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中
36
해제
선문에서는 옛 조사들이 남긴 언행 중에서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한 것을 고칙(古則)이라 한다.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스님이 명주(明州:지금의 浙江省 奉化縣)에 있는 설두산의 자성사(資聖寺)에 머물면서, 고칙을 100개로 정리하고 거기에 송을 붙인 것이「설두송고」이다. 이 송고집은 당시 절강성을 중심으로 한 선과 문학의 조화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선림보훈」에 의하면 임제종 분양선소(汾陽善昭:947-1024)의 「분양송고(汾陽頌古)」를 본따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많은 승려들이 이런 송고류를 만들었는데, 이 풍조는「경덕전등록」의 편찬을 거슬러 올라가서「조당집」의 편찬 등에 의해 격발된 것으로 보인다.
사천성 출신인 설두스님은 설봉-운문-향림-지문-설두로 이어지는 운문계의 선사이다. 그러나 여하경(呂夏卿)이 지은 탑명에 의하면 설두스님은 마조의 9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특출한 선사는 모두 마조의 법손이라고 믿는 당시의 사상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에는 이미 마조-백장-황벽-임제로 이어지는 임제종이 선풍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송대 임제종에 속하는 원오스님이 이 송고집을 거량하여「벽암록」으로 후세에 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설두송고」를 대본으로 원오 극근(원悟克勤:1063-1135)스님이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제창한 것이 바로 이 「벽암록」이며, 이 책은 「벽암집」「불과원오선사벽암록」등으로 불려왔고,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라는 칭호와 함께 선서(禪書)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설
두스님이 하신 [본칙]·[송]과 원오스님이 하신 [수시]·[평창]·[착어]로 구성되어 있다. [수시]는 법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일종의 문제제기이고, [평창]은 [본칙]과 [송]에 대한 설명이고, [착어]는 한두 마디로 상대를 격발시키는 간단한 평가이다.
그러나 원오스님의 제창은 단순한 글자 해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님 자신의 전인격이 투여되어 있다. 특히 말이나 문헌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기 위하여 당시의 구어와 속어를 종횡무진하게 사용하여 수행자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원오스님의 생생하고 발랄한 강의의 모습은 그의 훌륭한 기록자들에 의해 그 몸짓마저도 전해지고 있다. 설두스님이 표전(表전)의 논리로 본분의 소식을 알린 반면, 원오스님은 차전(遮전)의 방식으로 일체의 사량분별을 뛰어넘어 자기의 본래면목을 단박에 깨치도록 하였다. "「벽암록」을 읽으면 모든 알음알이가 딱 끊어진다"고 한 성철스님의 평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벽암록」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밀도 있게 완성되어, 중당 이후의 문단(文壇)의 중심적인 사조인 돈오무심(頓悟無心) 사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더구나 송대의「창랑시화(滄浪詩話)」등의 시평어집에서 당대(唐代)에 유행하던 돈오돈수 사상을 근거로 당시(唐詩)를 평한 것을 상기할 때에「벽암록」이 갖는 불교문학사적 위치는 대단히 크다. 순간적으로 포착된 느낌을 압축된 언어로 정착시켜야만 하는 시인의 긴장감이 일체의 사량분별이나 점진적인 단계를 철저히 거부하는 선사의 삶과
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선 사상사로 보더라도 돈오견성을 부르짖는「육조단경」의 사상과, 철저한 자기 주체성을 강조하는 선사들의 정신이「벽암록」에 집약되어 있다. "기봉이 단계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독바다에 떨어진다"라든가, "남으로부터 얻은 보물은 자기의 보물이 아니다"라는 옛 조사들의 말을 원오스님은 누누이 인용하고 있다.
원오스님은 팽주 숭녕(彭州崇寧:사천성 성도) 출신으로 자(字)는 무착(無着)이고 극근은 스님의 휘(諱)이다. 생전에는 북송의 휘종 임금이 불과(佛果)라는 법호를, 사후에는 남송의 고종 임금이 원오라는 법호를 내렸다. 어려서 출가하여 뒷날 오조 법연(五祖法演:?-1104)스님의 법을 이어 임제의 가풍을 날렸으나, 문하에는 항상 천여 명의 납자가 있었으며 그 중 대혜 종고(大慧宗 )와 호구 소륭(虎丘韶隆)스님이 유명하다. 당시의 한림학사 곽지장(郭知章)과 재상 장상영(張商英)의 귀의를 받아 여러 관사(官寺)에서 종풍을 선양하던 중 성도의 소각사(昭覺寺), 호남의 협산사(夾山寺)와 도림사(道林寺) 등지에서 「설두송고」를 제창하여 「벽암록」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다. '벽암'은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에 있는 한 건물의 편액에 있는 글자이다. 스님의 법어는 제자들에 의해 '어록'과 '심요'로 편집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벽암록」의 텍스트와 그 계통은 매우 복잡한데, 여기서는 이 책의 대본이 된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이하 삼성본으로 약칭)을 중심으로 간단
히 설명하기로 한다. 선화(宣和) 7년(1125)에 쓴 무당(無黨)스님의 후서에 의하면, 우너오스님이 성도에서「설두송고」를 제창했다고 한다. 그후 협산·도림에서도 또다시 제창하였는데 그때마다 말씀은 조금씩 달랐으나 그 뜻은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건염(建炎) 2년(1128)에 쓰인 보조스님의 서에 의하면 협산 영천원의 벽암에 주석하시던 중 제창하신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모순이다. 아마도 성도 강의록과 협산 강의록이 필사본의 형태로 둘 다 유행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뒷날 여러 다른 종류의 판본으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성본「벽암록」은 조선조 세조 11년(1465)에 제작한 을유자(乙酉字:중간 크기의 동활자)로 찍은 책이다. 이 책은 ①보조의 서, ②만리방회의 서, ③삼교노인의 서, ④주치의 서의 순으로 서가 붙어 있다. 그리고 ①무당의 후서, ②희릉의 후서, ③정일의 후서, ④풍자진의 후서, ⑤중간원오선사벽암집소 순으로 후서가 붙어 있다. 이 후서 중 ② ③ ④에 모두 장명원의 재판(再版)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성본은 장명원본 계통을 저본으로하여 활자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가흥장속장본과 건륭장경본의 권제10 뒤에,「북판(北版)」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대목이 있는데,삼성본도「북판」이 오류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장명원본 계통 중에서도「북판」과 같은 계통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 삼성본은 각 칙의 내용을 표시하는 제목이 없고, 각 칙의 본칙의 첫머리에 번호가 붙어 있고, 권제1 끝에 '협산무애선사항마표'가
없는 점 등이 중국의 명본(明本), 가흥장속장본, 건륭장본, 대청광서본과는 다른 점이다. 이런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에 삼성본은 옛날의 원형에 가까운 계통이라 할 수 있다.
