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300km 뛴다고 할 것을 왜 500km 달린다고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남은 3일간의 일정까지 200km 더 남았기 때문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토안(28)은 2007년 11월 가족의 생계를 위해 1000여만원의 빚을 내 건너 왔고, 2010년 7월 7일 저녁 21시 퇴근 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한국인 가해 차량에 부딪쳐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쳐 왼쪽 뇌 1/3을 잘라내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사고 이후 1년 동안의 2차 수술과 3차 복원수술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시름에 잠긴 토안의 통장에는 54,000원 밖에 없었다. 가해자와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조건으로 받은 700만원을 베트남 가족에게 모두 송금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통장잔고가 줄어졌다. 그를 위해 108km울트라 마라톤을 뛰었다.

500km 마라톤 계기로

향후 10년 동안 농촌학교에

해우소 108개 지원

우호의 날개 힘차게 펼칠 것

2011년 9월 3일 토안의 복원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12월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그는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은 과제는 보험보상,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베트남 노동자 평균 월급이 한국 돈으로 5만6000원이라며 60살까지 계산해도 2000여만원 밖에 안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토안 집에 불이 났다고 한다.

12월14일 토안의 보험협상이 3500만원에 마무리 되고, 토안은 귀국길에 올랐다. 나는 베트남 500km모금 마라톤을 위해 답사 겸 동행했다. 2012년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2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고, 토안 가족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에 의해 몰살당한 마을에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불났던 토안 집은 창고였고, 이미 수리가 끝난 상태이어서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주변 마을을 다니다 토안이 졸업한 치어선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360명의 학생이 이용하는 해우소(화장실)가 단 2칸뿐, 그 형태도 너무 오래되어 아이들의 위생이 걱정될 수준이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목표를 변경했다. 향후 10년간 베트남 농촌학교 해우소 108개를 지원해 줌으로써 우리가 베트남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타이응웬성에서 200km를 뛰고, 나머지 300km는 토안과 센의 고향지역인 탱화성에서 뛰기로 했다.

   
진오스님(맨 앞)과 참가자들이 현지 거리를 달리는 장면.
2011년 1월 5일 부산공항을 출발, 타이응웬성에서 마라톤을 시작했다.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 그리고 “우호의 날개를 펼치자”는 베트남어로 적은 손깃발을 들고 뛰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인이 뛴다는 것에 어떤 반응이 올까 우리는 내심 걱정했다.

씬짜오! 인사말을 던지면 저쪽에서 웃었다. 뛰는 일행을 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 그들도 미소를 보내왔다. 뒤따라오는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한국을 반복해 외쳤고, 버스를 탄 손님들은 우리를 향해 눈길을 멈추었다. 참 행복했다.

미소는 세계 공통 언어였다. 국제교류 담당 공무원 3명이 우리와 같은 흰색 티셔츠를 입고 뛰어 주었다. 노래도 불렀다. 서로를 격려했고, 민간외교관이 되고 있음을 뿌듯하게 느꼈다.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려 고종 1226년 화산 이씨의 시조가 바로 베트남 분이다. 즉, LY왕조가 멸망할 때 고려로 넘어 온 베트남 왕자가 몽골침입에 큰 공헌을 세운 이후 고종 임금께서 귀화를 받아준 것이다.

[불교신문 2794호/ 2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