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선禪을 찾는 이유는?
There is a reason where the 21st century seeks the transcendentalmeditation to where
김인수(http://kr.blog.yahoo.com/k41i01s01
들어가는 글
세계를 리드하는 과학문명(科學文明)은 (1)전과학시대(全科學時代)를 뒤로하고 (2)패러다임(paradigm)의 등장과 동시에 일어난 (3)정상과학시대(正常科學時代)를 지나 (4)혼돈(混沌)의 시대를 앞에 하고 있다. 혼돈의 시대라고해서 출구를 모색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모색하는 순간순간, 쉬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낡은 관점은 버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해 나간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 즉 전환의 시대는 신과학시대(新科學時代)의 개막이다. 혼돈의 시대가 지나고 신과학시대가 개막되는 날, 우리가 원용해 나온 "선형적 관점(線形的觀點)"은 후퇴하고 "비선형적 관점(非線形的觀點)"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선형적 관점이 밀려나고 비선형적 관점이 등장하면 세계를 리드하던 과학문명은 새로운 논리(論理)를 정립하여 낡은 이론체계를 뒤엎고 새로운 이론체계로 분장할 것이다.
비선형 과학시대(非線形科學時代)가 현대문명의 전면에 등장하여 (1)물리적 체계 (2)정신적 체계 (3)사회적 체계를 재정립하게 되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관점과 논리는 역사의 뒷면으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21세기 중엽에 이르렀을 때는 비선형 과학시대(非線形科學時代)가 도래하여 사물을 대하는 관점이 전환할 것이다. 그러나 선형적 관점(線形的觀點)이 주류를 이루는 오늘의 시점에서 "북경에서 나비가 날면 뉴욕에 태풍이 이러난다"는 비선형적 관점에서 등장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상과학시대(正常科學時代)를 살고 있는 우리는 비선형적 관점과 마주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선형적 관점은 통시적(通時的)이며 전관적(全觀的)인 관점으로서, 국지에서 발생한 사건 개요를 국지에 국한시켜 보지 않고 부분(北京)과 부분(뉴욕)이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전일적(全一的)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용하는 세계에 대한 관점과 논리체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연관성은 갖고 있지만 가감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 그 자체는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관점의 논리화"를 빌어 이론적으로 체계를 정립한 체제화(體制化)된 세계이다. 논리적으로 체제화된 세계라는 말은 16세기 이전의 신중심주의(神中心主義)로부터 벗어나 17세기에 등장한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재해석(再解釋)된 세계라는 뜻이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자리를 정하게 된 과학적 패러다임에 의해서 세계를 재해석했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전자와 쿼크를 원용하여 기계와 같은 구조로 세계를 해석했다는 뜻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해석된 세계는 물리적 체계를 <세계1>, 정신적 체계를 <세계2>, 사회적 체계를 <세계3>으로 분할하여 세계의 질서를 체제화(體制化)했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해석되고 체제화된 세계를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상과학에 의한 <세계1>과 <세계2>와 <세계3>으로 분할된 공간에서 삶을 전개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갖춘 세계에 대한 관점과 논리체계 외곽에 실재(實在)하는 자연세계이다. 이 자연세계는 불가시세계(不可視世界)인 동시에 미시세계(微視世界)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미시세계를 "신비의 자연(自然)"이라고 표현한다.
신비의 자연으로 회자되는 불가시세계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이지만, 전자와 쿼크를 원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과학에 의해 재해석된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신비의 자연이라고 상찬해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인간의 관점에 의존하여 재해석한 세계라는 뜻이다. 전자와 쿼크를 원용하여 해석된 세계인데도 우리는 이와 같은 미시세계를 가리켜 신비세계(神秘世界)라고 지칭한다.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비하다고 표현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는 통상적인 우리의 관점과 논리체계 밖에 알 수 없는 미시세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미시세계의 실상(實相)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우리는 과학이 마련한 논리와 이론에 의존하여 세계를 보기 때문에 과학의 이론과 논리체계가 미치지 못하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은 인식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이성적(理性的)인 앎에 의존하여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이성의 힘이 미치지 못 하는 "존재의 깊은 차원"은 인식하지 못 한다.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경우(境遇)에 따라서 무녀(巫女)를 찾게 된다.