삼성본은 1991년 9월 30일에 보물 제1093호로 지정된 책으로, 두 권씩 제본하여 5책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1책은 27장, 제2책은 1장, 제3책은 12장, 제4책은 3장이 각각 빠져 있고, 제5책은 온전하다. 그리고 뒷사람들이 수리하는 과정에서 제1책·제4책·제5책의 일부의 순서가 뒤바뀐 듯하다. 본 선림고경총서의 영인본에서는 다른 판본 등과 대조하여 삼성본으 순서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삼성본의 빠진 부분과 파손된 글자는, 조선의 을유자로 인쇄된 일본의 대동급기념문고(大東急記念文庫) 소장본을 이용하여 복원하였다. 이 일본 소장본은 일본인의 손에 이한 토가 달려 있어, 독자들은 삼성본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문의 오자(誤字)나 낙자(落字)는 일본 암파문고(巖派文庫)의「벽암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삼성본「벽암록」의 원형이 학계에 알려짐에 의해, 조선 초기「벽암록」의 유통과 중국 선서를 수용하는 당시 우리나라 불교계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중국 선종의 여러 가풍 중에서 임제의 가풍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우리나라 선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귀중한 문헌을 제공해준 삼성출판박물관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백련선서간행회
일러두기
1. 이 책의 대본은 조선조 세조 11년(1465)에 제작한 을유자(을유자:중간자)로 인쇄한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보물 제1093호)이다.
2. 원문에는 각 칙에 번호만 붙어 있고 칙명(則名)은 없으나 이 책에서는 대동불교연구원본(大東佛敎硏究院本)을 해석하여 제목을 달았다.
3. 출판사 상·중·하권으로 나누고, 찾아보기 쉽도록 부록의 원본에도 각 칙마다 번호를 붙였다.
4. 원문의 '垂示云', '擧'는 각각 [수시]·[본칙]으로 표기했고, 이와 함께 [평창]·[송] 등의 표시를 사용하여 서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원오스님의 착어는 "-"로 표시하고 활자를 작게 했다.
5. 원문에서는 설두스님의 말은 한 자 내려서 원오스님의 말과 구별을 하였으나, 이 번역에서는 설두스님의 말인 [본칙]과 [송]은 활자를 크게 하고, 원오스님의 말인 [수시]와 [평창]은 글자를 작게하여 구별하였다.
6. 원문의 교감은 의미의 소통에 지장이 있는 부분에만 한정했고, *표를 사용하여 각주를 달았다.
7. 영인이 저본은 삼성출판박물관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인 일본의 대동급기념문고(大東急記念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삼성출판박물관소장본의 결락된 부분과 오손된 부분은 대동급기념문고 소장본을 이용하여 복원하고, 영인하여 부록으로 실었다.
8. 편집의 체제상 문맥의 흐름에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 )안에 설명을 하였다.
차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性撤/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圓澤/4
선림고경총서 완간(完刊)에 붙여……………………………退翁性撤/6
해제(解題)/7
벽암록 中
제31칙 마곡의 주장자를 떨치고[麻谷振錫]………………………… 19
제32칙 임제의 한 차례 때림[臨濟一掌] …………………………… 29
제33칙 자복의 일원상[資福圓相] …………………………………… 34
제34칙 앙산의 오로봉[仰山五峰] …………………………………… 40
제35칙 앞도 삼삼 뒤도 삼삼[前三三後三三] ……………………… 47
제36칙 장사의 봄기운[長沙春意] …………………………………… 54
제37칙 반산의 마음을 구함[盤山求心]……………………………… 60
제38칙 풍혈의 무쇠소[風穴鐵牛] …………………………………… 66
제39칙 운문의 황금털[雲門金毛] …………………………………… 81
제40칙 남전의 뜰에 핀 꽃[南泉庭花] ……………………………… 86
제41칙 조주이 크나큰 죽음[趙州大死]……………………………… 92
제42칙 노방의 잘 내리는 눈[老龐好雪] …………………………… 98
제43칙 동산의 더위와 추위[洞山寒署]………………………………104
제44칙 화산의 북을 치는 뜻[禾山打鼓] ……………………………111
제45칙 청주에서 지은 삼베적삼[靑州布衫]…………………………119
제46칙 경청의 미혹되지 않음[鏡淸不迷]……………………………125
제47칙 운문의 육대(六大)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雲門六不]……131
제48칙 태부의 옷소매를 떨치고[太傳拂袖]…………………………141
제49칙 삼성의 금빛 물고기[三聖金鱗]………………………………144
제50칙 운문의 진진삼매[雲門塵塵三昧] ……………………………149
제51칙 암두의 최후의 언구[巖頭末後句]……………………………153
제52칙 조주의 돌다리[趙州石橋] ……………………………………164
제53칙 마조의 들오리[馬祖野鴨] ……………………………………169
제54칙 운문의 손을 펴 보임[雲門展手] ……………………………175
제55칙 도오의 말할 수 없음[道吾不道] ……………………………179
제56칙 흠산의 화살 한 대[欽山一鏃]………………………………189
제57칙 조주의 분별하지 않음[趙州不揀]……………………………196
제58칙 조주의 함정[趙州 窟] ………………………………………200
제59칙 조주의 지극한 도[趙州至道]…………………………………204
제60칙 운문의 주장자[雲門 杖] ……………………………………209
제61칙 풍혈의 한 티끌[風穴一塵]……………………………………216
제62칙 운문의 보물 한 가지[雲門一寶] ……………………………221
제63칙 남전의 고양이를 벰[南泉斬猫]………………………………228
제64칙 조주 짚신을 머리에 얹고[趙州載鞋] ………………………232
제65칙 세존의 침묵[世尊良久] ………………………………………236
제66칙 암두의 할[巖頭作□] …………………………………………244
제67칙 경상(經床)을 두드린 부대사[傳大師揮案]…………………250
제68칙 혜적과 혜연[惠寂惠然] ………………………………………256
제69칙 남전의 일원상[南泉圓相] ……………………………………263
제70칙 위산의 목도 입도 막은 뒤[ 山倂却]………………………269
<부록> 碧巖錄(三省出版博物館 所藏本)
벽암록
中
원오(원悟)스님께서 풍주(풍州)의 협산(夾山)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석하시면서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송고(頌古)에 대하여
평창(評唱)한 말씀의 핵심
{{벽암록 中
}}제 31 칙
마곡의 주장자를 떨치고[麻谷振錫]
{{벽암록 中
}}
[수시]
움직이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으면(본래 맑은 물이지만) 얼음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면 여우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투철하게 사무치고, 꽉 믿어서 실오라기 만한 가리움마저 없다면, 용이 물을 얻은 듯, 범이 산을 의지한 듯하여, 놓아버려도 기와 부스러기에서 광명이 나오고, 잡아들여도 황금이 빛을 잃게 되어, 옛사람의 공안도 (직선 코스가 아닌) 빙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말해보아라. 거량해보련다.
