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복 지음 / 책만드는집
이상복(63) 대구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세 살배기때 엄마를 잃었다. 그후 60여년 세월을 홀로 걸으며, “하늘로 떠난 엄마가 단 하루만 나에게 온다면 서러웠던 일들을 온종일 다 일러바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엄마가 나타났다. 2004년 11월30일. 지인을 따라 생전 처음 갔던 청도 운문사 다실에서 만난 당시 운문사승가대학 학감 일진스님(現 운문사 주지)이다. 말없이 정갈하게 앉아 차를 우려준 일진스님이 다시 살아돌아온 엄마다.

속가나이로 이 교수보다 서넛살 적은 비구니 스님이 엄마라니. 이들 인연도 참 기이하다. 다리가 돼준 사람은 이 교수를 운문사로 이끈 그 지인이다. 그녀는 운문사에 다녀온 뒤 무뚝뚝하고 낯가림이 심한 이 교수에게 일진스님의 연락처를 들이대며 차를 잘 마시고 왔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보름 가까이 지난 뒤 독촉에 못이긴 듯 용기를 냈다.

이상복 대구대 교수, 청춘 향한 희망메시지

일진스님 인연으로 말기암 극복 기적의 삶

“부르고 싶은 엄마 실컷 부르며 행복 만끽”

“스님, 지난번에…” 이 교수의 한마디에 일진스님은 “아, 그때 교수님! 학생 목소리 같아서 누군가 했어요!”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스님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밝은데다 다정함이 묻어났다. 이후 부쩍 가까워진 비구니 스님과 여교수.

한번은 이 교수가 대형 연구 공모과제를 내고 나서 스님께 기도를 부탁했는데, 별따기처럼 어려운 관문을 떡하니 통과했다. 아마추어 역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운세에 도끼가 들어왔다며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때도 스님은 기도해서 다 막아준다고 했고, 지금까지 멀쩡하다. 이런 사연은 사실 좀 코믹하다.

일진스님이 이 교수의 ‘진짜 엄마’가 된 것은 2008년 6월, 이 교수가 유방암 4기 진단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나서부터다. 그 해 여름방학 45일 내내 스님은 이 교수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를 돌봤다. 간섭받는 것을 못견뎌하는 그녀는 스님과 한달 보름을 살면서 문화와 정서적으로 충돌했다. 이것은 먹어야 하고, 저것은 먹지 말고…. 스님의 말이 끝없는 잔소리로 들렸을 때 그녀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졌다.

“정말 엄마같이 잔소리가 많으십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온 스님의 즉답. “그럼 엄마 하세요!” 기적의 순간은 그렇게 왔다. 이 교수는 그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스님이 세 살 아기의 엄마로 자신을 내어주는 그 순간에 기적은 마무리되었다.…내가 단 하루의 엄마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은 부처의 자비나 예수의 사랑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보채고 떼쓰고 콧물로 칭얼대며 엉터리 세상사를 종일 일러바쳐도 ‘그랬-쪄-어?’하는 오직 순백의 엄마가 필요했다.”

스님이 이 교수의 ‘진짜 엄마’가 된 날, 엄마는 “세 살 아가니까 다 해준다”는 약속을 남기고 개학을 맞아 운문사로 떠났다. 엄마가 생겼지만 엄마라고 부르기가 어디 쉬우랴. 이 교수는 다음날 60년만에 처음 전화기를 통해 ‘엄마’를 불렀다.

아침 식탁에 참기름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걸었던 전화다. “여보세요”하는 스님의 목소리에 다짜고짜 말했다. “엄마, 참기름 떨어졌어.” 그날 오후 ‘엄마스님’은 한꺼번에 참기름 여섯병을 싸들고 60이 넘은 딸 앞에 나타났다.

“한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일진스님을 ‘스님’ 아닌 ‘엄마’라고 불렀을 때, 스님은 나에게로 와서 나의 엄마가 되었으므로!”

   
운문사 주지 일진스님(사진 왼쪽)과 이상복 대구대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녀(母女)’다. 사랑과 감사로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면서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간다.
이 교수의 암덩어리는 기적처럼 나타난 ‘엄마스님’처럼 기적같이 사라졌다. 길어야 1년 산다는 병원에서 “100명 중 2명 정도가 이렇게 만족스럽게 치료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지와 마음의 평화가 곧 기적의 동력’이라는 친구들의 조언이 준 힘, 온종일 차가버섯을 달이고 느릅나무 뿌리를 달이고, 온갖 야채즙을 달이고 달인 ‘엄마스님’의 정성이 맺어준 결실이다.

이 교수는 이제 유방암 4기를 뛰어넘고, ‘제4기의 청춘’을 맛보고 있다. 부르고 싶은 엄마를 실컷 불러보면서, 좋은 것만 취한다. 일은 무엇이든 버리고 노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사람 만나기를 가려 시비를 만들지 않고, 햇빛과 바람, 새들의 노래로 풍요를 즐기면서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으면서 산다.

지난 11월11일 저녁 대구 인터불고호텔. 이상복 교수의 삶과 아픔, 기적을 담은 책 <청춘의 위로와 긍정>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300여명에 달하는 하객 중 대다수가 이 교수의 금쪽같은 도반이자 기둥이 되어준 동료 선후배 교수들과 제자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과의 특별한 인연을 꺼내 정성껏 소개하며 감사인사를 전하는 그녀는 60여년의 삶을 참으로 건강하게 살아온 듯 행복해보였다. 맨 앞 내빈석에는 10여명의 운문사 스님들이 모여앉아 이 교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전 전국비구니회장 명성스님도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왔다. 빨간 저고리의 계량한복을 차려입은 이 교수는 “(암선고를 받았던)2008년 추석 때 연구소 직원들이 마련해준 옷”이라며 “과연 살아서 이 옷을 입고 이런 귀한 자리에 설 수 있을까, 그때는 자신이 없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더니 어린애같은 목소리로 이 교수는 “엄마아…!”라고 불렀고, 일진스님은 기다렸다는듯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이 교수를 안아줬다. 엄마처럼. 스님은 이 자리에서 ‘화두’를 하나 던졌다. “여러분, 꿈이란 꿈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나의 딸 이상복 교수와 저를 보면서, 주저하지 말고 기적같은 꿈을 꾸어보시면 어떨지요.” 

[불교신문 2775호/ 12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