과학 이론과 이성적인 앎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미시세계의 사물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미시세계에서 발생하는 엘리뇨와 같은 기상변화는 관측하지 못한다. 다만 미시세계에 관한 구체적인 경험과 발발한 사건의 통계를 기본적인 자료로 삼아 어림셈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림셈에는 사실과 다른 엉터리가 많다. 왜냐하면 어림셈은 관측되어진 통계에 의존된 어림셈이기 때문에 엉터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가시세계,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적용성(適用性)을 기준으로 하는 정상과학의 관점과 이성적인 논리체계로서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정상과학의 관점과 논리체계를 원용한 적용성(適用性)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그 관점과 논리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형과학에 의해 정립된 이성적 이론이 비선형과학의 세계에서 적용성을 상실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샌디애이고학파에서 주장하는 비선형적 관점이 아니면 미시세계에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선형과학시대(非線形科學時代)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샌디애이고학파에서 주장하는 "나비효과"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입장에 서 있게 된다. "나비효과"는 직관적 인식(直觀的認識)으로서, 비선형적 관점(非線形的觀點)에서 출발되었기 때문에 직관적 인식과 비선형적 관점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기계론적(機械論的) 세계관을 기대(基臺)로 한 (1)물리적 체계 (2)정신적 체계 (3)사회적 체계를 원용하여 모든 존재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선형과학(線形科學)의 관점과 사고방식에 의존하여 모든 대상의 실체와 표상을 인식하고 그것들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변동과 혁신운동을 동반했다.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변법개조(變法改造)와 전반서화(全般西化)를 실현했다. (1)사회적 차원에서는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을 신장하여 탈서구화(脫西歐化)를 자극할 수 있게 되었다. 탈서구화의 자극으로 고유문화의 부활을 불러 들였다.
(2)개인적 차원에서는 전근대적 사고방식(前近代的思考方式)을 청산하고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통적 유대와 사회적 관계의 와해로부터 오는 소외와 아노미현상을 체감하여 자아 정체성(正體性)의 위기를 의식하게 되었다. 문제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고자 했을 때 무엇부터 손을 대느냐 하는 문제이다. 고유문화의 부활을 촉진한다면 어떠한 고유문화의 원형을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서구화 과정에서 고유문화의 원형은 거의 축출되어졌다. 마을 앞에 서 있는 비목이라도 수령이 깊은 것은 귀신의 서식처라는 판단에서 모두 잘라버렸다. 고유문화와 전통사상은 근대화의 장애물이 된다는 취지에서 불태워 버렸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던 사람은 대학의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서 고유문화는 뒤뜰로 밀려났다. 고유문화를 일으켜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고 자신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려 해도 무엇을 선택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암담하다. 신라(新羅)의 불교문화를 유장하게 꽃피울 수 없는 노릇이며 조선조를 재현하여 이기(二氣) 오행(五行)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을 학습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밀려온 비선형적 사고방식이 문화계에 전파되어 직관인식(直觀認識)이라는 말이 유행을 타고 있고, 비선형적 관점들이 현대미술 현대음악에 새로운 기류를 수놓고 있다. 급격하게 변모하는 작금의 정황에서 비선형적 직관인식이 무엇으로부터 연유했는가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비선형적(非線形的) 직관인식은 동양의 유기체론적(有機體論的) 관점으로부터 연유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형적 관점(線形的觀點)에서는 비선형적 직관지(直觀知)가 산출되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로 들어서, 선형세계(線形世界)의 이론과 논리가 적용성의 한계를 나타내자 비선형세계(非線形世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존재의 깊은 차원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禪)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
21세기에 선(禪)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혼(靈魂)을 업그레이드(upgrade)할 수 있는 선(禪)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선형적 관점(線形的觀點)이 비선형적 관점(非線形的觀點)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며, 정상과학(正常科學)은 적용성의 한계를 상실하고 비정상과학(非正常科學)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며, 비선형적 관점(非線形的觀點)이 정당화되는 비선형 과학시대(非線形科學時代)가 도래하면, 선(禪)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선(禪)으로 가는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어느 시대에나 당면한 상황에서 자유를 얻고자 다양한 이론(理論)과 방법(方法)을 궁구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맞이하게 되는 궁핍과 인간 좌절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자 적절한 이론을 개발하고 긴요한 방법을 강구했다. 이론과 묘책의 연구에 선행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상정(想定), 그리고 상정된 세계를 보는 패러다임과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체계(論理體系)였다. 인류는 세계를 상정한 후 상정된 세계에 적합한 이론과 논리를 개발하여 인간 좌절(挫折)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계발(啓發)했다.
