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기술한 <삼국유사>는 명실상부한 전통문화의 보고다. 그러나 숭유억불을 국시(國是)로 내세운 조선 왕조는 일연스님의 역작을 정사(正史)의 뒤편으로 밀어냈다.
소중화(小中華). 중국에 대한 동경심과 불교에 대한 적개심으로 무장한 유교 이데올로기는 국조(國祖) 단군과 스님들의 보살행을 신화나 패담으로 깎아내렸다.
이즈막 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군위 인각사도 팔을 걷어붙였다. 일연스님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저술했던 사찰이다. 인각사는 국민들에게 삼국유사의 진면목을 알릴 방법으로,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뮤지컬을 택했다.
주지 도권스님 ‘직접’ 대본 작사·집필
지역민 의기투합 “우리 고향 다시 일으키자”
지난 20일 경북 칠곡에 위치한 대구예술대학교 강의실. 삼국유사 뮤지컬 ‘수로부인’ 연습이 한창이다. 오는 8월7일 오후 6시 인각사 학소대 수변무대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수로부인.’
미실과 선덕여왕에 버금가던 여걸 수로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삼국유사에 소개된 향가 ‘헌화가(獻花歌)’의 주인공이다. 연습실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참관하던 인각사 주지 도권스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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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은 재작년 ‘손순매아’와 지난해 단군에 이어 인각사의 세 번째 삼국유사 뮤지컬이다. 도권스님에게 수로부인은 유난히 애착이 가는 공연이다. 당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작사를 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밤새워 희곡을 쓰던 문학청년의 기억을 되살려, 1년여의 산고 끝에 옥고를 세상에 내놓았다.
틈틈이 대본을 쓰면서 공식 오디션을 열어 대구지역의 유능한 배우들을 모았다. 제작진 역시 달구벌의 명인들로 구성됐다. 노래패 ‘시노래풍경’에서 활동하는 진우 씨가 곡을 썼고, 무용은 김나영 아리무용단이 맡았다. 유자효 시인이 작사가로 참여했고, 음악은 백진우 재즈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한다.
벼랑에서 꽃을 꺾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실경(實景)을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인각사의 명물인 학소대 절벽을 무대로 삼았다. 도권스님은 수 천 만원의 비용과 그에 값하는 발품을 팔아가며 신명을 다해 공연을 준비했다.
“삼국유사는 한국인들에겐 마음의 고향과 같다”며 “삼국유사의 탄생공간인 인각사에서 그간 잊고 있던 민족정서의 원형을 보여주겠다”는 스님의 출사표에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
물론 인각사의 뮤지컬은 주지 스님 한 사람의 원력이 아닌 모두의 결사라 이름 할만하다. 공연 당일 3000여명의 참배객들에게 베푸는 저녁공양은 모두 인각사 신도회와 군위군 고로면 청년회가 마련한다. 무대장치를 만드는 일을 비롯해 교통정리와 주변청소 자원봉사도 이들의 몫이다. 연습 도중에도 출연진의 잔심부름을 도맡으며 성공적인 공연을 거들었다.
군위는 경북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도권스님에 따르면 2만6000여 명의 군민 가운데 불자는 1000명 남짓이다. 인각사 최연소 신도의 나이는 58세. 아울러 고로면 인구 1400명 중 청년회 회원은 고작 24명이다.
그마저 40대 이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편.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농촌경제의 쇠락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지표다. 결국 삼국유사를 통해 군위를 다시 일으키자는 주지 스님의 설득에 흔연한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진명스님은 “우리 스스로 삼국유사의 가치를 무시한 반면, 인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유출된 삼국유사는 일본 왕의 필독서로 선정되는 희유한 일이 벌어졌다”며 “인각사와 군위군에서 우리 민족문화를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는 문화운동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누구나 공감하는 문화적 자랑을 매개로 한 소통과 화합, 흥겹고도 살가울 결실이 기대된다.
■ 뮤지컬 ‘수로부인’
‘말괄량이’캐릭터 주인공
8월 7일 인각사 학소대서
고대 남녀평등 재조명 눈길
신라 제33대 성덕왕 당시 강릉태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과 얽힌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수로부인’으로 분할 주연배우 권미희 씨는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전수자다. 올해 부처님오신날 산사음악회에서 멋진 판소리를 선보여 주지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수로부인을 위해 꽃을 꺾어 바치는 견우옹은 조성진 마임씨어터 빈탕노리 대표가, 수로부인의 연인인 ‘순정’은 고봉조 경산1대학 방송연예과 외래교수가 맡았다.
무엇보다 삼국통일 이후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퇴색했던 고대 신라의 남녀평등 사상을 재조명해 관심을 모은다. 극중의 수로는 화랑이 되기를 꿈꾸는 말괄량이다. 유교이념을 강요하는 순정과 남녀평등을 굽히지 않는 수로의 신경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는 수로의 내면을 해학적인 필치로 담았다.
대본을 집필한 도권스님은 “유교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았던 수로부인은 시쳇말로 말하면 ‘대가 센 여성’의 캐릭터”라면서도 “이면에는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여성상으로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불교신문 2740호/ 7월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