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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어록 0
 작성자: 운영자  2009-09-08 14:05
조회 : 8,264  

 
        大珠語錄

     師建州朱氏子 依越州大雲寺智和尙 受業 初參馬祖 祖曰 來須何事 曰 來求佛法
   祖曰我這裏一物也無 求甚 佛法 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作  曰那箇是慧海寶藏 祖曰卽今問我者是汝寶藏 一切具足何假外求 師於言下自識本心 踊躍禮謝 執侍六載 後以受業師老遽歸奉養撰頓悟入道要門一卷 傳至馬祖覽訖告衆曰 越州有大珠圓明光自在 衆中知師姓朱   推尋依附者 號師爲大珠和尙 贊曰 寶藏久埋 抛家外走 逢人指出 始知本有 照用無方 龍吟獅    吼 入道無門 師闢其 .
   사는 건주의 주씨의 아들이라.  월주의 대운사의 지화상을 의지하야  수업했다. 
  처음 마조스님을 참례할제 마조가 이르되 무엇 할려고 왔느냐.  이르되 불법을 구할라고   왔습니다. 조사가 이르되 나도 저 속에서는 한물건도 없거늘 무슨 불법을 구하리. 자기 보장을 돌아보지아니하고 집을 버리고 달아남은 무엇이랴.  이르되 어떤 것이 이 혜해의 보장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지금 바로 나에게 묻는 놈이 바로 이 너의 보장이다.  일쳬를 구족함이러니 무슨 바깥으로 구하리오하시니   말씀아래에 본심을 깨치고 용약사례하고 모시기를 육년하다가 뒤에 수업사가 노쇠함일세 급히 돌아가 봉양하다가 돈오입도요문일권을 지었다.  그 전함이 마조에게 이르러 보아 마치시고 대중에게 이르되 월주에 대주가   있어 원명하야 빛이 자재하더라하다.  대중가운데에 사의 성이 주씨인 것을 알아 추심해    의지해 붙이는 자가 있어 사를 일러 대주화상이라하고 贊해 이르되 寶藏이 오래도록 묻혀있음에 집을 버리고 밖으로만 구해 달리더니 사람의 가르쳐  냄을 만나 비로소 본래 있음    을 앎이로다.  비추어 씀에 方所가 없고 용트림에 사좌후라.  입도에   문이 없거늘  師가  그 창을 열었다하다.