인류 역사 이래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서 다양한 길이 제시되었지만, 17세기 이후에 나타난 이원론(二元論), 환원론(還元論), 기계론(機械論)처럼 우수한 이론체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상 언급한 이론체계에 의존하여 과학(科學)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세계를 리드해 나온 이론(理論) 가운데 주축이 되는 것은 환원론(還元論)과 기계론(機械論)이었다. 환원론의 중핵(中核)은 세계를 구성하는 부분(部分)의 역할론(役割論)인 동시에 부분의 기능(機能)을 강조하는 이론이었다.
환원론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부분(部分)은 전체(全體)로부터 분리(分離)될 수 있고, 부분의 합(合)이 전체가 된다는 이론이었다."
환원론은 세계를 리드하는 실체를 "부분(部分)"으로 상정한 다음, 사회를 이끌고 가는 메카니즘의 중핵도 역시 부분의 연구에 집중하여 부분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전력했다. 부분에 관한 연구는 물리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시 말하자면, 환원론은 고전물리학(古典物理學)을 위시한 과학의 핵심적 기대(基臺)인 동시에 철학과 인문학의 근원적 이론체계였다.
문제는 20세기에 이르러 발생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와 신과학(新科學), 다시 말하면 현대물리학(現代物理學)에 의해 환원론을 기대(基臺)로 하는 고전과학(古典科學)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고전물리학을 딛고 일어선 현대물리학은 환원론의 중핵이 되는 "부분"이 "불확실한 존재"라는 것을 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분이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되는 경우, 전체 또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환원론에 근거를 둔 모든 이론은 "적용성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상실(喪失)하게 되었다. 환원론이 불확실성(不確實性)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적용성의 한계를 스스로 벗어날 수 없게 되자, 기계론(機械論)도 또한 적용성의 한계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부분에 관한 이론이 불확실하게 되고, 부분과 부분이 모여 구성된 전체가 기계처럼 움직인다는 이론이 적용성의 한계를 갖게 됨으로써 환원론과 기계론이 모두 위기를 맞게 되었다.
기계론과 환원론이 적용성의 한계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놀란 과학자들은 부분의 궁극적 근원을 탐구하고자 몇 갑절 더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 전자와 쿼크이다.
부분을 쪼게고 또 쪼개서, 부분의 최소 미립자인 쿼크를 탐구했지만, 여전히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움직이는 주체자(主體者)가 누구인가를 찾아내지 못했다.
부분의 연구, 다시 말하면 존재의 깊은 차원의 연구에서 궁극적 실체가 발견되지 않자, 통찰지(洞察知)를 얻고자 했던 사람들의 시각은 부분으로부터 시각을 전환하여 "부분과 부분의 연관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부분을 향하던 관점이 히든 커넥션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 것이다.
