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산의 불교계 정화운동 연구’

정화운동 사회과학적 ‘접근’

   
 
진관스님(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의 박사논문 ‘동산(東山)의 불교계정화운동 연구’는 한국불교 정통성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정화운동의 이론화에 초석을 다졌다. 특히 하와이대 성원 스님이 앞서 쓴 <정화불교운동: 조직 통합주의와 종파주의의 교차로>라는 영문 저서에서 철학적으로 계율 (일명, 정통실천) 의 입장에서 정화불교를 분석한 반면, 진관 스님의 이번 박사논문은 정화불교를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최초 분석한 것이다.

아울러 기존 연구들이 사건사적 사상사적 불교사적 측면에서 제한적으로 접근한 한계를 역사와 정치변동의 변수도 접근에 포함했다. 곧 정화운동이 왜색 청산이란 민족운동과 사회개혁운동을 포괄한 것으로 그 주제로서 동산스님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유는 개인적으로 이승만과 가까웠고, 대표적 선승으로 민족주의자이란 특성으로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 획득과 비구-대처승 문제 해결에 앞선 중심인물이면서도, 이승만의 유시개입 이후에는 종단 정화운동에 개입하기보다 선불교 선승으로 되돌아가 비정치적 수행승의 역할에 전념한 것이다.

또한 논문은 정체성 회복을 위해 정화운동을 주도했던 선학원 선승들이 대부분 용성스님의 계율사상을 불교정화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용성스님의 민족관과 선의 전통성을 가장 잘 계승한 동산스님의 사례만으로도 정화운동에 각인된 선학원 측 선승들의 불교사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동시에 동산이 이승만 정부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의 역할과 정치적 의미를 통해 한국불교계의 정화운동을 정치사회적 조건과의 관계라는 틀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논문은 선행연구들에 대해 실날한 비판을 가한다. 정화운동이 불교계의 준 이득(비구종단 출범)과 상반되게 자주성 상실이란 측면을 선행 연구자들의 접근에서 찾아내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정화운동의 순수성이 왜곡돼 정치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며, 정치 지배세력과 불교의 관계 변화, 불교계 내부 갈등과 정치 역동성의 연동을 새로 도출한 학술적 공로가 크다.
 

■ ‘한국근현대 승가교육사 연구’

근현대 승가교육제도 변천 고찰

   
 
“100년 이상의 근현대식 승가교육 역사를 간직한 조계종이 전통(강원)과 현대(둥국대, 중앙승가대)의 선택 갈림길에서 표류하면서 교육기관과 수행기관의 혼재, 전통교육과 현대교육의 갈등, 사미(니)와 일반인의 혼잡 교육 등의 문제점이 지속되고 있다. 유일한 방법은 ‘기본교육 일원화’이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스님이 중앙승가대 박사논문 ‘한국 근현대 승가교육사 연구’에서 내린 결론이다. 스님은 논문 결론에서 “조계종 기본교육기관 일원화 문제는 미래 종단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성격”이라며 교육기관 당사자들의 대승적 결단을 요청했다.

논문은 그만큼 근현대 승가교육의 변화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근대기와 일제강점기, 조계종 성립이후 및 1994년 개혁종단으로 교육원 성립시기 등으로 세분화해 접근했다. 일단 불교 교육기관의 굴절은 조선조 불교탄압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다.

242개에서 36개로 공인사찰이 축소되고 선교 양대 종파마저 용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강원제도와 교과내용은 17세기 초에 ‘이력(履歷)과목’으로 정립된다. ‘사집-사교-대교’의 강원체제와, 화엄 중심의 ‘원돈문(圓頓門)’, 임제계통의 선법을 닦는 ‘경절문(徑截門)’, 염불방의 정토수업인 ‘염불문(念佛門) 등 삼문 체제였다.

논쟁은 1937년 일본유학생들이 승가교육 문제를 다룬 쟁점이 현재에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중앙불전이 일부 승려와 일반인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이 되고, 전통강원교육에 대한 복구 운동 과정서 제기된 문제의식들이 100여년이 지난 현재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스님은 “한 세기 동안 동일한 문제의식에 그대로 갇혀 있었다”고 진단했다.

논문은 한용운의 교육개혁론을 위시해 박한영 권상로 이영재 조종현 허영호 등의 교육제도 혁신안을 집중 분석했다. 이어 각 사찰의 전통강원과 현대교육기관들의 부침을 연도별로 꼼꼼하게 정리하며 승가교육제도의 변천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