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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 보각국사비 ‘위태위태’ ...도권스님(29기)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09-12-02 14:34
조회 : 12,709  

부서진 채 조각만 남아있는 보물 제428호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가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항구적인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보물’ 불구 외부 방치…비각도 심각

인각사 주지 도권스님, 당국에 대책 호소


군위 인각사(주지 도권스님) 경내에 있는 보각국사비는 더 이상 탁본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채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비각(碑閣)과 보각국사비는 한 눈에 보기에도 위태롭다. 자칫 폭우와 강풍이라도 불면 금방 주저앉을 것만 같다. 비각 외부의 아래 부분 벽은 일부 흙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한겨울의 강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보각국사비와 비각은 문화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진> 군위 각사 주지 도권스님이 보물 제428호 보각국사비와 비각을 안타깝게 살펴보고 있다.

현장을 살펴본 이종문 계명대 교수는 “깨어진 파편일지언정 남아 있는 비석을 가장 적절하게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오랫동안 방치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종문 교수는 “비참하게 깨져 버렸다고 해서 나라에서 정한 보물을 이토록 푸대접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관련 당국이 시급히 보존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89년 일연스님이 입적한 후 충렬왕이 당대의 대표적인 문신 민지(閔漬)에게 보각국사비를 세우도록 하명했다. 중국 최고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새긴 보각국사비는 지금부터 710여 년 전인 1295년, 일연스님이 주석하며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한 인각사에 세웠다. 당대 최고의 학자가 글을 짓고, 역사상 최고 명필의 글씨로 새긴 것이다. 보각국사비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왕희지의 진적(眞蹟)에 가장 가까운 놀라운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탁본을 한 것이 비석의 마멸을 재촉했다. 또한 정유재란 당시 인각사가 전소되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탁본 요청이 쇄도하자, 1630년 마을주민들이 비석을 깨트려 버리고 말았다. 현재 남아있는 비석의 글자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지난 2006년 보각국사비를 복원하여 새로 세웠지만, 보물 제428호인 기존 비에 대해서는 변변한 보존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허름한 비각이 보물을 보호하는 전부나 마찬가지다. 군위 인각사 주지 도권스님은 “비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혹시 비각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마음을 졸인다”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비가 지금의 모습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도관스님은 “관련 당국에서 보존대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의 권점수 주사는 “한달 전에 보각국사비각을 살펴본 후 보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군위군에 관련 예산을 신청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군위군청 새마을과의 문화재 담당 박경원 주사는 “내년도 정기예산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추가경정예산 편성시 최우선으로 보각국사비 보수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답했다.

군위=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 2577호/ 11월25일자]

2009-11-21 오전 11:53:01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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