<2>
부분으로부터 히든 커넥션으로 옮겨지게 되면서부터, 자기 쇄신을 통해 통찰지(洞察知)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가시세계(可視世界)의 환원론(還元論)과 기계론(機械論)에 의지하여 실체(實體)를 찾기 어렵게 되었음을 확실하게 인식함과 동시에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꾸거나 달리 생각하기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달리 생각하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가시세계(可視世界)에서 불가시세계(不可視世界)로 관점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관점의 전환과 더불어 달리 생각하기를 유념하게 되고,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일차원에 속하는 물질로부터 몸으로 관점을 전환했다. 몸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차츰차츰 마음으로 관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물질에서 몸으로, 몸에서 다시 마음으로 관점을 옮긴 사람들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을 이론보다는 마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이론과 논리보다는 마음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선(禪)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세계를 리드하는 이론과 사회를 이끌고 있는 학문체계가 적용성의 한계를 노출했기 때문에 이론과 논리를 통해 통찰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론과 논리의 반대편에 있던 직관지(直觀知)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분자나 퀴크를 볼 수 있는 나노전자현미경을 통해서 존재의 실체를 규명하고자했으나, 모든 것이 불확실하여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통찰지를 얻고자 했던 사람의 눈길이 가시세계(可視世界)에서 불가시세계(不可視世界)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적용성의 한계를 노출한 환원론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자기 앞의 삶을 원활하게 이끌고 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에서 높고 넓은 통찰지(洞察知)를 얻기 위하여 선(禪)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3>
자기 쇄신에 주력하지 못하는 사람은 퇴보를 반복한다. 퇴보를 반복하는 사람은 집단이나 경쟁 대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落伍)하게 된다. 낙오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새로운 길을 찾아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다. 자기가 걸어온 기존의 길을 버리고 과감하게 미지의 길을 찾아 나선다. 두려움을 안은 채 미지의 길을 찾아 쉼없이 도전한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은 자기 쇄신을 단행하고자 자기유지능력(自己維持能力)의 함양에 최선을 다한다. 쇄신능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담금질을 반복한다.
당조(唐朝)의 마조(馬祖)는 울울한 수림에 깊이 들어 앉아, 쇄신의 길을 묻는 사람에게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귀띔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을 만나려면 사고(思考)와 감정(感情)을 다스리는 높고 넓은 정신(精神)의 자유(自由)를 획득하라고 귀띔했다.
마조는 높고 넓은 정신의 자유를 선(禪)이라고 주장했다.
즉심즉불을 원하거든, 선(禪)으로 가라고 했다.
마음으로 가는 길을 열고자 하던 사람들은 마조의 말을 믿고 선(禪)으로 갔다.
마조의 가르침에 따라 높고 넓은 정신의 자유를 구가했던 수많은 선객(禪客)들은 자기 쇄신을 단행하여 당조(唐朝)의 찬란한 정신문화를 리드하는 조사(祖師)가 되었다.
마조의 영향으로 남북 선종(禪宗)의 여러 파(派)가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여 후세의 문학(文學)과 진경산수(眞景山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문학의 정화(精華)로 꼽히는 당시(唐詩)는 이백(李白) 두보(杜甫) 왕유(王維)·백거이(白居易) 같은 시인이 나타나, 5만 수(首)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4>
우리는 1948년부터 (1)세계를 움직이는 이론(理論)과 (2)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서구의 것으로 대체(代替)했다.
세계를 해석하는 세계관(世界觀)과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學問)을 서구의 것으로 대체한 까닭은 근대화(近代化)를 결행하지 않으면 세계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같은 강박관념 (强迫觀念)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건전하게 살릴 수 있는 길은 서구인들이 체계화한 환원론(還元論)과 물리(物理)를 근원으로 하는 학문(學問)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이론(理論)과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서구(西毆)의 것으로 대체하고 나니, 한국의 고유문화와 전통사상은 자연스럽게 뒤뜰로 밀려나가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사상과 고유문화는 효용성이 저하된 전리품처럼 뒤뜰의 허름한 창고에 쌓이게 되었다.
1948년 한국의 초대 내각(內閣:국무위원으로 조직되어 국가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 중심 기관))은 변법개조(變法改造)를 단행하던 1895년의 김홍집(金洪集) 내각보다 더욱 사무치게 전반서화(全般西化)를 결행했다.