[본칙]
마곡스님이 석장(錫杖)을 지니고 장경(章敬)스님에게 이르러, 선상(禪床) 주위를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조계의 모습을 쏙 빼닮았네. 끝내는 하늘도 놀라고 땅도 감동했다.
{{
}}{{벽암록 中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지, 옳지!"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한 배 탄 사 람들을 모두 속였다. 이 무슨 말이냐? 사람을 잡아 매는 말뚝이다.
설두스님이 착어하였다.
"틀렸다."
-용서해줘서는 안 되지. 그래도 한 수 헤아렸군.
마곡스님이 또다시 남전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여전히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다. 전에 했던 짓을 거듭 하는군. 새우가 뛰어봐야 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야."
-왜 인정하지 않는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구나. 이 무슨 이야기인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틀렸다!"
-용서해줘서는 안 되지.
당시 마곡스님이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는데, 스님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주인공이 어디에 있느냐? 이놈이 원래 남의 말을 가로채는 녀석이었군. 들통났구나.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았지만 틀린 것은 바로 자네야!"
-사람을 죽이려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만 하고, 사람을 위하려면 반드시 사무쳐야 한다. 많은 사람을 속였구나.
이는 바람의 힘[風力 : 번뇌]에서 굴러나온 바이니 결국 사
라지고 만다.
-과연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었군. 자기는 어덕하려구?
[평창]
옛사람은 행각을 할 적에 두루 총림을 편력하면서 '이 일'만을 생각하고, 선상(禪床) 위에 앉아 있는 큰스님들의 안목이 있는가 없는가를 판정하고자 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에 서로 통하면 머물렀지만 그렇지 못하면 곧 떠나버렸다.
마곡스님이 장경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장경스님이 "옳지, 옳다"고 말한 것을 보아라. 사람을 죽이는 칼[殺人刀]과 살리는 칼[活人劍]은 본분작가여야 쓸 수 있다. 설두스님이 "잘못했다"고 하니, 이것은 양쪽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대가 양쪽으로 이해한다면 설두스님의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우뚝 서 있었는데, 말해보라, 그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설두스님은 "틀렸다!"고 말하였는데 무엇이 옳다는 것일까? 설두스님은 앉아서 판결문을 읽는 것과 같다.
마곡스님은 "옳다"는 이 한마디를 가지고 바로 남전스님을 찾아가 여전히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리치고 우뚝 서 있자, 남전스님은 "아니다, 아니야"라고 하였는데, 살인도와 활인검은 모름지기 본분종사여야 쓸 수 있다. 설두스님은 "틀렸다!"고 하였으며, 장경스님은 "옳지, 옳지"라 하였고, 남전스님은 "아니다, 아니야"라고 하였으니, 이는 똑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앞에서는 "옳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틀렸다!"고 말했으며, 뒤에서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틀렸다!"고 하였을까?
만일 장경스님의 말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자신마저 구제하지 못하겠지만, 남전의 말에서 알아차린다면 불조와 함께 스승이 될 것이다. 비록 그러하기는 하나 납승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알아야 한다. 절대로 남의 말을 가지고서 분별해서는 안된다. 그가 물은 것은 매한가지였는데 왜 한 사람은 "옳다"하고, 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을까? 통달자재한 작가[通方作家]로서 완전한 해탈을 얻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또 다른 생애가 있겠지만, 기틀[機]과 경계[境]를 잊지 못한다면 결코 양쪽에 막힐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을 분명히 판별하고 천하인의 혀를 꼼짝 못하게 하려면 반드시 두 차례 "틀렸다"라고 한 말을 또렷이 알아야 한다. 뒤에 설두의 송은 오직 이 두 차례의 "틀렸다!"는 말을 노래 했을 뿐이다. 설두스님은 활발발(活 )하게 드러내고자 이처럼 말했던 것이다. 만일 몸 속에 피가 있는 자라면 당연히 언구에서 이해하지 않고, 속박하는 말뚝 위에서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사람은 "설두스님은 마곡을 대신하여 두 차례 '틀렸다!'고 말하였다"고 하지만 이와는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옛사람의 착어는 중요한 관문을 꽉 막아버린다는 사실을 모른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도 저기도 모두 옳으나 결국은 두 쪽 모두 아니다.
경장주(慶藏主)는 "석장을 짚고 선상을 맴돌며, 옳으니 옳지 않느니 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고 하였는데, 실은 이것도 아니다.
그대들은 듣지 못하였는가? 영가(永嘉)스님이 조계(曹溪)에 이르러 육조(六祖)스님을 친견할 적에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치면 우뚝 서 있었다. 그러자 육조는 "사문(沙門)이란 3천 가지의 큰 위의[三千威儀]와 8만 가지의 구체적인 규율[八萬細行]까지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스님은 어디서 왔기에 그처럼 거만을 부리는가?"라고 하였다. 무슨 까닭에 육조는 그에게 거만을 부린다고 말하였을까? 그때는 옳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옳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옳으니 옳지 않느니 하는 것은 모두 속박하는 말뚝이다. 오로지 설두스님만이 두 차례 "틀렸다!"고 하였으니,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마곡스님은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였는데 스님은 왜 옳지 않다고 하십니가?"라고 하였는데, 이 늙은이가 눈썹을 아끼지 않고 (상대를 일깨워주느라) 적지않은 허물을 범하였다. 남전스님이 말하기를 "장경스님은 옳지만 바로 너는 틀렸다"라고 하였으니, 남전스님이야말로 토끼를 보고서 사냥하려고 놓아보냈다고 말할 만한다.
경장주가 말하였다. "남전스님이 너무도 매몰차지 못해 마지 못해, 다시 허물을 들추어 말하기를 '이는 바람의 힘[風力]에서 굴러나온 바이므로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원각경(圓覺經'에서는 "나의 이 몸은 사대(四大)로 화합된 것이니, 이른바 털, 손톱,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뇌 등 더러운 물질은 모두 땅으로 돌아가고, 침, 눈물, 고름, 피는 모두 물로 돌아가며,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돌아가나니 사대(四大)가 각각 떠나면 오늘의 이 허망한 몸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저 마곡스님이 석장을 지니고 선상을 돌았던 것은 이미 바람힘[風力]에서 굴러나온 바이므로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하였다. 말해보아라! 결국 마음의 종지[心宗]를 밝히는 일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무쇠로 주조한 놈이어야만이 할 수 있다.
