부처의 근본(根本)이요, 명사(明師)의 본분(本分)입니다. 일점영명(一點靈明)이 인연(因緣) 따라 형상(形象)을 의지하면 묘엄명사(妙嚴明師)요 견문각지(見聞覺知)를 거두면 공적(空寂)하고 응연(凝然)할 뿐입니다.
이렇게 소소(昭昭)하고 영명(靈明)한 이 자리에 누가 생사(生死)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명사(明師)는 적멸(寂滅)을 통(通)해 해탈(解脫)의 자유(自由)를 얻어 임운자재(任運自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안락(安樂)을 누리니 얼마나 즐거우시고 태어남의 고통도 소멸(消滅)의 슬픔도 없이 오고감이 없는 적정(寂靜)을 누리시니 얼마나 평화(平和)스럽습니까.
이제 근진(根塵)을 벗어났으니 가는 곳 마다 원통자재(圓通自在) 하셨던 그 주인옹(主人翁)으로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소식(消息)을 일기일경(一機一境)으로 한 번 나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기대용(大機大用)으로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격외시적(格外示跡)을 한 번 보이십시오.
이 가운데 명사(明師)의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원음(圓音)이 있으니 이 자리에 모인 대중(大衆)은 듣고 있는가?
창천(蒼天), 창천(蒼天)이도다.
■ “청정수행의 표상” 조사<요약>
명성스님(운문사 승가대학장)
스님께서는 80여 년을 사바에 머무시면서 비구니 수행과 교육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비구니 명사(明師)로서, 봉녕사 승가대학 학장(學長)으로서 한국 비구니 교단과 교육계를 이끌었으며 비구니 전계화상(傳戒和尙)으로서 후학들에게 청정수행(淸淨修行)의 표상(表象)이셨습니다.
스님은 교(敎)의 바다에서는 지혜의 돛대요, 선림(禪林)에서는 무명을 깨우치는 목탁이셨습니다. 그런데 무언(無言)의 본분(本分)만 보이시니 비구니계의 큰 별이 떨어진 것입니다.
운거운래천본정(雲去雲來天本靜)이요 화개화락수상한(花開花落樹常閑)이라
구름이 떠다니지만 하늘은 본래 고요하고, 꽃이 피었다 지지만 나무는 항상 한가하다는 말이 있듯이 스님은 결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묘엄스님!
오늘 모인 저 많은 사부대중의 흐느낌을 저버리지 마시고 속히 사바에 돌아오시어 재재처처(在在處處)에서 미혹(迷惑)한 중생을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불교신문 2775호/ 12월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