세계관과 사회를 움직이는 학문을 모두 서구의 것으로 전환하고 나서 어언 간에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60년 동안 서구의 세계관과 학문을 교육받고나니, 우리들 각자가 갖추게된 논리(論理)의 근간은 서구의 이원론(二元論), 기계론(機械論), 환원론(還元論)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사회를 움직이는 학문 또한 과학(科學)에 뿌리를 내린 다양한 학(學)이 되었다. 따라서 1948년에 선택한 세계를 움직이는 서구의 이론과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설명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사람노릇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우리는 1948년 정부 수립으로부터 천지개벽에 가까운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60년 동안 변법개조(變法改造)와 전반서화(全般西化)를 단행한 결과 서구인들보다 더 서구인다운 관념과 논리로 무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세계관과 서구의 학문이 본래 우리의 세계관과 우리의 학문인 것처럼 우리의 것으로 체계화 되고 체질화 되었다.
<5>
서구화를 단행하고부터 60년이 지났다. 일반인들은 전근대적(前近代的) 사고방식(思考方式)을 청산하고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했다.
과학의 발전과 궤도를 함께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는 세계 도처의 과학자들을 통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삶과 연관된 고통과 불행의 문제는 문명의 이기와 관계없이 극도로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정보화는 미래세(未來世)의 변화와 그에 대한 전망을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포인트를 전환한 현대인들은 경험의 가치와 감정의 가치를 재정립하여 신선하고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를 창안하고자 애를 쓰면서, 시대적인 기류의 변모에 주의를 기우리며 논리적 체계가 전환되어 가는 21세기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급격한 사회변동이 동반된 문명의 전환기에 자기 쇄신을 어떻게 결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 그러나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시대적인 관점과 논리 그리고 현세를 리드하고 있는 메카니즘을 원용하여 고민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고 나서야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 후, 60년 동안 계속된 근대화 과정에서 뒤뜰의 헛간에 묻어 두었던 우리의 전통사상과 고유문화를 들춰 보게 되었다.
천 년 전, 과거의 한 시대에 당대의 문화를 견인했으며, 생명의 창발성(創發性)을 권발하여 찬연한 정신문화를 꽃피웠으나 오늘의 인류문명에 좀처럼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으로 가치 평가를 절하했던 선(禪)이 오늘에 이르러서야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논리와 이론을 접어 놓고 즉심(卽心)을 지향하여 잠자는 생명의 창발성을 일으킴과 동시에 인간의 정신을 심화시켜 높고 넓은 자유를 구가하도록 하는 선(禪)에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이다.
<6>
최근에 이르러 선(禪)으로 가는 길을 묻는 일반인이 많다. 그러나 친절하게 선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 전체가 환원론과 메카니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마당에 고유문화의 부활과 더불어 선(禪)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서구화된지 오래인 우리 사회에서 선(禪)으로 가는 길을 묻는 사람이 증가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이론체계에 허탈감을 느낀 사람이 많아진 데에 있다.
서구의 화려한 이론에 기대를 걸었던 일반인들이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설명체계가 복잡계(復雜界)를 형성하여 문제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간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한 데에 기인한다. 지난 60년 동안에 될 수 있으면 복잡계로부터 벗어나 단순한 삶으로 전환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메카니즘을 원용하여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복잡한 이론과 논리로부터 벗어나 틀이 짜여져 있지 않은 환경, 다시 말하면 아노미현상과 같은 덫이 놓여져 있지 않은 순연한 자연질서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보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눈 앞에 존재하는 존재자의 구조와 기능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자 하는 선인(先人)들이 많았다. 수많은 선인들은 자기의 관점을 근거로 삼아 존재자(存在者)의 실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관점(觀點)의 논리화(論理化)에 주력했다.
혹자는 산상에 서서, 혹자는 해변에 서서, 혹자는 사막에 서서, 또 다른 혹자는 기름진 옥토에 서서 자기 눈에 들어오는 표상을 논리적인 체계를 세워 설명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삶이 보다 합목적적(合目的的)인 삶으로 승화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7>
아주 소박한 설명에서 출발했던 관점과 논리는 종교와 철학으로 발전했으며, 학문과 예술의 기원과 토대를 만들었다.
수많은 선인들의 관점과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벌어졌다. 현상이라고 이름 하는 것, 세계라고 이름 하는 것은 단일체(單一體)이지만, 그에 관해서 해석되어진 설명체계는 (1)기계론적 관점과 (2)유기체론적 관점으로 크게 벌어졌다.
