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ID/PW 찾기 |공지사항 | 자유게시판  
불교사
교학
선불교
응용불교
불교언어
어학
인접학문
학업이수자료
복수전공자료
다운로드자료실
미디어학습
e-Book
홈 > 경주_장경전 > e-Book
     e-Book 입니다.
         
조동록 0
 작성자: 운영자  2009-09-08 14:37
조회 : 5,946  

조동록



      조동록 해제(曹洞錄 解題)

 

  조동록은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스님의 어록이다.
  동산스님은 어려서 마을에 있는 절에 출가한 후 다시 오설산(五洩山)의 영묵(靈默)스님에게로 갔다.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남전(南泉)스님, 위산( 山)스님들을 참례하고서 나중에 운암 담성(雲巖曇晟: 782∼841)스님의 법을 이었다. 이때 동산스님은 게송을 지었는데, 이것이 선문오도송(禪門悟道頌)의 효시이다.
  스님은 53세경인 대중(大中) 말년(846∼859)부터는 신풍산(神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다시 예장(豫章) 고안현(高安縣)의 동산(洞山)보리원(普利院)에서 널리 교화를 펼쳤다.
  조산 본적스님(耽章스님이라고도 한다)은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다가 19세에 출가하여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 함통(咸通: 860∼873)초에 비로소 동산스님을 뵙고서 스님의 깊은 법을 전수받았다. 나중에 육조(六祖)의 탑에 참례한 후 조산(曹山)과 하옥(荷玉)의 두 곳에서 법을 폈다.
  훗날 이 두 분의 가르침을 이어서 조동종이 형성되었는데, 조동종(曹洞宗)이라는 종명(宗名)은 동산 양개의 동(洞)과 조산 본적의 조(曹)를 각각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조동종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방편으로써 중요한 것은 5위군신(五位君臣), 보경삼매(寶鏡三昧), 3종강요(三種綱要), 3종병통(三種病痛), 3로(三路), 3종타(三種墮)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신라말 이엄(利嚴: 870∼936)스님이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의 문하에서 법(法)을 전해왔다.(911년)

 

 

  조동종의 법계 중에서 동산록에 나오는 스님들을 중심으로 그 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약산유엄     운암 담성     동산 양개     조산 본적     하옥 광혜
      (藥山惟儼)   (雲巖曇晟)     (洞山良价)    (曹山本寂)     (荷玉匡惠)
                                         
                   도오 원지     신산 승밀                   녹문 처진
                   (道吾圓智)    (神山僧密)                   (鹿門處眞)
                                       
                   화정 덕성     행산 감홍     운거 도응     불일 화상
                   (華亭德誠)    (杏山鑑洪)     (雲居道膺)    (佛日和尙)

                   비수 혜성                   소산 광인     후   소산
                   (裨樹惠省)                   (疎山匡仁)    (後疎山)

                   고   사미                   청림 사건
                   (高沙彌)                     (靑林師虔)

                  백암 명철                    용아 거둔
                   (百巖明哲)                   (龍牙居遁)

                        화엄 휴정
                                               (華嚴休靜)

             흠산 문수
                                                (欽山文邃)

             북원  통
                                                (北院通)

             중산 도전
                                    (中山 道全)

             태  수좌
              (泰首座)

             유  상좌
             (幽上座)

             랑 상좌
                                           (郞上座)

 

 

 


        조당집 해제(曹堂集 解題)

 

  현존하는 선종사서(禪宗史書) 중 가장 오래된「조당집(曹堂集)」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며, 아직까지는 어떤 섭본(攝本)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867∼928, 雪峯義存의 法을 이음)스님의 제자인 문등(文□)이 쓴 '조당집 서(序)'에 의하면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에서 정(靜)과 균(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되었고(952), 그 후 고려에서 개판(開版)할 때(고종 32년, 1245) 원래 10권이던 것을 20권으로 만들면서 새로 목차를 만들어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끝에 "해동(海東)에서 「조당집」을 새로 간행함에 있어 그 사적이 드러나 253인을 모두 20권에 수록하였다"한 기록이 그것이다.
  「조당집」의 특징으로는 첫째, 그 서(序)에서 "고금 제방의 법요(法要)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듯이 조사들의 종지(宗旨)를 전하는 데에 힘썼고, 표현은 구어적이며 간결하다.
  둘째, 과거 7불(七佛)에서 시작하여 인도 28대 조사와 중국 6대 조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초조 마하가섭을 제1조, 아난(阿難)을 제2조, 이하 제28조 초조달마(初祖達摩), 제29조 혜가(慧可).....제33조 혜능(慧能)으로 하고 있다.
  셋째, 남종(南宗) 계통의 스님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면서도 우두 법융(牛頭法融), 소위 북종(北宗)인 신수(神秀).보적(普寂) 등은 조과(鳥 )화상의 끝에 이름만 전하며, 또 우두 법융에서도 다섯 스님은 이름만 열거하고 있다. 한편 남종선의 5가종파 중에서도 임제(임제종), 위산.앙산(위앙종), 조산.동산(조동종), 운문(운문종)스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법안(법안종)스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넷째, 신라의 종사(宗師)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도의(道義).혜철(慧哲). 홍척(洪陟).현욱(玄昱).범일(梵日).무염(無染).도윤(道允).순지(順之)스님등 8명을 싣고 있는데, 이들은 신라말 9산선문의 개산조(開山祖, 순지스님은 제외)들이며, 마조스님의 법제자인 서당(西堂).장경(章敬).앙산(仰山)스님의 법을 이었다.
  「조당집」의 마조.백장.위산.앙산.동산.조산스님 등에 대한 내용과 5가어록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므로 여기에 함께 실었다.
  「조당집」은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다. 또 대한전통불교연구원에서 간행한 「조당집 병 논집(祖堂集幷論集)」에서는 그간의 연구에 대한 논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차 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 性徹/2
     선림고경총서 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4
     5가어록(五家語錄) 을 간행하며/6
     조동록 해제(曹洞錄 解題)/8
     조당집 해제(祖堂集 解題)/10