    序
  閱傳燈錄至大珠海禪師 自初見馬祖及 接人機語 以至泛應諸宗所問 使之結舌喪氣心悅誠服處 未嘗不爲之慶快而不已  蓋師之言一本於經律論之要旨而卽事卽理全體全用以發明  向上一機殺活 予脫 縱橫逆順 無不合轍而 還源也.  所撰頓悟入道要門論 昔旣盛行年來殊不多見 近四明比丘妙   來言嘗得此論  他語共一編 於弊 斷簡中 寧敢私淑樂與叢林共之 輒경己長  工復 諸梓願一言 識其後 且出新板之文 自一至六 凡六葉以示 然嘗鼎一  又何待覩其全書 噫 大珠此編語言文字耶 非耶 謂其語言文字則 道非語言文字 謂其非語言文字而三藏之文了了在目與此老胸襟流出者 融會貫攝羅列而前陳其間 或自謂我不會禪 無一法可示於人 看他此等語 直是作賊人 心虛盡情  不下 所以今日 不免被人再可塗抹  後之覽者 若於馬祖所謂大珠圓明光透自在無遮障處 當下著得精彩則 隨色摩尼 人人無不具足 其或未然 滯殼遮封 有甚 數具頂門眼者  試爲辨取   洪武六年 癸丑秋九月望日前龍河比丘萬金拜識
 접때 전등록을 교열할세 대주혜해선사에 이르러  처음 마조를 친견하고 사람근기에 접하는 말로부터  제종가의 묻는바에 하여금 혀를 묶고 기를 죽이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참으로 탄복하게 함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경쾌를 짖지아니함이 없어 그침이 없더라   대개 사의 말들이 하나같이 경율론의 요지를 근본하야  즉사즉리요, 온전히 체이며 온전히 용으로서 발명이라  향상 일로로 살활과 여탈에 종횡역순히 궤철에  맞지아니함이 없어 근원으로 돌아가더라.  지으신바 돈오입도요문이 옛날에 이미 성행함이라가  근래로 다못 보지못하더니 사명비구 묘협스님이 와서 이르기를 일찍이 이 론을 얻어 그분의 말씀과 더불어   하나로 엮었음이나 弊 의 斷編殘簡중에서 어찌 감히 사사로히 익히리오 좋이 총림에 주어  함께할것이다하고 자기의 장처를 다해 공장으로하여금 다시 모든 판목들을 새기게하고  일언을 그 뒤에 識하기를 원하더라. 우선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내어 육엽으로 보임이나 그러나 솥의 한점 살점을 맛봄이라.  또한 어찌 그 전모를 보기를 바라리요.  슬프다.  대주스님이 어언문자를 편집했는가  아님인가. 그 어언문자라하면 도가 어언문자가 아님이요,  그 어언문자가 아니라하면 삼장의 글월들이   눈앞애 있어 이 노장의 흉금으로부터 유출한 것이 융회관섭하야 그 사이에 앞하고 있음인가.
   혹자가 스스로 이르되 나는 선을 알지못하고 아울러 한법도 가히 사람들에게 보일수 없다한다면   이러한 등의  말을 보거든  바로 이 도적놈이라 하리라.  마음을 허널리 하고 정을 다해서 떨쳐버리지  못함이어니 그래서 금일에 사람들의 다시 쳐 바름을 당함을 면할수 없다.    뒤에 관람하는 자들이 만약 마조의 이른바인 대주가 원명하야 빛이 비춤이 자재하야 막혀   장애가 없다하는  곳을  당하에 정신을 붙인다면 隨色摩尼를 사람사람마다 구족치 않음이 없거니와   그 혹 그러하지 아니할진댄은  겁데기에 막혀 봉해지리니 정문안을 갖춘이가 얼마나 되리오.
   시험삼아 가려 취할지어다.
    홍무 6년 계축년 가을 9월 14일날 용하비구 만금  배지함

 

  大珠禪師語錄原序

  夫 善知識者 如巨海舟航 能度迷類 長夜明炬 存破群昏 大珠和尙 首參馬祖 使入慧海之法界  令開寶藏於自家 所以靈辯滔滔 譬大川之流水 岐機疊疊 如圓器之傾珠 於是曲設多方 垂慈利物  發揚至道 烏可以筆舌讚嘆哉 妙 維那 四明翠山 大中理公之神足 夙具靈根 素培智種 禪餘之暇  閱此老語錄 有所證入 平生碍膺之物 脫然而去 從上佛祖舌頭 一無所疑矣 此亦古塔主 覩雲門語  而嗣之  正所謂也  故 捐資鏤板 以廣其傳  期以後之來者  同一了悟  存此心者 豈淺淺耶    此之功勳不墜 行願彌堅 蓋可見矣  所幾法流不泯 派永接於曹谿 燈焰長存 光愈明於少室者也.
  時歲在癸丑春孟十日 阿育王山 沙門 釋崇裕 書於無異堂
   