기계론적(機械論的) 관점의 논리화는 유기체론적(有機體論) 관점의 논리화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기계론적 관점의 중핵은 부분(部分)의 독립성에 맞추어져 있는 반면에 유기체론적 관점의 포인트는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은 물론 전체와 부분의 상즉상입(相卽相入)과 원융회통(圓融會通)에 맞추어져 있다.
기계론의 중핵은 부분은 전체(全體)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관점이요, 유기체론의 중핵은 부분은 전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관점이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세계를 보는 관점의 다름으로부터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되며, 이로부터 사고방식(思考方式) 또한 각각 다르게 변형되기 마련이다.
<8>
전근대적사고방식(前近代的思考方式)을 청산한 후, 패러다임(paradigm:사회 전반에 관한 규범)의 등장과 동시에 개막된 정상과학(正常科學) 시대를 열었던 서구 사회는 300년에 이르는 근대화과정을 경과하여 21세기로 접어들었다.
이에 반해서 19세기까지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청산하지 못한채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던 우리 사회는 20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근대화를 추진하여, 반세기만에 눈부신 결실을 얻어낸 다음 탈서구화(脫西歐化) 과정으로 접어들었다.
20세기 중반(1948)에, 근대화를 시작한 우리는 전근대적사고방식을 척결하지 못한 입장에서 (1)패러다임의 등장과 (2)정상과학의 시대를 동시에 열어야 되는 명운에 처했다. 해방전후사(解放前後史)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격동기에 겪었던 사고체계(思考體系)와 가치관(價値觀)의 혼란, 급격한 사회변동(社會變動)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과학적 사고방식(科學的思考方式)으로 전환되지 못한 상황에서 서구 여러 나라들보다 300년이나 뒤늦게 시작된 근대화과정이 정상적인 궤도를 지나서 질서 정연하게 진전되리라고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화를 착수한지 반세기만에 민주주의를 실현했으며, 경제력의 신장과 더불어 군사력과 정치력까지 높아짐에 따라 자기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의 발현과 함께 탈근대화의 후기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근대화의 후기 단계에 이르렀을 때 발생하는 탈서구화의 자극(刺戟)으로 인하여 고유문화의 부활이 두드러지게 일어나게 된 사회현상을 언급할 수 있게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서구 사회로부터 근대화모델을 수입하여 실행에 옮긴지 반세기만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킴과 동시에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의 신장을 통한 탈근대화의 자극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등한시했던 고유문화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의 신장과 탈근대화의 자극으로 인해서 소홀하게 취급했던 우리의 고유문화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삶의 질을 높이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웰빙에 관한 다양한 제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달리 생각하기>, <관점의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신조어들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나가는 과정에서 소유(所有)와 대칭을 이루는 무소유(無所有)에 연관된 잠언들이 공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삶의 외적인 조건개선에 전력하며 물질적 팽창에 매달렸던 사람들은 인간의 내적인 정신승화(精神昇化)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행동에 선행하는 사유(思惟)를 유념하게 되었다. 서구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삶의 외적인 조건개선에 매달리던 사람들도 웰빙의 물결에 휩쓸려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응시하며 정신적 승화를 추구하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생각하는 삶을 귀하게 여기는 시대적인 추세는 고유문화의 부활을 앞당기는 동시에 우리들로부터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9세기 당조(唐朝)의 선(禪)을 자신들의 삶 속으로 이끌게 되는 계기를 열었다.
<9>
서구(西歐)의 환원주의적 관점의 포인트는 부분의 독립성에 있지만, 동양의 유기체주의적 관점의 포인트는 전체와 부분의 연관성에 있다. 따라서 환원주의적 관점의 논리는 존재의 궁극적 실체가 무엇인가에 집결되며, 유기체주의적 관점의 논리는 부분과 부분 혹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집결된다.
서구인들은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동양인들은 나(부분)와 타인(부분), 혹은 나(부분)와 국가(전체) 간의 관계설정에 관심을 갖는다. 서양과 동양의 관점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환경에 따른 삶의 모색에 있다.
서구인들은 부분의 실체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분은 전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부분의 합이 전체라는 관점과 논리에 익숙해 있다.
