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토요 철야정진에서 <보왕삼매론> 십대애행을 독송하며 수행 정진을 다짐하는 불자들의 모습.

‘여름밤과 구미호’. 여름철이면 TV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납량특집 공포물의 주제 같지만 한 사찰의 철야정진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탐.진.치, 삼독인 ‘구미호’를 쫓아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서울 조계사 선림원(원장 토진스님)은 ‘여름밤, 구미호를 쫓다!’를 주제로 철야정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선의 대중화를 위해 하안거 기간을 맞아 선림원이 기획한 것으로, 지난 6월4일부터 오는 8월1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9시부터 다음날 새벽4시까지 진행되는 참선 정진프로그램이다. 총 11회로 진행되며 불자들은 물론 참선에 관심 있는 이들은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여름밤, 구미호를 쫓다!’ 여섯 번째 마당이 펼쳐진 지난 9일 조계사 대웅전을 찾았다.

하안거 맞아 참선 대중화 위해 기획

문화공연과 참선 프로그램 접목 인기

8월13일까지 매주 토요일 정진

계속되는 장맛비로 습한 날씨와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웅전에는 시작 전부터 100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자들은 물론 종교가 없는 일반인들부터 이웃 종교인도 정진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웅전 중간 중간 외국인 참가자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대웅전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땀이 저절로 흐를 만큼 습한 날씨였지만 참가자들은 모습에는 빈틈이 없었다. 도심에 위치한 조계사 일주문을 경계로 사찰 안과 밖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온갖 욕망과 유혹으로 들뜨기 쉬운 도시의 토요일 밤 모습과는 달리 조계사 대웅전 안의 풍경은 고요했다. 모두들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저마다 자신들의 마음 속 ‘구미호’를 쫓는 데 집중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교만과 사치가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본격적인 참선 정진에 앞서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보왕삼매론> 십대애행(十大碍行)을 독송했다. 독송하는 참가자들의 음성에서는 작지만 무게감이 느껴졌다.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는 10가지 지침을 외우며 참선 정진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들을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발원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요함을 찾기 위해서 왔어요.”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참가했습니다.” “이색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고 참가했습니다.”

참선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참가자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도, 가정을 돌보는 주부들도,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참가하게 된 이유는 모두 달랐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구미호의 아홉 개 꼬리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끊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참가자들은 마음 속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를 모두 내려놓고, 모든 생각을 멈추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마음을 안정시켜 나갔다.

   
참선 정진에 앞서 문화공연의 일환으로 실시한 바이올린 연주 모습.
잠깐의 입정으로 몸을 이완시키고 마음을 다스린 참가자들은 이어 열린 문화공연으로 긴장을 풀었다. 대웅전에서 진행되는 문화공연은 ‘여름밤, 구미호를 쫓다!’ 프로그램의 백미다. 누구나 쉽게 참선을 접하고 선의 대중화를 위해 참선과 문화공연을 접목한 점이 이색적이다. 초보자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문화행사와 결합해 참선을 병행함으로써 초보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참선 위주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 상대적으로 관심과 참여도가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별도로 문화공연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클래식, 국악 공연 등으로 진행되는 작은 음악회뿐만 아니라 2회 정도 영화상영의 시간도 준비하고 있다. 참가를 신청한 150명 가운데 매주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꾸준히 참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공연 시간에는 흥겨운 장구 가락과 전통 춤 공연이 펼쳐졌으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등 클래식이 바이올린 선율과 어울려져 대웅전에 가득 울려 퍼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참가자들은 법당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음악회를 즐기면서 한여름 밤 더위를 식혔다. 공연 중간 중간 환호를 보내고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조계사불교대학에 재학 중인 김명자(서울 개봉동)씨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차분해지는 기분을 많이 느끼게 됐다”면서 “참선과 문화공연이 함께 어우러져 참 좋고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불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문수(서울 인사동)씨도 “평소 틈나는 대로 조계사 법당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는 했는데 클래식 음악 공연도 감상하고 참선도 할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흥겨운 공연에 이어 법당 안을 걸으며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본격적인 참선 정진에 들어가기 위한 동중선(動中禪)이다. 묵언으로 경내를 걸으면서 정진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다스렸다.

   

토요일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대웅전에 모였다.

오후11시가 되자 조계사 자율선원장 일수스님의 법문과 함께 참가자들이 참선에 들었다. 참가자들은 이튿날 새벽까지 흐트러짐없는 모습으로 여름밤, 마음 속 구미호를 쫓으며 정진을 이어갔다.

조계사 자율선원장 일수스님은 “일상생활에서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해소하고 불자들과 일반인들이 간화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 끝에 문화와 선을 접목한 철야 정진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며 “참된 자아를 스스로 깨닫고 참 나를 찾는 것이 참선의 목적인만큼 남은 기간 스스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열심히 정진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불교신문 2736호/ 7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