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누구나 각자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즉 원하는 바, 소원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소원이라 하지 않고 서원을 세운다고 한다. 왜냐하면 서원은 이타적인 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세우는 서원조차도 욕심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니는 불자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도 항상 크고 작은 원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있게 된 것도, 이전에 내가 세운 많은 원들의 결과와, 그 원에 대한 나의 행동이 크게 작게 작용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거나 나빴다고 하여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자신에 대하여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세웠던 원과, 그 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대승불교는 실로 서원(誓願)으로 이루어진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원이 없는 불보살은 없기 때문이다.

석존이 성불하시기 전, 보살행을 닦을 때 세우신 서원을 본원(本願)이라 한다. 그리고 이 본원에는 다시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먼저 총원은 모든 불보살들의 공통적인 서원으로서, 바로 사홍서원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가 법회의식에서 매번 사홍서원을 하는 것도, 이러한 결의를 실천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미에서이다.

그 다음은 불보살마다 각기 세운 원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별원이라 한다. 예를 들어 아미타불의 48대원을 비롯하여, 약사여래의 12대원, 보현보살의 10대원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만약 무지개와 같은 원만 세우고서 그것을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방치해 놓고 요행만 바란다거나, 세운 원이 비도덕적, 비사회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이 중생을 요익케 하듯이, 이타적(利他的)인 서원을 세울 때, 그대로 자리(自利)의 공덕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