동양인들은 부분과 부분간의 연관성을 중시한다. 부분은 전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관점에 익숙해 있다. 서구의 환원주의적 관점과 동양의 유기체주의적 관점의 격차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서구는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반면에, 동양은 이것과 저것의 연관성이나 상대성에 관심을 둔다. 이와 같이 부분과 전체를 보는 관점이 극과 극임에도 우리 사회는 환원주의적 관점과 유기체주의적 관점을 뒤섞어 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환원주의적 관점과 유기체주의적 관점이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서 혼용되고 있다. 따라서 일관된 논리가 주류를 이루지 못하고, 통합적인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고 있다.
서구에서 세계를 보는 관점과 논리는 동양에서 세계를 보는 관점과 논리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서양과 동양의 관점과 논리를 구별짓지 않고 뒤섞어 놓고 있다. 그 이유를 찾자면, 뒤늦은 서구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서구화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과학주의>와 <반과학주의>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함께 걷고 있다. 과학주의자와 반과학주의자가 아무런 격차를 느끼지 않고 동행한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는 상황논리를 원용한다. 세계를 보는 관점과 논리는 과학주의적이지만, <삶의 세계의 구조와 원행원리>를 실현하는 행위는 반과학주의적이다.
문제는 <반과학주의적인 삶의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로 인하여 사고방식의 혼란과 행동양식의 혼돈과 가치관 인생관의 뒤섞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반과학주의적 사고방식과 고유문화의 부활현상을 하나의 개념 속에 통합시키고 있다. 이것과 저것을 뒤섞어서 통합으로 가고자 한다.
서구의 환원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이 동양의 유기체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나 하나로 통합을 구현하려는 혼돈 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선(禪)이 등장한 것이다.
선(禪)이 등장하게 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현대물리학자들 입에서 전에 듣지 못했던 <전체의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그와 동시에 <모든 이론은 적용성의 한계를 갖는다>는 말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이론을 거부하고 직관지(直觀知)를 선양하는 선이 부상하게된 것이다.
다른 또 하나는 미국 동부에 있는 동양학연구가들이 앞으로는 동양에 가야 부서진 진주 부스러기라도 주어올 수 있다는 언급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여론을 형성하는 바람에 우리 사회에서 고유문화의 부활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禪)이 등장하게 된 또 다른 측면에서의 동인은 고유문화의 부활이다.
군사독재가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정보원이 자취를 감추고 경제력이 늘어나고 군사력이 신장되고 정치력마저 높아짐에 따라 자기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게 일어난데 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근대화의 후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탈 서구화 자극(刺戟)>으로 인하여 고유문화의 부활현상이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 변법개조(變法改造), 전반서화(全般西化)를 통해 서구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유문화를 불태워 버림은 물론 전통적 유대와 사회적 관계의 와해를 무서운 줄 모르고 저지르다가 사회적 관계의 붕괴와 아노미현상에 휘말리다보니 새로운 경각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통적 유대와 사회적 관계의 와해를 두려워하게 된 나머지 부랴부랴 선택된 것이 선(禪)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것>에 대한 마음이 변한 것이다. 정치가들이 서민들이 사는 재래시장을 찾고 깊은 산속의 사찰을 찾게 된 까닭도 전통적 유대에 관한 관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과학주의가 범람하는 21세기에 8세기 당조(唐朝)의 선(禪)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대단히 복합적인 사회 변동에 기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구화를 통해서 외적인 삶의 조건개선에 주력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자 인간의 내적인 정신승화(精神昇化)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눈을 밖으로만 주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의 내면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질의 번영에 주력했던 사람들이 정신의 승화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궁극적 실체, 즉 자아의 정체성을 궁구하는 데에 매달려 있다가 자연세계와 나와의 연관성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서구화를 통해서 시간 공간 물질이라고 하는 것, 즉 우주라고 하는 것이 이 우주 밖에 존재하는 초능력자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하는 상정에 매몰되어 있다가 민주화를 이룬 동시에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의 구축과 함께 탈서구화(脫西毆化) 과정으로 진입하면서 자연세계와 존재의 연관성을 유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1세기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세계의 일부이듯, 인간 또한 자연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연세계는 인간은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생각했다.