    동산록/五家語錄
       1. 행      록 ..........................................................................17
       2. 감변 . 시중 .........................................................................27
       3. 부      촉 ..........................................................................87
       4. 천      화 ..........................................................................99

    동산록/祖堂集
       1. 행      록 ........................................................................103
       2. 대      기 ........................................................................109
       3. 천      화 ........................................................................143

    동산양개화상사친서............................................................145

 

 

    조산록/五家語錄
       1. 행      록 ........................................................................155
       2. 시      중 ........................................................................157
       3. 천      화 ........................................................................199
 
    조산록/祖堂集
       1. 행      록 ........................................................................203
       2. 상      당 ........................................................................207
       3. 대      기 ........................................................................209
       4. 천      화 ........................................................................233

 

     [附錄]  洞山錄/五家語錄
                  /祖 堂 集
            曹山錄/五家語錄
                  /祖 堂 集
 

 

 

 

 

 

 

 

 

 

 

일러두기

1. 조동록의 편집체제는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 상당, 감변, 천화 등으로 나누     었다.
2. 기연이나 법문을 기준으로 단락을 나누고 번호를 붙이되 동일인물이 반복될 경우     는 따로 번호를 두지 않았다.
3. 「동산록」「조산록」은 백련선서간행회에서 붙인 약명( 名)이며, 「조당집」속의    「동산록」「조산록」도 마찬가지이다.
4. 부록으로 첨부된 5가어록 판본은 명(명)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 5가어록 본이고,    「조당집」은 합천해인사본이다.
5.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店, 1979)과 「중국불학     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 方舟出版社)을 참고하였다.

 

 

 


                 동   산  록
                      (五家語錄)

 

 

 

 

 

 

 

 

 

 

 

 

 

        1. 행   록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면서 먼저 남전(南泉: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馬祖: 709∼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齋)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조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스님이 오실는지 모르겠구나."
  대중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이 나서서 대꾸하였다.
  "도반을 기대하신다면 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후배이긴 하지만 꽤 가르쳐 볼 만하군."
  "스님께서는 양민을 짓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으로는 위산( 山: 771∼853)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지난번 소문을 들으니 남양 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 ?∼775)께선 무정(無情)도 설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합니다."
  "그럼 우선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게."
  그리하여 스님은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라고
하였더니 국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는 무정(無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설법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처럼 쉴 틈없이 설법한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듣지를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니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방해되어
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나는 듣지 못하지.'
  '스님께서도 듣질 못하였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시는지요.'
  '내가 듣지 못해서이지. 내가 듣는다면 모든 성인과 같아져서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지 성인을 위해서 설법하진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분명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수행자가 논할 바가 아니다. 보지도 못하였는가. 「화엄경」에서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했던 것을.'"
  스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있긴 하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뿐이다."
  "저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산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이 입으로는 끝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지 못한다."
  "스님과 함께 도를 흠모하던 분이 있습니까?"
  "여기서 풍릉( 陵) 유현(攸縣)으로 가면 석실(石室)이 죽 이어져 있는데 운암도인(雲岩道人)이란 분이 있다. 풀섶을 헤치고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소중한 분이 될걸세."
  "어떤 분이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스님을 받들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기에 이렇게 대꾸하였네.
  '당장에라도 번뇌(煩惱)를 끊기만 하면 되지.'
  '그래도 스님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은 드디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곧장 운암스님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를 다 하고서 바로 물었다.
  "무정(無情)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는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질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질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하였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을."
  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알 수 있으니.
    也大奇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남은 습기(習氣)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얼 해왔는냐?"
  "불법(聖諦)이라 해도 닦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쁨을 맛보았느냐?"
  "기쁨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한 알의 명주(明珠)를 얻은 것 같습니다."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서로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도록 하게."
  "보고 묻는 중입니다."
  "그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더냐."