왜! 듣지 못하였느냐? 장졸(張拙)이라는 한 진사(進士)가 서당장(西堂藏)선사를 참방하여 물었다.
"산하대지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느니라."
"틀렸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누구를 참방하였소?"
"경산(徑山)스님을 참방하였습니다. 내가 묻기만 하면 경산스님은 모두 '없다'고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권속이 몇이나 있소?"
"아내 한 사람과 두 자식이 있습니다."
"경산스님에겐 권속이 몇 명이 있었소?"
"경산스님은 옛 부처[古佛]이시다. 스님은 그를 비방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경산스님처럼 되거든 꼭 '없다'고 말하소."
그러자 장졸은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모름지기 작가종사라면 끈끈한 속박을 벗겨주며 (속박하는) 못과 쐐기를 뽑아주어야 한다. 한 곳만 국집하지 말고, 종횡무진 자재(自在)하여야 한다.
앙산스님은 중읍(中邑)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사계(謝 : 계를 받고 은사께 드리는 의식)한 행동을 살펴보라.
중읍스님이 앙산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선상 위에서 손뼉을 치면서 "큰스님(和尙)!"하자, 양산스님은 곧 동편에 섰다가 서쪽에 서고, 또다시 한복판에 섰다. 그런 뒤에 사계를 하고 곧 뒤로 물러서자 중읍스님이 말하였다.
"어디에서 이런 삼매를 얻었느냐?"
"조계(曺溪)의 도장[印章]을 고스란히 찍어왔지요."
"말해보라. 조계스님은 이 삼매로 어떤 사람을 제접하였느냐?"
"일숙각(一宿覺)을 제접했습니다."
이어 앙산스님이 도리어 중읍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이 삼매를 얻으셨습니까?"
"마조(馬祖)의 처소에서 이 삼매를 얻었노라."
이와 같은 대화를 한다면, 이는 하나만 들어도 셋을 밝히고 근본을 보고서 지말을 아는 놈이 아니겠는가!
용아(龍牙)스님은 대중법문에서 "참선하는 사람은 반드시 조사와 부처를 뛰어넘어야 한다. 신풍(新豊) : 동산 양개, 용아스님의 은사)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불조의 말씀과 가르침을 숙생(宿生)의 원수처럼 보아야 비로소 참선할 자격이 있다. 만일 뛰어넘지 못한다면 불조에게 속임을 당하게 된다'라고 했다."
그때 어느 스님이 (용아스님에계) 물었다.
"불조께서는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그대는 말해보라. 강과 호수가 사람을 막아 세우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또 용아스님은 말했다.
"강과 호수는 사람을 막아 세우려는 마음이야 없었지만 사람 스스로 지나가지 못하여, 강과 호수가 도리어 사람을 막는 격이 되었다. 그러니 강과 호수가 사람을 가로막는다고 말할 수 없다. 조사와 부처가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야 없겠지만, 사람 스스로가 뛰어넘지 못하기에 부처와 조사는 사람을 속이는 격이 되었다. 그렇다고 부처와 조사가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불조의 가르침을 뛰어넘으면 이 사람은 곧 불조를 뛰어넘은 것이다. 불조의 뜻을 체득해야지만 비로소 향상(向上)의 옛사람과 같을 것이며, 뛰어넘지 못한다면 부처를 배우고 조사를 배운다 해도 만겁(萬劫)토록 당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불조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깨쳐야 하느니라."
'이 자리'는 반드시 이래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지도하려면 철저해야 하고, 살인을 하려면 피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남전스님과 설두스님은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눈썹을 아껴라. 법령에 따라서 시행하였구나.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이로 다.
절대 말하지[拈] 말라.
-두 개의 구멍 없는 철추로다. 설령 천수대비(千手大悲) 관음이라 해도 거론하지 못하리라. 혹 말한다면 스님에게 삼십 방망이를 먹이리라.
사해(四海)에 물결이 잔잔하고
-천하의 사람들이 꼼짝하지 못한다. 동서남북이 모두 똑같은 가풍이로구 나. 요즈음엔 비가 많이 내리는군.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
-적나라하여 말끔하구나. 자신도 편안하고 바다와 강물까지도 평온하다.
고책(古策 : 지팡이)의 가풍이 열두 대문보다도 높은데
-어찌 이 같으랴. 주장자에는 눈이 없다. 절대로 주장자 위에 살림살이를 하지 말라.
문마다 (장안에 이르는) 길 있건만, 텅 비어 쓸쓸하네.
-한 물건도 없구나. 그대들의 평상심[平生]을 속였다. 곁눈질했다 하면 장님이 되리라.
쓸쓸하지 않음이여!
-그러면 그렇지! 몸을 돌릴 곳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벌써 장님이 되었 군.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선지식은 병 없는 약을 잘 사용하느니라.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하루종일 무엇 때문에 졸고 있는 가? 하늘을 휘젓고 땅을 더듬어 무엇 하려고?
[평창]
이 송은 덕산스님이 위산스님을 친견했을 때의 공안과 같다.먼저 공안을 가지고 두 전어(轉語)에 착어하여 하나로 꿰어놓은 뒤에 송을 한 것이다.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절대로 말하지[拈] 말라"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이 말한 뜻은 이곳에서도 한 번 틀렸고, 저곳에서도 한 번 틀렸으니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하면 틀린다. 모름지기 이처럼 두 번의 '틀렸다'는 말을 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해의 물결은 잔잔하며,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는 것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경지라 하겠다. 그대가 만일 이 두 번의 "틀렸다"라는 데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눈꼽만큼도 일삼을 것이 없을 것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이며, 긴 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이다. 닷새 만에 바람 한 번 불고 열흘 만에 비 한 번 내리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해의 물결이 잔잔하고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마곡 스님이 석장을 지녔던 것을 노래하여 "고책의 가풍이 열두 대문보다 높다"하였는데, 옛사람은 (말을 때리는) 채찍을 책(策)이라 하지만 납승가에서는 주장자를 책(策)이라 한다. (<祖庭事苑>에서는 古策을 錫杖이라 하였다). 서왕모(西王母) 선녀의 요지(瑤池) 위에는 열두 개의 붉은 문이 있다고 한다. 고책(古策)이란 곧 주장자인데, 주장자로 인해 일어난 맑은 바람이 열 두 대문보다도 높다는 것이다. 천자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거처하는 곳에도 각각 열두 개의 붉은 대문이 있다고 한다. 두 번의 "틀렸다"는 말을 알 수 있다면 주장자의 끝에서 빛이 발생하여 고책 또한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옛사람(분양 선소스님)의 말에 "주장자를 알면 일생에 참구했던 [參學事]를 끝마친다"하였고, 또 (영가스님은) "이는 모양을 내느라 괜히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여래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이다"고 하니, 이와 같은 유이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일곱 번 자빠지고 여덟 번 넘어지더라도 언제나 완전한 자재(自在)를 얻을 것이다.
