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학교’인 강원(講院)은 분명 실재하는 곳-그것도 우리나라에 18군데나 되는-이긴 하지만 마치 ‘해리포터’가 다니는 마법학교처럼 신기루 같은 느낌을 준다. 일반인들과는 철저히 차단된 채, 깊은 산속 사찰에 꽁꽁 숨어있는 강원이 어떤 곳인지는 가끔 스님들의 입을 통해서 조금씩 들을 수는 있었지만 직접 가서 보기를 허락받는 것은 ‘호그와트 마법학교’ 방문허가증을 받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일 것이다.
행자생활 6개월을 지낸 후 사미(사미니)계를 받고 나서도, 강원 4년 과정을 졸업해야 정식 비구(비구니)계를 받아 스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원은 스님이 되기 위한 기본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열린 강원’이라고 승가에 소문이 자자한 대구 팔공산 동화사 강원은 다행히 ‘방문허가증’을 쉽게 내주었다.
강주(講主) 해월(海月·43) 스님을 기다리며 강주실 앞을 서성이는데, 많은 스님들이 왔다갔다 분주했다. 마치 마법의 도시에 홀로 떨어진 ‘머글(일반인)’처럼 이상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도대체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스님들의 얼굴과 똑같은 머리모양, 회색 승복을 보고 나이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나중에 알고보니 선생님보다 늙은 학승들도 많아서 나이로 사제를 구분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의외로 구분법은 간단했다. 회색 승복에 갈색 깃을 달고 있는 스님들이 학승이었다.
스님들의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강원’에서 강주는 대학의 학장쯤 되는 최고책임자이고, 강사는 교수에 해당한다. 물론 한 강원의 학생은 수십명에서 많아 봤자 100명 정도니까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다.
전국 18개 강원(사미 강원 13곳, 사미니 강원 5곳) 중에서 재개원한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은 동화사 강원을 찾은 이유는 유명짜한 전통강원에서 해마다 꽤 많은 숫자의 학승들이 이곳 동화사 강원으로 전학을 올 정도로 시대에 발맞추는 ‘열린 강원’이란 소문 때문이었다.
왜 이곳으로 전학을 오느냐 하면, 전통강원은 요즘 젊은 스님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견디기 어려운 점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통강원으로 유명한 ㅎ강원에서 무슨 실수 때문에 벌로 ‘원산폭격’을 몇시간 하고 있던 어떤 스님은 ‘손들고 꿇어 앉으라’는 선배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자퇴를 하고 말았다고 한다.
육체적 벌보다 자존심을 다치는 게 싫은 요즘 스님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또 어려서부터 절생활을 하는 동진출가자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사회생활을 일정기간 거친 요즘 출가풍토와도 연결된다.
전교생 33명인 동화사 ‘열린 강원’이 전통강원과 다른 점은 뭘까. 외견상으로는 거의 다르지 않았다. 1학년 ‘치문반’에서는 사십이장경을 비롯한 기초경전과 조계종사, 2학년 ‘사집반’에서는 유조단경 유마경 등을, 3학년 ‘사교반’에서는 능엄경과 대승기신론기회본 같은 경전을 배우고, 4학년 ‘대교반’에선 화엄경을 익힌다.
군대만큼 군기가 엄격한 강원에서 4학년은 군대 고참처럼 약간 열외로 치는데, 회장에 해당하는 ‘입승(立僧)’은 4학년이 맡고, 실질적 회장은 3학년 ‘찰중(察衆)’이다. 찰중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열리는 전체회의인 대중공사(大衆公事)에서 중요한 강원의 일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퇴학조치 같은 것인데, 동화사 강원 찰중인 상안 스님은 “이곳에서는 아직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강원의 하루는 여느 스님들처럼 새벽 3시에 시작된다. 기숙사처럼 몇명씩 함께 쓰는 온돌방에서 나와 세수를 하고 가사와 장삼을 갖춰 입은 후, 열을 지어 안행(기러기떼가 열을 짓는 모양)하며 대웅전으로 향한다.
이어 새벽 5시30분 발우공양 이후, 전 대중이 마당쓸기 울력(공동노동)을 한다. 오후엔 각자의 소임에 따라 울력을 하는데, 욕두는 목욕탕 청소, 정두는 화장실 청소를 가리킨다.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가 강원의 수업시간이다. 각 반별로 교실인 큰 온돌방에 모여 각자의 앉은뱅이 책상을 가져다놓고 수업을 한다. 수업방식은 대학원 세미나 식이다. 산통에서 번호를 뽑아 각자의 발표순서를 정해 강독을 하는데, 준비상황에 따라 수업내용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점수가 매겨진 성적표는 없다. 다만 강사들은 학승들을 개별 면담하면서 학습능력을 점검해준다.
점심공양이 끝난 후부터가 바로‘열린 강원’의 진가가 발휘되는 때다. 다른 전통강원에서는 산문에서 한발짝이라도 벗어나는 걸 상상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각자 학원에 다니거나 야간대학에 진학한다.
일본과 영국에서 10년 넘게 유학한 강주 해월 스님은“학승들이 컴퓨터·외국어 학원에 가거나 야간대학에서 각자의 전공을 공부하기를 권한다”면서 “스님들도 선수행뿐 아니라,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야간대학 전공은 사회복지나 불교학과 등이 주종을 이룬다고 한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꽃동네 호스피스 활동을 비롯해 사회복지기관에서의 봉사활동 역시 동화사 학인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전통적 경전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대교반인 오석 스님(전국승가학인 연합회 부의장, 이하 전승련)은 “매년 전승련 주최로 가을에 역경대회, 축구대회 등을 포함한 학인대회를 개최하는데 지난해 우리가 역경대회 1등, 축구대회 3등을 했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올 10월에 열리는 학인대회는 동화사에서 개최된다. 입승인 범능 스님은 말한다. “강원 4년은 군대처럼 스님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준비기간이기도 한 만큼 뭔가 자기계발을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봄소풍은 치열한 수행생활에서 잠시 벗어나는 해방구다. 이날만은 강사들도 ‘곡차’와 ‘돼지나물’을 눈감아준다. 그래서 강원의 봄소풍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처럼 일생을 두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입학은 매년 음력 2월20일, 방학은 각각 하안거와 동안거가 시작되기 직전 보름과 끝난 후 한달씩 모두 석달인데, 12일 오늘이 바로 하안거 해제 방학이다. 스님들은 이때 각자 출가한 절로 돌아가 은사스님을 돕거나 만행을 떠난다. 그리고 한달 뒤 다시 묵직한 바랑을 메고 산문을 들어설 것이다. 동화사 강원 스님들도 바랑을 꾸리기에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