  운암스님이 짚신을 만드는데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눈동자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게 없어서입니다."
  "설사 있게 된다 해도 어디다 붙이겠느냐?"
  스님이 말이 없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이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운암스님은 별안간 악(喝)! 하고는 나가버렸다.

 


  스님이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 곳을 정하진 못했습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이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뿐이라네."
  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 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
   切忌從他覓    與我□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 會  方得契如如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나."

     장경 혜릉(長慶 慧稜: 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齋)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지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주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당(唐) 대중(大中: 8468∼859) 말년부터 신풍산(新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그 뒤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에서 성대히 교화를 폈다. 방편으로 5위(五位)를 열어 3근(三根)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일음(一音)을 크게 천양하여 만품(萬品)을 널리 교화하였다. 지혜보검을 쑥 뽑아 빽빽한 견해 숲을 가지 쳤으며, 조화로운 음성을 널리 펴서 여러 갈래 천착을 끊어주셨다.
  다시 조산(曹山)스님을 만나 정확한 종지를 깊이 밝히고 훌륭한 법을 오묘하게 폈으니, 도를 군신(君臣)의 비유로 회합하였고 편위(偏位)와 정위(正位)를 아울러 쓰셨다.
  이로부터 동산의 현묘한 가풍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으므로 제방의 종장(宗匠)들이 모두 추존(推尊)하여 '조동종(曹洞宗)'이라 하였던 것이다.

 

 

 

 


        2.  감변  .  시중

 

 

 


  1.
  운암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어떤 집 아이는 물었다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이 나오더니 질문하였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경론들이 있겠군요."
  "한 글자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습니까?"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 도리어 말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원주(院主)가 석실(石室)*에 갔다오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
  * 석실(石室) : 담주(潭州) 유현(攸縣)에는 석실(石室)이 있어 은자들이 살곤 하였       다.

 


  "석실로 들어가더니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느냐?"
  원주가 대꾸가 없자 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차지한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 하겠느냐?"
  스님이 말하였다.
  "인정을 끊어서는 안됩니다."

  운암스님이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가?"
  "팔십입니다."
  "그대에게는 나이 팔십이 아닌 아버지가 있는데 알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닐런지요."
  "오히려 손자뻘이지."
  스님(동산)이 말하였다.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니라 해도 손자뻘이지."

  2.
  스님이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노조(魯祖: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였다. 절하고 일어나 곁에 섰다가 이내 나와서 다시 들어가자 노조스님이 말하였다.
  "이럴 뿐이며, 이럴 뿐이니, 그러므로 이러하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래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걸요."

 


  "어떻게 해야만 그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스님은 절하고 여러 달을 시봉(侍奉)하였다.

  한 스님이 노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 없는 말'입니까?"
  "그대의 입은 어디 있느냐?"
  "입이 없습니다."
  "무얼 가지고 밥을 먹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3.
  스님이 남원(南源: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고 법당에 올라갔더니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군."
  스님은 바로 내려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올라가 물었다.
  "어제 벌써 스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언제 저와 만났었는지를 모르겠읍니다."
  "마음 마음이 쉴 틈없이 성품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을 많이 배워 널리 이익되게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짓는 것입니까?"
  "무엇 하나도 어기지 말라."

 


  4.
  스님이 서울에 도착하여 흥평(興平: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에게 절하였더니 흥평스님이 말하였다.
  "늙고 썩은 몸에 절하지 말라."
  "저는 늙거나 썩지 않은 것에다 절하였습니다. "
  "늙고 썩지 않은 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스님이 되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바로 그대 마음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목각인형에게나 물어보게."
  "저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어디 말해보게."
  "제가 아닙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흥평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흐름을 따라 정처없이 가렵니다."
  "법신(法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보신(報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결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자 흥평스님은 손뼉을 쳤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928)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달리 말하였다.
    "몇 사람이나 찾을까."

 


  5.
  스님이 밀사백(密師伯: 神山僧密의 존칭)과 함께 백암(百巖)스님을 참례하였더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호남에서 옵니다."
  "그곳 관찰사(觀察使)의 성은 무엇이던가?"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어라 하던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사(正事)는 보던가?"
  "그에게는 낭막(郎幕: 부하관료)이 있습니다.
  "출입도 하던가?"
  "출입은 하지 않습니다."
  "왜 출입하질 않지?"