"문마다 길 있건만, 텅 비어 쓸쓸하네"라고 한 것은, 길이 있기는 하나 쓸쓸히 텅 비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설두스님이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 다시 그대들에게 이를 다 파해주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쓸쓸하지만은 않은 곳이 있다. 만일 작가 선지식이라면, 병이 없을 때 먼저 약을 써야 하는 법이다.
제 32 칙
임제의 한차례 때림[臨濟一掌]
[수시]
시방(十方)을 딱 끊어버리고, 일천 개의 눈이 단박에 열리고, 단 한마디로 수많은 말을 꼼짝 못하게 하니, 일만 기틀이 싹 사라진다. 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있느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공안을 처리하지 못하겠거든 옛사람들의 말을 거량해보라.
[본칙]
정상좌가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이르러 어리둥절해한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었 구나. 허허, 어설피 무슨 짓인가.
임제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고서 한 차례 뺨따귀를 후려치고 대뜸 밀쳐버렸다.
-오늘 탈로났구나. 노파심이 간절하다. 천하의 납승들이 뛰어봤자 벗어 나지 못한다.
정상좌가 우두커니 서 있자,
-벌써 귀신굴 속에 빠져버렸다. 빗나갔다. 콧구멍을 잃었구나.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정상좌야, 왜 절을 올리지 않느냐?"
-잠자코 있던 제 3자가 보아버렸다. 완전히 그의 힘을 빌렸구나. 동쪽 사 람이 죽었는데 서쪽 사람이 슬퍼하는구나.
정상좌가 절을 하려다가
-부지런함으로 못난 것을 때우는구나.
홀연히 크게 깨쳤다.
-어두움 속에서 등불을 얻은 듯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듯하다. 잘못 에 속아서 잘못을 더해가는군. 말해보라, 정상좌는 무엇을 보았기에 갑 자기 절을 올렸는가?
[평창]
그가 이처럼 곧바로 출입하고 왕래한 것을 살펴보라. 임제의 정종(正宗)이었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이를 깨칠 수 있다면 하늘을 훌쩍 뒤집어 대지를 만들고 스스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좌는 이러한 사람이었다. 임제스님에게 한 차례 따귀를 얻어맞고 절을 하다가 대뜸 귀착점을 알았다. 그는 북방의 사람으로 기질이 아주 순박하고 강직했다. 법을 얻은 이후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그후 임제스님의 대기(大機)를 활용하였다. 그는 참으로 빼어난 인물이라 말할 것이다.
하루는 길에서 암두, 설봉, 흠산 세 스님은 만났는데,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오?"
정상좌는 말하였다.
"임제에서 옵니다."
"화상(임제스님)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세 사람이 일부러 찾아가 뵈올려고 하였더니만 복이 없어 이미 돌아가시고야 말았구려. 도대체 스님께서 살아 계실 때 무슨 말씀이 있었습니까? 상좌께서는 한두 칙(則)만 거량해 주십시오."
정상좌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거량하였다.
임제스님이 하루는 대중 설법을 하셨다.
"여러분의 몸뚱이 속에 한 무위진인(無爲眞人)이 있다. 그는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출입하고 있으니 아직 깨닫지 못한 자는 살펴보아라."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스님이 대뜸 스님의 멱살을 잡고서
"말해보라, 말해봐."
하였는데 스님이 머뭇거리자, 밀어 제쳐버리고 말하기를
"무위진인이 이 무슨 마른 똥덩어리냐?"하고 곧 방장실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에 암두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쑥 배물었다.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왜 무위진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상좌는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서
"무위진인과 무위진인이 아닌 것은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라고 하니, 흠산스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누르락푸르락 하였다.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은 가까이 앞으로 다가서서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이 수계한 지 얼마 안 되는 중이 좋음과 나쁨을 모르고서 상좌의 비위를 거슬렸으니 자비로써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노장만 아니었다면 오줌도 가릴 줄 모르는 이놈을 쳐죽여 버렸을 것이다."
또 한 번은 진주(鎭州)에 있을 때 재(齋)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 위에서 쉬다가 좌주(座主 : 강사) 세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한 사람이 물었다.
"선하(禪河)의 깊은 곳은 모름지기 밑바다까지 궁구해야만 한다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정상좌가 멱살을 잡고서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려고 하자 두 좌주(座主)가 허둥지둥 하면서 말렸다.
"제발 그만두십시오. 이 사람이 상좌의 비위를 거슬렸으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두 좌주스님만 아니었다면 강바닥까지 처박아넣었을 것을...."
그의 이러한 솜씨를 살펴보면 모두가 임제스님의 솜씨가 있었다. 그럼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자.
[송]
단제(斷際:황벽)스님이 사용했던 전기(全機)를 이어받았으니
-황하는 근원부터 혼탁하다. 아들이 아비의 일을 이어받았군.
받은 것이 어지 점잖을 리가 있을까?
-어느 곳에 있을까?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라고. 솜씨없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거령신(巨靈神)의 쳐든 손 일격에
-되게 놀라게 하네. 뽐내지 마라. (원오스님은) 불자로 한 번 탁 치고서 는,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다.
천만 겹의 화산(華山)이 부서졌다.
-건곤대지가 일시에 노출되었다. 떨어졌구나.
[평창]
설두스님은 "황벽스님의 전기(全機)를 이어받았으니 받은 것이 어찌 점잖을 리가 있겠느냐"라고 송했다. 황벽(黃壁)스님의 대기대용(大機代用)을 임제스님만이 바르게 계승하여 이를 드러냄에 조금치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혹 주저하면 바로 미혹에 떨어진다.
<능엄경>에서는 "만일 내가 손가락을 튕기면 해인삼매(海印三昧)의 광채가 나타나지만, 그대들이 잠깐이라도 마음을 쓰면 번뇌가 먼저 일어난다"고 하였다.
