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담스님 지음 / 들녘
1960년대 중반 어느 가을날 김천 청암사. 현 총무원 총무부장 영담스님이 행자시절 은사 고산스님(조계종 원로의원)으로부터 처음 삭발하는 날이다. “임 행자야, 오늘은 삭발이나 하자꾸나. 네 머리도, 네 마음도 삭발을 해야겠구나.” 영담스님은 “더운 물에 머리가 푸욱 적셔지도록 목덜미를 가만히 잡고 있는 큰스님의 손길이 따사로웠다”며 “서걱서걱하고 삭도기가 머리칼을 자르며 지나가는 소리가 묘했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삭발염의를 마칠 무렵 고산스님은 “이제 네놈의 모든 번뇌덩어리를 다 잘라놓았다. 대야에 네놈 머리통 한번 비춰 보거라.” 영담스님은 세숫대야 물 위로 흐릿하게 드러난 새하얀 머리를 보았다. 스님은 “순간 세상이 눈앞에 다가와 서는 것 같았다. 저 엄청나고 커다란 세상이 감아도 감아도 자꾸만 눈앞에 다가서는 것만 같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제 네놈의 번뇌덩어리를
다 잘라놓았다
대야에 머리통 한번 비춰보거라’
새하얀 머리가 드러난 순간
세상이 눈앞에 다가왔다
영담스님의 <동승일기>는 1999년 출간 당시 화제를 모았다. 동진출가를 했던 오래 전 출가이야기를 가감없이 밝혔고, 당시 절집안에서 벌어졌던 좌충우돌 수행기가 세간에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동승일기>는 영담스님이 열세살이었던 1966년 김천 청암사에서 보냈던 행자시절부터 1968년 부산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할때까지 이야기이다. 배꼽 잡을 정도로 큰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엄마품이 그리운 어린 행자의 모진 절생활에 가슴 찡해지는 대목도 많다.
스님들 틈에서 김장을 하면서 그 옛날 어머니 손길이 그리워 배추쌈을 먹으며 애써 눈물을 참았던 일, 라면을 끓일 줄 몰라 찬물과 면을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바람에 밀가루죽을 쑤었는데 큰스님이 되레 소화가 잘되게 만들었다며 칭찬했던 사연, 청암사 비구니 스님들의 도도한 모습이 거슬러 스님들 고무신을 물로 채웠던 일, 큰스님이 사준 새 승복을 받고 좋아라 했는데 다음날 예고없이 범어사로 떠나는 큰스님을 보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던 사연…. 말 안듣고 장난치기 좋아하고 졸음을 참지 못해서 고산스님으로부터 자주 혼쭐이 났던 영담스님도 큰절 범어사에 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미계를 받는 날. 법당에 모인 행자들 속에서 장궤합장을 했다. “너나없이 환하게 빛이 났다. 무명초를 베어버린 반들거리는 머리, 눈에는 형형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제일 어린 나이였지만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의젓한 모습으로 삼배를 올리고 있었다.” 스님이 말한 그 날 풍경이다.
[불교신문 2584호/ 12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