  스님은 소매를 털고 바로 나와버렸다.
  백암스님은 다음날 아침 큰방에 들어가 두 스님을 부르더니 말하였다.
  "어제 그대들을 상대한 문답이 서로 계합하지 못하여 하룻밤 내내 불안했다. 지금 그대들에게 다시 한 마디 청하네. 만일 내 뜻과 맞는다면 바로 죽을 끓여 먹으며 도반이 되어 여름을 지내겠네."
  "스님께서는 질문을 하십시오."
  "왜 출입을 하지 않는가?"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암스님은 이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함께 여름 한철을 지냈다.

    천동 함걸(天童咸傑: 1118∼1186)스님은 말하였다.

 


    "명암이 투합하여 팔면이 영롱하여 그 자리를 범하지 않고 몸 돌릴 길 있으니      조동(曹洞) 문하에서는 구경거리가 되겠으나, 가령 임제스님의 아손이었더라면 방     망이가 부러진다 해도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당시에 그가 '성을 모른다'고 했을      때 등허리에 한 방을 날려 여기에서 부딪쳐 몸을 바꿔 깨쳤더라면 죽을 끓여 맞     이했을 뿐 아니라 높은 스님을 모시는 밝을 창문 아래 모셨으리라. 알겠느냐, 알     겠어!"
    "악! 漆桶(漆桶)아, 법당에 가서 참례하거라."

  6.
  스님이 밀사백과 함께 용산(龍山: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찾아가 문
안을 드렸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왔느냐?"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 오셨는지요?"
  "나는 운수(雲水) 따라 오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산에 머무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세월은 신경쓰지 않는다."
  "스님께서 먼저 계셨습니까, 이 산이 먼저 있었습니까?"
  "모르겠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나는 인간.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스님께선 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
  "나는 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

  스님은 비로소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하였다.

 


  7.
  스님이 행각할 때 마침 한 관리가 말하였다.
  "삼조(三祖:승찬)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제가 주석을 낼까 합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고 「신심명」에서 말하였는데 어찌 주를 내려 하느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주를 내지 않겠습니다."

  8.
  스님이 과거에 행각할 때 길에서 물을 걸머진 한 노파를 만났었다. 스님이 마실 물을 찾았더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무방합니다만 제게 질문이 하나 있으니 먼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물에 티끌이 얼마나 있습니까?"
  "티끌이 없습니다."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걸머진 물을 더럽히지 말고 가십시오."

  9.
  스님이 늑담( 潭)에 있으면서 초수좌(初首座)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통하다. 정말 신통해. 불가사의하도다. 부처님 세계여, 도의 시계여!"
  그러자 스님은 질문하였다.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는 묻지 않겠소.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말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초수좌는 한참 말이 없더니 대꾸를 못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빨리 말하지 않느냐?"
  "언쟁해서는 안됩니다."
  "하라는 말도 못하면서 무슨 언쟁은 안된다고 하는가."
  초수좌가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모두가 언어이니, 교(敎)를 인용해 보지 않겠는가?"
  "교에서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뜻(意)을 체득하고서는 말을 잊는다 하였네."
  "그래도 교의(敎意)를 가지고 마음에서 병을 만들고 있군요."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병은 어느 정도이더냐?"
  초수좌는 또 대꾸가 없더니 다음날 혼연히 죽어버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당시 '질문으로 수좌를 죽인 양개(良价)'라고 불리웠다.

  10.
  스님이 신산 밀사백(神山密師伯)과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어떻게 물을 건너야겠습니까?"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야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건너려는가?"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지요."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면서 말하였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십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 못할걸세."
     "잘못 디디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것이지."

  스님이 하루는 신산스님과 함께 차밭에서 김을 매다가 괭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저는 오늘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기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였군요."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홀연히 흰 토끼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신산스님이 말하였다.

  "잘 생겼군."
  "어떤데요?"
  "서민이 재상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군."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대대로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

  신산스님이 바늘을 들고 있는데 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바느질을 한다네."
 

 

 "바느질하는 일은 어찌해야 합니까?"
  "땀땀이 서로 같아야 하네."
  "20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어찌 이렇게 공부하십니까?"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땅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한 도리입니다."
   신산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지식(知識)으로 알 수 있는 것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네.
그러니 '곧장 끊는 경지(徑裁處)'에 대해서는 스님이 한 마디 해 주시게."
  "사형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려 하십니까?"
  신산스님은 여기에서 단박 깨닫고 일상과는 다른 응대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스님이 먼저 건넌 뒤 외나무다리를 들고서 말하였다.
  "건너 오십시오."
  신산스님이 "양개화상!" 하고 부르자 스님은 외나무다리를 놓아주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안에 심성(心性)을 설하는 자가 있답니다."
  신산스님은 말하였다.