"거령신이 쳐든 손 일격에 천만 겹의 화산이 부서졌다"는 것은, 거령신에게는 크나큰 신통력(神通力)이 있어, 손으로 화산(華山)을 부셔 황하(黃河)에 흘려 보낸다고 한다. 정상좌의 의심덩이[疑情]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임제스님에게 한 차례 따귀를 얻어맞고 얼음 풀리듯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제 33 칙
자복의 일원산[資福圓相]
[수시]
동서를 분별하지 않고 남북을 구분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저녁부터 아침나절까지 무심하니, 이러면 그가 졸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느 때는 눈빛이 유성(流星)처럼 빛나기도 하니, 이러면 그가 성성(惺惺)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때는 남쪽을 북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말해보라, 이는 마음이 있는[有心] 것일까, 없는[無心] 것일까? 도인(道人)일까, 범인(凡人)일까? 여기에서 뒤어넘어야만 비로소 귀착점을 알아, 옛사람은 이러하기도 저러하기도 했음을 알 것이다. 말해보라, 이는 어떠한 상황인가? 본칙을 거량해보리라.
[본칙]
상서(尙書) 진조(陳操)가 자복(資福)스님을 떠보러 갔는데, 자복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일원상(一圓相)을 그렸다.
-정령(精靈)이 정령을 알고 도적이 도적을 안다. 만약 너그러움이 없었다 면 이놈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금강권(金剛圈)을 알아 차리겠느냐?
진조는 말하였다.
"제자가 이렇게 와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리시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오늘 졸고 있는 놈을 만났다. 이 도적놈아,
자복스님이 곧 방장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도적도 가난한 집은 털지 않는다. (자복스님은) 벌써 그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진조는 거우 한쪽 눈만 갖추었다."
-설두스님은 정수리에 눈을 가지고 있다. 말해보라, 그의 의도는 어디에 있었는가? 일원상을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설두스님의 착어는) 명쾌하 군. 용두사미구나. 당시 한 차례 내질러 진조상서가 나아가려 해도 문이 없고 물러가려 해도 길이 없도록 했어야만 했다. 말해보라, 어떻게 내질 러야 할까?
[평창]
상서 진조는 배휴(裵休), 이고(李 )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스님을 만나면 먼저 재(齋)를 청하여 삼백 냥을 보시한 후 반드시 그를 시험해보았다. 하루는 운문스님이 와서 만나자마자 물었다.
"유교의 서적[儒書]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좌주(座主 : 강사)가 있는데, 선승들이 행각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상서께서는 지금까지 몇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하였습니까?"
"바로 지금 처음으로 상좌에게 묻는 것이다."
"바로 지금은 그만두고 무엇이 교학의 뜻입니까?"
"누런 종이에다 붉은 축(軸)으로 이루어진 경전이 그것입니다."
"이는 문자언어일 뿐이니 무엇이 교학에서 주장하는 뜻입니까?"
"입으로 말하고자 해도 말이 사라지고 마음으로 좀 궁리하고자 해도 생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입으로 말하고자 해도 말을 잃어버린 것은 말이 있다고 전제했기 때문이며, 마음으로 좀 궁리하고자 하여 생각이 사라져버린 것은 망상을 전제로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교학에서 말하는 뜻입니까?"
진조가 대답하지 못하자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상서께서 <법화경>을 본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네."
"경(經)에 이르기를 '모든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이 모두 실제의 모습[實相]과 서로 위배(違背)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말해보시오, 비비상천(非非想天)에 지금 몇 사람이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까?"
진조가 또다시 말하지 못하자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상서께서는 가벼이 그러지 마시오. 스님들이 삼경오론(三經五論)을 팽개치고 총림에 들어와 10년, 20년을 지내도 (깨치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하는데 상서인들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진조는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또 한 번은 여러 관리들과 함께 누각에서 여러 스님들이 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한 관원이 말하였다.
"오는 사람들은 모두 참선하는 스님들인가 봅니다."
진조는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어떻게 아닌 줄을 아십니까?"
"가까이 다가오면 그대에게 판별해주겠다."
스님들이 누각 앞에 이르렀을 때 진조는 갑자기 "학인스님들!"하고 불렀다. 스님들이 머리를 쳐들자 상서는 여러 관원들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오로지 운문스님 한 명만은 진조상서가 감파하려 해도 못 했으니, 목주(睦州)스님 밑에서 참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자복스님을 떠보러 가자 자복스님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대뜸 일원상을 그려 보였다. 자복스님은 위산스님, 앙산스님 회하의 큰스님이다. 평소 상대가 사는 고장의 경치나 물건[境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사람을 제접하기를 좋아하였다. 진조를 보자마자 일원상을 그려보였지만 진조 또한 작가였으니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속지 않고 스스로 점검하여 말하였다. "제자가 이렇게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리시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이에 자복스님이 문을 닫아버렸는데, 이러한 공안을 언어 가운데에서 표적을 분별하고 구절 속에서 기틀을 감춰두었다고 한다.
설두스님은 "진조는 한쪽 눈만을 갖추었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설두스님이야말로 정수리[頂門]에 일척안을 갖춘 분이다. 말해보라, 이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이 일원상을 주었어야만 했다. 모두 이와 같이 한다면 납승들이 어떻게 사람을 지도할까? 나는 그대들에게 묻노니, 다시에 그대가 진조였다면 무슨 말을 했어야 설두스님에게 "그대는 한쪽 눈밖에 갖추지 못했다"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때문에 설두스님은 이를 뒤집어 송을 하였다.
[송]
둥그런 진주 구르고 옥구슬은 돌돌돌.
-석 자의 주장자로 황하를 휘젓는구나. 모름지기 푸른 눈을 가진 달마여 야 할 수 있다. 무쇠로 주조했군.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鐵船)을 타고는
-이 많은 것을 무얼 하려고? 어찌 한량이 있으랴. 나 원오에게도 좀 보여 주지.
온 세상의 일없는 나그네에게 나누어주네.
-필요없다는 사람이 있다.{{유인불안(有人不安) : 당본(唐本)에는 '안(安)'자가 '요(要)'자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요(要)'로 번역했다.
}} 일없는 사람이라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드 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큰 자라를 낚을 때에는 (낚시를 던지지 말고) 올가미를 던져라.
-왔다갔다 하니 어떻게 던질 수가 없네. 두꺼비가 걸려들면 어떻게 할까? 새우나 조개라면 어떻게 할까? 반드시 자라를 낚아야만 할 것이다.
설두스님은 다시 말하였다.
"천하의 납승이 벗어나지 못하리라."