탈서구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1)모든 존재와 (2)존재자들을 포괄하는 자연세계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방법론이 다양해졌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부분과 전체를 보는 관점은 물론이며 자기의 관점을 논리화하는 방법론도 다양해졌다. 특히 과학적 사고방식과 새로운 생물학에 의한 생명의 창발성에 관해서 눈을 열게 되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세계에 포괄된다는 의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 세계의 부분(部分)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연세계는 전체(全體)를 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긴요한 자기의 관점을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해 부분과 전체, 인간과 자연세계를 선택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특히 21세기 세계 질서 재편의 핵심적인 변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연세계와 인간의 내면을 관조함에 있서 환원주의적인 관점이 아닌 유기체주의적 관점을 원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 언급한 여러 사례를 돌이켜 본다면, 왜 이제 와서 선(선)을 원용하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부분이 존재하는 자연세계, 알 수 없는 변화로 들끓는 자연세계에서 어느 한 부분을 택하여 자기의 관점을 고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세계, 부분과 전체를 깊이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전체는 분화(分化)되지 않은 <하나>로서의 심미적(審美的) 연속성을 특성으로 소장하고 있다. 부분은 두두물물(頭頭物物)의 내면에 잉태된 만물조화(萬物調和)의 창조적인 율동을 내장하고 있다.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이 선(禪)이라는 말은, 분화되지 않은 자연세계의 심미적 연속성과 두두물물(頭頭物物)의 내면에 잉태된 만물조화의 창조적 율동을 깊이 관조한다는 말이다.
<10>
존재하는 두두물물이 자연세계의 일부일지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방법론이 단 하나여야 한다는 논리는 당위성을 갖기 어렵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점과 논리를 달리하는 이론과 서로 다른 다양한 차원의 설명방식이 따라야 한다.
부분과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서로 다른 차원의 관점과 논리체계는 몇 가지의 다름으로 그 범주를 좁힐 수 없다. 그렇지만, 부분과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들이 서로 서로 연관성을 갖는 동시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부분과 전체를 설명하는 논리적 구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1)지상계의 역학구조와 (2)천상계의 역학구조이다.
9세기 선가(禪家)의 조사(祖師)들은 부분과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체계에 있어서 초자연주의적(超自然主義的) 방법론을 강구하고자 했다.
21세기를 사는 조사들 역시 지상계의 역학체계와 천상계의 역학체계를 통합시킨 "뉴턴의 역학구조"를 무시하고 9세기에 유행했던 초자연주의적 역학체계인 천상계(天上界)의 역학구조를 원용하고자 한다.
오늘의 조사들이 뉴턴의 통합적 역학구조를 무시하고 초자연적 역학구조인 천상계의 역학체계를 원용하여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을 해명하고자 하기 때문에 많은 모순점을 들어내게 된다.
현대적 학문과 교육을 통해 "뉴턴의 통합적 역학구조"를 습득함으로써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한 현대인들은 지상계(地上界)가 아닌 천상계의 역학구조를 원용하여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을 설명하려는 조사들의 설명체계에서 모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조사들이 천상계의 역학구조를 원용하여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을 설명하고자 함에도, 자연세계를 일자(一者)로 상정하고, 부분을 다자(多者)로 상정한 조사들의 관점에 대해서만은 경의를 갖고 있다.
조사들의 관점, 즉 초자연주의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려는 조사(祖師)들의 태도일지라도, 일자(一者)와 다자(多者)간의 연관성에 관하여 투철한 관심을 경주하는 태도에 대하여 경의를 느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조사들이 갖는 인간과 자연세계에 관한 진지한 태도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
오늘에 이르러 선(禪)이 일어나게된 이유는 크게 보면 세계 질서 재편의 변수와 연관성이 깊고, 인간과 자연세계를 진지하게 관조하는 선사들의 삶의 태도에 있다.
글-김인수(k41i01s01@yahoo.co.kr)
http://kr.blog.yahoo.com/k41i01s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