  "누굴까?"
  "사형께 질문 한 번 받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죽음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11.
  스님이 설봉 의존(雪峯義尊: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스님을 뵈었느냐?"
  "제가 무쇠방망이 맞을 짓을 했습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문 안에 들어오면 무슨 말이 있어야지. 들어왔다고만 해서야 되겠느냐?"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 없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눈을 돌려다오."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은 앞의 말에 달리 말하였다.
     "입 생긴 뒤에 말씀드리겠으니 기다리십시오."
     장경 혜룡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설봉스님이 땔감을 운반하던 차에 스님의 면전에 한 단을 던지자 스님이 말하였다.
  "무게가 얼마나 되던가?"
  "온누리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던졌는가?"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부채 위에 불(佛)자를 쓰자 운암스님이 보고 거기다 불(不)자를 썼

 


다.  스님이 다시 아닐 비(非)자를 붙였더니 설봉스님이 보고는 한꺼번에 지워버렸다.

     흥화 존장(興化存奬: 830∼88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백양 순(白楊順)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동산스님이었다면 설봉스님에게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말했으     리라."

     천발 원(天鉢元)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과 운안스님은 평지에다 공연히 무더기를 일으켰으며, 설봉스님은 이     일로 지혜가 자라났다."

  설봉스님이 공양주(飯頭)가 되어 쌀을 이는데 스님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걸러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걸러내느냐?"

  "모래와 쌀, 양쪽 다 걸러냅니다."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드디어 쌀 항아리를 엎어버리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을 보건대 덕산(德山)에 있어야만 하겠군."

     낭야 혜각(낭야慧覺)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이런 행동은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던져버리고 산을 찾아 신 오얏     을 따는 격이다."

  

 

     천동 정각(天童正覺: 1091∼1157)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고 짚신 뒤꿈치가 끊기는 줄은 몰랐     다. 만일 정(正)과 편(偏)이 제대로 구르고 박자와 곡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자     연히 말과 기상이 서로 합하고 부자(父子)가 투합했으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이     설봉스님을 긍정하지 않은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 리에 구름 없으나 하늘에 티끌 있고
     푸른 연못 거울 같으나 달이 오기 어렵네."

     설두 종(雪竇宗)스님은 말하였다.

     "곧은 나무에 난봉(鸞鳳)이 깃들지 않는데
     "금침(金針)은 이미 원앙을 수놓았네
     만일 신풍(新豊)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바로 빙소와해를 당했으리."

  스님이 하루는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왔느냐?"
  "물통(槽)을 찍어서 만들고 왔습니다."
  "몇 개의 도끼로 찍어서 완성하였느냐?"
  "하나로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쪽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그대로 손 볼 곳이 없군요."
  "그래도 이쪽의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설봉스님은 그만두었다.

     분양 선소(汾陽善昭: 947∼1024)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저라면 벌써 궁색해졌을텐데요."

 

  설봉스님이 하직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영중(嶺中)으로 돌아가렵니다."
  "올 때는 어느 길로 왔었지?"
  "비원령(飛猿嶺)을 따라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을 따라 되돌아가려는가?"
  "비원령을 따라 가렵니다."
  "비원령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도 아는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모르는가?"
  "그에게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모른다면 어떻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이 덩벙대는 자는 망한다."

  12.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취미(翠微)스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어떤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더냐?"
  "취미스님이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하기에 저는 물었습니다. '나한에게 공양을 하면 나한이 온답니까?' 하니, 스님은 '그대가 매일 먹는 것은 그럼 무었이더냐?'하였습니다.
  스님은 말하였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
  "그렇습니다."
  "대선지식을 헛되게 참례하지 않고 왔구나."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도응입니다."
  "향상(向上) 자리에서 다시 말해보라."
  "향상에서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도오(道吾)스님께 대답했던 말과 똑같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상아! 그대가 뒷날 띠풀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이 하루는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대화상(思大和尙)이 왜국(倭國)에 태어나 국왕이 되었다던데 정말 그런가?"
  "만일 사대(思大)스님이 맞다면, 부처라 해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그 산은 머물만 하더냐?"
  "머물만 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안이 모조리 그대에게 점령되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군."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스님과 사이에 산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 사람 만 사람이 붙들어도 머물지 않으리라."

  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덜렁대는 사람이군."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五祖法演: ?∼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 산승은 오늘 팔을 휘젖고 가면서 여러      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격이며, 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     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마른길, 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綠     水靑山)에 맡기게."

 

 

  운거스님이 하루는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지렁이를 잘라 죽였더니 스님이 "적( )!"하고 호통을 쳤다.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조(二祖)는 업주(業州)로 갔다는데 어떠냐?"
  운거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대천제인(大闡提人: 부처될 종자가 없는 중생)은 5역죄(五逆罪)를 지었는데 효도고 봉양이고가 어디 있겠느냐."
  "비로소 효도하고 봉양하게 되었군요."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과거에 남전(南泉)스님이 「彌勒下生經(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묻기를, '미륵은 언제 하생(下生)합니까?'했더니, 그는 '현재 도솔천궁에 계시어 미래세에 하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천상에도 미륵은 없고, 지하에도 미륵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운거스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질문하였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니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

  ---------------------
  * 향엄 지한스님이 대나무에 기왓쪽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치고는 송(頌)을 지었      는데, 위산스님이 듣고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하셨다. 앙산스님      은 향엄스님의 경계를 확인코자 다른 게송을 지어보라고 하자 향엄스님이 다음      의 게송을 지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금년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구      나.' 앙산스님은 '여래선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      지 못하고 있군'하였다.