-몸이 안에 들어 있다.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라! (그런 말하는 설두)스님 은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평창]
설두스님은 "둥그런 진주 구르고 옥구슬은 돌돌돌.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을 타고는"이라고 첫머리에 곧바로 송을 하였는데, 이는 일원상을 노래한 것일 뿐이다. 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호랑이에게 뿔이 돋는 것과 같다. '이것'은 모름지기 통 밑바닥이 빠지고, 기관(機關 : 덫과 관문)을 다하고,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야만 한다. 결코 (이러쿵저러쿵) 도리로 이해하지 않아야 하며, 현묘한 말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이는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에 올라, 거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이를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니, 모름지기 온 세상의 일없는 나그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대들의 뱃 속에 조그마한 일삼음이라도 있다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유사(有事), 무사(無事)와 위정(違情), 순경(順境)과, 부처와 조사마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어야 이를 알 수 있다. 참구할 만한 선(禪)이 있다거나, 범부, 성인을 헤아리는 생각이 있으면 이를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 이를 이미 알았다면, 그가 말한 "큰 자라를 낚을 때는 올가미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큰 자라를 낚는 데는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풍혈(風穴)스님은,
맑은 바다에서 고래 낚는 데는 익숙하더니만
아차,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벌 속에 허우적거리는구나.
하였으며, 또다시 한 구절을 읊었다.
큰 자라여, 삼신산을 짊어지고 가지 마오.
내 봉래산 정상을 가려 하니......
설두스님은 다시 말하기를 "천하의 납승들이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만일 큰 자라라면 납승의 견해를 짓지 않을 것이며, 납승이라면 큰 자라의 견해는 짓지 않을 것이다.
제 34 칙{{ 제34칙에는 [수시]가 없다.
}}
앙산의 오로봉[仰山五峰]
[본칙]
앙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천하 사람이 모두 (질문이) 똑같군. 그렇기는 하지만 물어봐야지. 바람 결을 따라서 불을 놓는다. 평상시대로 대답해야 한다.
"여산(廬山)에서 왔습니다."
-알찬 사람을 얻기 어렵군.
"오로봉(五老峰)을 가봤냐?"
-가느라고 어깨가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어찌 이런 잘못을 하는 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옮겼군. 얼굴을 붉히는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만 못하다. 앞으 로는 못 가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다.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했구나."
-일삼는 것이 몹시도 많은 놈이다. 눈썹을 아꼈으면 좋으련만...... 이 늙은이가 너무도 서두르는구나.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살인도 활인검이로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두세 명이다. 요컨대 산에 가는 길을 알려면 반드시 갔다와본 사람이어야 한다.
[평창]
사람을 시험하는 핵심이 되는 곳은 입만 열면 바로 알게 된다. 고인(운문스님)은 "한량없이 도량이 큰 사람은 말의 이면에서 알아차린다"고 하였다. 정수리에 안목을 갖췄다면 듣자마자 귀결점을 알 것이다. 그들의 일문일답을 살펴보면 분명하고 또렷하다. 운문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은 모두가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하였을까? 옛사람은 여기에 이르러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리고 밝은 구슬이 손아귀에 있는 듯하여,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비치고 한족이 오면 한족이 나타나며, 파리 한 마리도 거울을 도망갈 수 없다고 하였다.
말해보라, 무엇이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하신 것인가? 이는 험준하다 하겠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이런 자라야만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운문스님이 염(拈)하여 말했다.
"이 스님이 몸소 여산에서 왔는데, 무엇 때문에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 했구나'로 말했을까?"
하루는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여러 총림에서 어느 스님이 찾아온다면 무얼 가지고 시험하려느냐?"
"제게 시험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대는 말해보아라."
"저는 평소 스님이 찾아오면 불자(拂子)를 들고서 그에게 '다른 곳에도 이것이 있더냐?'라고 묻습니다.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가 다시 '이것은 그만두고, 저것은 어떠냐?'고 말합니다."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수단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마조스님이 백장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물은 것을.
"어디에서 오느냐?"
"산 아래에서 옵니다."
"오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느냐?"
"못 만났습니다."
"왜 못 만났느냐?"
"만났다면 스님께 바로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소식을 얻었느냐?"
"제자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앙산스님이 이 스님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일찍이 오로봉에 가봤느냐?"고 말하였을 때 이 스님이 영리한 스님이었다면 "큰일났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할 것을, 도리어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스님은 작가가 아니었는데, 앙산스님은 무엇 때문에 법대로 시행하여 많은 언어 갈등을 없애지 못하고, 도리어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 했구나"라고 말하였을까?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단계 낮추어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고 하였다. 만일 한 단계 낮추지 않고 말을 하였다면 이와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송]
한 단계 낮추었는지, 아닌지를
-머리 위에도 질펀하고 발 아래도 질펀하다. 반쯤은 낮추고 반쯤은 올렸 다. 그도 이와 같고 나도 이와 같다.
누가 식별할 줄 알랴.
-정수리에 진리를 아는 눈[一隻眼]을 갖추었구나. 스님은 식별할 줄 모르 는구나.
흰 구름은 겹겹이 쌓이고
-천겹 만겹이다. 머리 위에 머리를 얹은 격이다.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
-부서졌다. (보았다가는) 눈이 먼다. 눈을 떴다 하면 잘못된다.
왼쪽으로 돌아볼 틈도 없고
-눈먼 놈아, 여전히 할 일이 없어야지. 그대는 허다한 재주를 부려 무엇 하려는가?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벌써 늙어버렸다.
-한 생각이 만년이로다. 지나갔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寒山子)를.
-문둥이가 짝을 끌고가는구나.
너무 일찍 길을 떠나
-빠르지 않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하다.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
-너나 나나 자유를 얻었다. 한 수 용서해줬다.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는 안 되지.
[평창]
"한 단계 낮추었는지 아닌지는 누가 식별하랴"하였는데, 설두스님은 도리어 그의 귀착점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 번은 추켜올렸다 한 번은 깎아 내렸다 한 것이다. "흰 구름 겹겹이 쌓이고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하였는데, 이는 "풀은 더 부룩하고 연기는 자욱하다"는 것과 몹시 흡사하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실날만큼도 범부에 속하지 않고, 성인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온 법계에도 감추지 못하고 모두를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다. 이는 이른바 '무심(無心)의 경계'이다. 추워도 차가운 줄 모르고 더워도 뜨거운 줄 모른다. 모두가 하나의 큰 해탈문이어서 왼쪽을 돌아볼 짬도 없고, 오른쪽을 쳐다보면 벌써 세월을 지나간다.
