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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0일 입적한 현종스님의 100재(9.17)를 앞두고 현종스님과 가장 가까웠던 도반 지원스님이 현종스님을 추모하면서 옛 이야기를 털어놨다. 부산 문수암 주지 지원스님은 지난 2007년 총무원 사회부장 소임을 맡았을 때 당시 교육원 불학연구소장으로 있었던 현종스님과 ‘단짝’처럼 가깝게 지냈다.
지원스님은 “총무원에서 교역직 종무원으로 일하다보면 정서적으로 삭막해지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현종스님과 마음을 나누고, 종무행정을 상의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다”며 “(현종스님은)참으로 야무지고 성실하고 진솔한 스님이셨다”고 회고했다.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신뢰를 받았던 지원스님은 “가끔 총무원장 스님으로부터 결제받기 어려운 내용이 생기면, 내가 대신 원장 스님의 결제를 받아다 주기도 했다”며 재미있는 추억담을 밝히기도 했다.
“틈틈이 사회부장실에서 차를 나눠 마시며 종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도 하고, 종단의 정체성과 간화선 보급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죠. 현종스님은 나보다 훨씬 애종심이 컸고, 미래불교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셨습니다.”
현종스님은 2005년부터 5년간 불학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승가대학 교재편찬 작업을 비롯 간화선선센터 운영, 간화선 지도자 양성, 선원 공동청규제정 지원사업 등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
명상수행에 대한 현종스님의 열정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했다. 지원스님은 “명상문화연구원을 만들기까지 참으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며 “현종스님은 세계의 흐름은 명상으로 모아지는 추세라고 보고 명상포교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현종스님은 2009년 사단법인 명상문화연구원을 설립하고 불자들에게 명상을 보급하고 명상포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원스님에 따르면 건강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돼 입원치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현종스님은 명상문화연구원 수료식을 마치고 병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은사인 세민스님과 상좌들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현종스님을 꺾을 수 없던 차에, 세민스님은 절친한 도반 지원스님에게 설득해주길 청했다.
“그때 만난 현종스님의 안타까운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현종스님은 괜찮다면서 곧 일어날 거라며 오히려 저를 다독여주셨어요.”
지원스님은 그 당시 은사 세민스님의 모습에도 감동을 받아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세상 어느 은사가 상좌 하나 살리려고 저토록 발버둥 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민스님은 중국에서 치료를 잘하는 데를 알고 있다면서 중국에 데려가 내 상좌를 꼭 살리고야 말겠다면서, 자꾸 치료를 거부하는 현종스님을 저더러 설득해달라고 눈물어린 당부를 하셨습니다.”
현종스님이 입적하기 전 잠시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해서 지원스님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잠시 부산 문수암에 내려왔고, 그 사이 현종스님은 먼 길을 떠났다. 지원스님은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곁에서 계속 지켜드렸어야 했는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원스님은 영결식날 운구행렬 맨 앞에 서서 현종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지원스님은 “짧은 세월이지만, 쉼없이 절차탁마한 수행력으로 종단에 그리고 한국불교에 크게 기여한 위대한 나의 도반, 현종스님…”이라며 끝말을 흐렸다.
[불교신문 2751호/ 9월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