 


름을 지어 주었단 말입니까?"
  스님이 질문을 받자 선상이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도옹화상! 내가 운암스님에게 있으면서 그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화로가 진동하듯 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번 질문을 받으니 온몸에 땀이 흐르는구나."
  그 뒤에 운거스님이 삼봉(三峯)에 암자를 지었다. 열흘이 지나도 큰 방에 오지 않자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어째서 공양(齊)에 오질 않는가?"
  "매일같이 천신(天神)이 음식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런 견해를 짓고 있다니 그대는 느지막하게 찾아오게."
  운거스님이 느지막하게 찾아오자 스님이 불렀다.
  "도응 암주(道膺庵主)!"
  "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일까?"
  운거스님이 암자로 되돌아가 고요하게 편안히 앉아 있었더니, 이로부터 천신이 찾아도 끝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사흘 지나고서야 끊겼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장(醬)을 담금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13.
  소산(疏山)스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조참(早參) 때여서 나오더니 스님께 물었다.
  "언어 이전의 도리를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아무 것도 긍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응낙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력을 들여야 옳습니까?"
  "그대는 지금 공력을 들이고 있는가?"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요."
  하루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듯 해야만 그것에 계합하게 되리라."
  소산스님이 물었다.
  "무엇에도 어긋나지 않는 경지라면 어떻습니까?"
  "화상! 이는 '공들여 닦는'쪽의 일이다. 다행히도 '공부 없는 공부'가 있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묻질 않느냐?"
  "공부 없는 공부라면 저쪽 사람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이런 질문을 비웃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더 아득히 멀어지겠습니다."
  "멀기도 하고( 然) 멀지 않기도 하며(非 然) 멀지 않음도 아니다(非不 然)."
  "어떤 것이 먼 것입니까?"
  "저쪽 사람을 멀다고 하면 안되지."
  "어떤 것이 멀지 않은 것입니까?"
  "끝날 곳이 없겠군."

  스님께서 소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공겁(空劫)엔 사람 사는 집이 없었다 하니 이는  어떤 사람이 안주하는 곳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생각(意志)이 있겠는가?"
  "스님께서도 그들에게 물어보시죠."
  "지금 묻고 있는 중이다."
  "무슨 뜻입니까?"
  스님은 대꾸하지 않으셨다.

  14.
  청림 사건(靑林師虔: ?∼904)스님이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이제 어디에서 떠나왔는가?"
  "무릉(武陵)에서 옵니다."
  "무릉의 법도는 여기와 무엇이 같은가?"
  "오랑캐 땅에선 겨울에 죽순을 뽑습니다."
  "다른 시루에 향기로운 밥을 지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여라."
  청림스님이 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뒷날 온 세상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

  고산 영(鼓山永)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대꾸하다간 물 한 방울도 받기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다른 시루    에 향기로운 밥을 지으라 하는가."

  청림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하직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는가?"
  "금륜(金輪)은 표적을 숨기지 않고, 온 세계에 홍진(紅塵)이 끊겼습니다."

 


  "잘 간직(保任)하게."
  청림스님이 조심스럽게 나가는데 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떠나는 한 구절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걸음걸음 홍진을 밟으나 걸음걸음 몸 그림자가 없습니다."
  "스님께선 무엇 때문에 속히 말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어찌 그리 성미가 급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절을 하고 떠났다.

  15.
  용아(龍牙: 835∼923)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막야(  )의 보검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땐 어찌하겠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다가가며 "와!" 하였더니, 용아스님이 "머리가 떨어
졌습니다." 하자, 덕산스님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용아스님이 그 뒤에 스님에게 와서 앞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 덕산은 뭐라고 하더냐?"
  "스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노승에게 가져와 보아라."
  용아스님은 그제야 깨닫고서 바로 참회하고 인사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덕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이 몸이 죽은 지 오래인데 구제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복 종전스님은 염( )하였다.
    "용아스님은 전진할 줄만 알았을 뿐 발을 헛디딘 줄은 몰랐군."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그때 끊었어야 하는데 끊질 않았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끊으랴."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검을 껴안아 몸을 다쳤으니 재앙과 허물을 자초했다 하겠다. 덕산스님은     머리 때문에 주인이 되어 다행히도 계산을 잘 하였으나 홀연히 동산스님에게 자취를 지     적당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들켰다."
 