나찬(懶瓚)스님은 형산(衡山)의 석실(石室)에서 은거하였는데, 당(當) 덕종(德宗)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그를 맞이하려 하였다. 사신이 석실에 이르러 "천자의 조서가 내렸으니, 스님은 일어나 성은에 감사하는 절을 올리시오"라는 명을 하였다. 나찬은 쇠똥불을 뒤척거리며 토란을 구어 먹고 추위에 떨며 콧물을 턱까지 흘리면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신은 웃으면서,
"우선 스님께서는 콧물부터 닦으시지요."
라고 하자, 나찬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어찌 속인을 위해서 콧물을 닦는 짓을 하리요."
그는 끝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신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아뢰니, 덕종은 몹시 흠모하여 찬탄하였다. 그는 이처럼 맑고 고요하면서도 밝고 또렷하여, 남의 휘둘림을 받지 않고, 확실히 잡아들여 마치 무쇠로 주조한 자와 같았다.
선도(善道)스님 같은 이는 사태(沙汰)를 겪은 뒤에 다시는 승려생활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석실행자(石室行者)라 하였다. 그는 언제나 디딜방아를 밟으면서도 밟는 것마저 까마득히 잊었었다. 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석실행자는 밟는 것마저 잊고 있으니 그 뜻은 무엇입니까?"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느니라."
법안(法眼)스님은 원성실성송(圓成實性頌)에서 다읍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치가 다하고 알음알이 마저 잊는데
어찌 비유조차 있겠는가.
필경 서리 내리는 밤
달은 고스란히 앞 시내에 떨어지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 따라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이 아득하구나.
고개를 들어보니 낙조가 지는데
원래부터 서방에 살았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를. 너무나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하였다. 한산자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몸 쉴 곳을 얻고자 하는가.
한산(寒山)을 길이 보존하오.
산들바람 그윽한 소나무를 스치니
가까이 들을수록 더욱 좋아라.
그 아래 초로(初老)의 늙은이가
술술 불경을 읽는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가질 못하여
왔던 옛길마저 잊었어라.
영가(永嘉)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이 모두 한낱 거울 위의 티끌이다.
티끌이 사라질 때 광명이 나타나듯
마음과 법을 모두 잊으면 본성 그대로가 참이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바보 같고 멍한 사람 같아야 이 공안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언어 속에 치달리리니, 언제 끝마칠 날이 있겠는가.
제 35 칙
앞도 삼삼 뒤도 삼삼[前三三後三三]
[수시]
용과 뱀을 구별하고 옥과 돌을 가리며,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하고 의심을 결단하는 데에, 만일 이마 위에 일척안이 없거나 팔꿈치 아래 호신부(護身符)가 없으면 언제나 첫머리부터 빗나가 버린다. 그저 지금 보고 듣는 것에 어둡지 않고, 성색(聲色)에 순수하며 참다우니, 말해보라, 이는 검은 것인지 흰 것인지, 굽은 것인지 곧은 것인지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결판을 내야 할까?
[본칙]
문수가 무착(無著)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묻지 않을 수 없구나. 이러한 소식도 있었구나.
"남방에서 왔습니다."
-번뇌의 굴 속에서 나왔구나. 하필이면 눈썹 위에서 짐을 올려놓느냐. 허 공은 원래 방위가 없는데 어떻게 남방이 있겠느냐.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이런 말을 입에 담다니.....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드는 정도입니다."
-알찬 사람이란 얻기 어렵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당시에 한 번 소리지르고 내질러 거꾸러뜨려야 했다.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 입니다."
-모조리 여우의 정령들이로다. 과연 잘못을 저질렀군.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내질렀다. 창끝을 돌려대는구나.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완전히 졌다. 정신없이 허우적거린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나에게 화두를 돌려다오. 그래도 용서해줄 수는 없지.
"앞도 삼삼[前三三], 뒤도 삼삼[後三三]이지."
-이랬다 저랬다 하는군. 말해보라, 얼마나 될까? (너무 많아) 천수대비 (千手大悲)로서도 셈할 수 없다.
[평창]
무착이 오대산을 유람하는 도중 황량하고 외딴 곳에 이르렀다. 문수는 하나의 절을 화현(化現)시켜 그를 맞이하여 자고 가도록 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더냐?"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드는 정도입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 입니다."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지."
(그 뒤) 차를 마신 후 문수는 파리( 璃) 찻잔을 들고서 말하였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느냐?"
"없습니다."
"평소 무엇으로 차를 마시느냐?"
무착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는 하직하고 떠나려 했다. 문수는 균제동자(均提童子)에게 문 밖까지 전송해주도록 하였다.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라고 말하였는데, 얼마나 되는가?"
"대덕이여."
무착이 대답을 하자, 동자는 말하였다.
"'이것'은 얼마나 됩니까?"
무착은 또 물었다.
"여기가 무슨 절인가?"
동자가 금강력사(金剛力士)의 뒤를 가리켰다. 무착이 머리를 돌리는 찰나에 동자와 화현으로 나타난 절까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텅 빈 산골짜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곳을 후세에 금강굴(金剛窟)이라고 불렀다.
그후 어떤 스님이 풍혈(風穴)스님에게 물었다.
"누가 청량산(淸凉山 : 오대산의 別稱)의 진짜 주인{{)청량산정주(淸凉山正主) : 당본(唐本)에는 청량산중주(淸凉山中主)라고 되어 있다.
}}입니까?"
"무착의 질문에 한마디도 대답 못하고, 지금껏 노숙(露宿)하며 떠도는 스님이다."
투철히 참구하여 무심하게 실제의 경지를 밟고자 한다면 무착의 언구(言句)에서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확탕( 湯), 노탄(爐炭)의 지옥에서도 뜨겁지 않고, 차가운 얼음 위에서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만일 투철히 참구해 홀로 높이 금강왕 보검(金剛王寶劍)처럼 준엄하려면 문수의 말에서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물로 떠내려 보내지도 못하고 바람으로 날려보내지도 못한다.
듣지 못하였느냐? 장주( 州)의 지장(地藏)이 어떤 스님에게 물은 말을.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그곳의 불법은 어떠한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밭에 씨앗을 부리며 주먹밥을 먹는 것만 하겠느냐?"
말해보라, 이는 문수가 대답했던 곳과 같을까, 다를까? 어떤 사람은 "무착의 대답은 옳지 않고, 문수의 대답에는 용도 있고 뱀도 있으며, 범부도 있고 성인도 있다"고 하나, 이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또한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겠는가?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은 깊숙이 박혔다.
말해보라, 얼마나 많은 것인가?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천 구절, 만 구절이 다만 한 구절일뿐이다. 이 한 구절 속에서 끊어버리고 잡아둘 수 있다면, 잠깐 사이에 이러한 경계에 이를 것이다.
[송]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문수를 보았느냐?
문수와 이야기하였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