    용아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동구의 물이 역류하게 되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용아스님은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16.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제게는 이치의 길(理路)이 없어 알음알이(情識)의 작동을 면치 못합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았느냐?"
  "이치의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알음알이는 어디서 생겼느냐?"
  "사실 제가 묻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학인이 가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리 가기만 하면 되네."

  화엄스님이 땔감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붙들어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비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땐 어떻겠는가?"
  "엎치락뒤치락하겠지요."
  "그대는 내 말을 기억하라. 남쪽에 머물면 천명이 되겠지만 북쪽에 머물면 300명에 그치리라."

  17.
  흠산(欽山)스님이 스님을 찾아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대자(大慈)스님에게서 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색(色)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앞뒤가 아닌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묵묵히 계시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너무 일찍 스승을 떠나 스승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흠산스님이 암두(巖頭).설봉(雪峯)스님과 앉았을 때 스님께서 차를 돌렸다. 흠산스님이 이때 눈을 감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왔느냐?"
  "선정에 들었다 왔습니다."
  "선정은 본래 문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갔느냐?"

 

 

    노숙(老宿)은 대신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매우 많다."
   
    설두 중현(雪頭重顯: 980∼1052)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당시에 다만 암두스님 설봉스님을 지적하면서 '이 졸기나 하는 놈들아, 차나 마     셔라'했어야 했다."

  18.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주인공에 꽉 눌러앉으면 두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 통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누군가는 그것과 짝하지 않는 자가 하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 역시 두번째 견해(第二見)인걸."

  통스님이 별안간 선상을 번쩍 들어서 엎어벼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저의 혀가 썩어 문드러지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지요."
  통스님이 그 뒤에 스님을 하직하고 영남(飛猿嶺)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해보게. 비원령(飛猿嶺)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게."
  통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통화상!"하고 불렀다.
  "네."
  "왜 영남으로 들어가질 않는가?"
  통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영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19.
  도전(道全: ?∼894)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 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끝내 '발 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
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20.
  스님께서 태수좌(泰首座)와 함께 동짓날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있다.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다 거두질 못한다. 말해보라. 허물이 어느곳에 있는지를."
  "움직이며 작용하는 가운데 허물이 있습니다. "

    동안 현(同安顯)스님이 달리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과자상을 물리라고 하셨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달리 수좌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오거든 다시 초왕(楚王)에게 헌납해 보아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판별할 수 있었으랴. 그렇긴 하나 

 


  동산스님도 한 수 부족하다."
    위산 철( 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의 귀결처를 알았느냐? 몰랐다면 더러는 시비득실로    알고 있으리라. 내가 말하겠다. 이 과자는 태수좌만 먹지 못할 뿐만 아니    라, 온누리 사람이 온다 해도 눈 바로 뜨고 엿보질 못하리라."
    운개 본(雲蓋本)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에게 허공을 찢어버릴 쇠몽둥이가 있긴 했으나 깁고 꿰맬 바늘과 실은     없었다. 그가 '움직이며 작용하는데 허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수좌는 과     자를 먹어라'했어야 했다. 거기서 태수좌가 납승이었다면 먹고 나서 토해야 한다."
  
    남당 정(南堂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판하는 솜씨였고,      태수좌는 온몸이 입이어서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었고, 태수좌는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나는 길을 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치욕을 씻으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영산(靈山)의 수기(授記)가 이같은 데에 이르진 않았다'     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과자를 면전에 확 집어던졌으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후인들의 망상을 없애주었으리라."

    정자 창(淨慈昌)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이렇게 과자상을 물리게는 했으나 요컨데 태수좌의 입은 막지 못했     다."

  21.
  스님께서 유상좌(幽上座)가 오는 것을 보시더니 급히 일어나서 선상을 보며 뒤돌아서자 유상좌는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피하시는지요."
  "그대가 나를 못 본 줄 알았네."

  22.
  벼를 보는데 낭상좌(郎上座)가 소를 끌고 지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를 잘 보도록 하게. 남의 벼를 망칠라."
  "좋은 소라면 남의 벼를 망가뜨리지 않을 겁니다."

  23.
  어떤 스님이 수유(茱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수행이라면 없지는 않지만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다른 스님 하나가 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그때 무엇 때문에 '무슨 수행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말씀을 옮기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부처의 행이지, 부처의 행."
  그 스님이 돌아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유주(幽州)라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이다."

    동선 제(東禪齊)스님은 염( )하였다.
    "이 말에도 의심이나 잘못이 있느냐? 있다면 말해보라. 어느 곳이 잘못 되었는지     를. 없다면, 또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점검해 낼 수 있느     냐? 수유스님은 '행이라면 없질 않으나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하였고, 여기에     동산스님이 거듭 '이는 어떤 행인가'하고 되묻게하니 '부처의 행'이라 답하였다. 그     스님이 알고 물었는지, 모르고 물었는지를 판단해 보라."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석 자(三尺), 목은 세 치(三寸)라네."
  스님은 시자더러 이 말을 가지고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삼성스님은 시자의 손 위를 손톱으로 한 번 찔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셨다.

  24.
  서울의 미화상(米和尙)이 어떤 스님을 시켜 앙산(仰山)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요즘에도 방편을 통한 깨달음(假悟)이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이라면 없질 않지만 두번째 자리(第二頭)에 떨어져 있는데야 어찌하랴."
  다시 미화상은 그 스님더러 스님께 묻도록 하였다.
  "저 완전한 깨달음(究竟)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물어야 하리라."

  25.
  진상서(陳尙書)가 물었다.
  "52위 보살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묘각(妙覺)이 보이질 않습니까?"
  "상서께서 묘각을 직접 보십시오."

 

 

  26.
  어떤 관리가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가 남자가 되면 그때 가서 수행을 하지."

  27.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였다.
  "납자들이여, 늦여름 초가을에 이곳 저곳으로 갈 때 곧장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만리 밖엔 한 포기 풀도 없는데 어떻게 가랴."
  그 뒤에 누군가 석상(石霜)스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석상스님이 말하였다.
  "어째서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이 나라에 이런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양 경현(大陽警玄: 942∼1027)스님은 말하였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고도 풀이 가득하다고 말하리라.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가야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깎아지른 바위 온갖 푸른 풀을 지키지 말라. 흰구름에 눌러앉으면 종지(宗)가     오묘하지 못하리."

     백운 수단(白雲守端: 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암주(菴主)를 볼 수 있다면 바로 동산스님을 볼 것이며, 동산 스님을 본다면      암주를 보리라. 동산스님을 보기는 쉬워도 암주를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주지(住   

 

    持)에 얿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느냐, '구름은 고갯마루에 한가하여 사      무치질 않는데 흐르는 시냇물은 쉴새없이 바쁘다'고 했던 말을."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못과 무쇠를 절단하여 향상(向上)의 현묘한 관문을 활짝 열고 진실된 말씀으로     바로 그 사람의 요로(要路)를 지적한다. 말해보라. 그대는 '문을 나서면 바로 풀이     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석상스님은 그렇게 말했고 상봉(上封)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곤장 30대를 맞으리라."

     경산 종고(徑山宗 : 1089∼1163)스님은 말하였다.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 젖 열 섬을 물리쳤다."
   
  2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뵐 수 있겠습니까?"
  "같은 연배이니 격의없이 만나면 된다."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자취를 밟지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지 못합니다."
    그 뒤에 교상좌(皎上座)가 이를 들어 장경(長慶)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연배가 다른 것입니까?"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는데, 교화상! 다시 여기에서 무얼 찾는냐?"

 

 

  29.
  어떤 스님이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것이지."

    투자 동(投子同)스님은 말하였다.
    "하마터면 그리로 갈 뻔했군."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큰    방으로 가라'고 했으리라.

    운거 효순(雲居曉舜)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낭야스님은 이렇게 처신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    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삼동(三冬)엔 따뜻한 불을 쬐고 한더위(九夏)    엔 시원한 바람을 쏘이라'했으리라."

    보봉 극문(寶峯克文: 1075∼1102)스님은 말하였다.
    "대중아! 알았다면 신통희유하면서 어느 때라도 추위와 더위를 개의치 않아도 무    방하겠으나, 모른다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내도록 하라."

    상봉 재(上封才)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의 한 구절은 주인과 손님이 교대로 참례하고 정.편(正.偏)이 섭렵해 들    어간다 할 만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피하려느냐. 일 없이 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노라. 여러분에게 묻노니, 알겠느냐."
   
 

 

    늑담 문준( 潭文準: 1061∼1115)스님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라면 물이라 해도 따뜻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땐 불이라    해도 차갑다."

  30.
  상당하여 "사은삼유(四恩三有)*를 받지 않을 자가 있느냐?"
하셨는데 대중이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근심을 어떻게 벗어나겠느냐? 다만 마음마다 사물에 걸리지 않고 걸음마다 가는 곳 없어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하리라.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고 노력하여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에 갔다 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느냐?"
  "갔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진 못했구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거기 머물지 않았느냐?"


  ---------------------
  * 사은삼유(四恩三有) : 주변의 인연과 윤회의 삶.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서천(西天)에 긍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원래 그대를 의심했었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소 뿔(駭鷄□)같은 것이다."

  33.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 때 구해주어야 옳겠습니까, 구해주지 않아야 옳겠습니까?"
  "구해준다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며, 구해주지 않으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 보일 것이다."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     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     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     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     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四山)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2012년 1월 16일… 02-16
동국대학교 백상… 02-16
전 총무원장 지… 01-16
<공지사항>… 12-29
  
특별인터뷰/조계… 03-19
선학승가대학원 … 03-19
은해사 주지 돈… 03-19
하얀코끼리, 미…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