   대저  선지식이란 마치 큰바다에 배와 같이 능히 미류를 건네주고 장야의 밝은 햇불과  같아서 군혼을 파해줌이라.  대주화상께서 먼저 마조를 참례하시고 하여금 혜해의 법계에 들  게하고 하여금 보장을 자기집에서 열게하시니 소이로 신령한 말씀이 도도하심에 대천의 유수  와 같고 가지가지의 기용이 첩첩함이 마치 둥근그릇에 구슬을 기울인것과 같음이라.
  이에 위곡히 다 방편을 설하사 자비를 드리워 중생을 이롭게하고 지도를 발양하나니 어찌   가이  필설로서 찬탄하리오.   묘협유나가 사명취산에서 大中의 道로 公邊無私히 神通하게   하나니  이미 전생으로 영근을 갖추었음이라. 본래로 智種子을 심어 갗추니 禪하는 여가에   이 노장의 어록을 열람하고 증입한바가 있어 평생의 애응지물을 벗어 버렸음이라.  위로부터  불조의 혀끝(설한바)에 한가지도 의심이 없더라.  이 또한 고탑주스님이 운문의 말씀을 보고  운문의 대를 이었음이니  바로 이것을 말함이라.  고로 제물을 내고 판을 새겨 그래서 그 전  함을 넓히니  뒤에 오는 자들이 한가지로 깨닫기를 기대함이라. 이러한 마음이   어찌 얕고 얕으리오.  이러한 공덕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행원은 더욱 굳어지는 것을   가히 볼수 있으리라.   바라는 바는 법류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법의 파도가 길이 조계를 이어서 전등이 밝게 길이 빛나고 그 광명이 소실(소실산.숭산 소립사의 근거가 되는 한 봉우리.  불법전등에 비유)을 더욱 밝힘에 있음이라.

           계축년 정월 십일 아육왕산 사문 석숭유가 무이당에서 서함

 

 
    
          大珠禪師語錄卷上
                               唐沙門慧海撰

   ◆頓悟入道要門論
 
 1. 獻辭

    稽首和南十方諸佛과 諸大菩薩衆하노이다. 弟子今作此論하오나  恐不會聖心노니   願賜懺悔하시고 若會聖理어든 盡將廻施一切有情하야 願於來世에 盡得成佛  하노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제자가 이 논을 지었으나 성심에 계합치 못하였을까
  두려우니 부디 참회를 받아주시고 만약 성심에 계합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    다.


  2. 頓悟

問 : 欲修何法하야사 卽得解脫고        
 무슨법을 닦아야 해탈할수있는가
答 : 唯有頓悟一門하야 卽得解脫이니라. 
  오직 일문을 돈오해야 해탈할수있느니라.
問 : 云何爲頓悟오                 
   무엇이 돈오이냐.
答 : 頓者는 頓除妄念이오 悟者는 悟無所得이니라. 
 돈이란것은 몰록 망념을 끊음이요, 오라는 것은 무소득을 깨달아야 함이니라.
問 : 從何而修오
  무엇을 쫒아 닦을수 있는냐.
答 : 從根本修니라.     
    근본을 쫒아 닦을수 있다.
問 : 云何從根本修오    
    무엇이 근본을 쫒아 닦음인가.
答 : 心爲根本이니라.      
    마음이 근본이니라.


問 : 云何知心爲根本고.   
 어떻게 마음이 근본인줄을 아는가.
答 : 楞伽經云 "心生卽種種法生하고 心滅卽種種法滅이라"    
   능가경에 마음이 생한즉 가지가지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한즉 가지가지 법이 멸한다고 했고
     維摩經云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卽佛土淨이니라"   유마경에 이르되 정토를 얻고자할진댄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함이니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 불토도 깨끗해짐이라고 했고
     遺敎經云 "但制心一處하면 無事不辨이니라"   유교경에 이르되 다만 마음을 한 곳에 놓을 줄알면 이루지 못할것이 없다했고
     經云 "聖人은 求心不求佛이요 愚人은 求佛不求心이라 智人은 調心不調身하고 愚人은 調身不調心이니라".    경에 이르되 성인은 마음을 구하고 불을 구하지 아니함이요, 어리석을 사람은 불을 구하고 마음을 구하지 않나니라. 지혜있는 사람은 마음을 조절하고 몸을 조절하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조절하고 마음을 조절하지 않는다고 했고
     佛名經云 "罪從心生하야 還從心滅이라" 하니 故知善惡一切 皆由自心이니   所以로 心爲根本也니라. 若求解脫者는 先須識根本이니 若不達此理하고   虛費功勞하야 於外相에 求하면 無有是處니라.    불명경에 이르되 죄가 마음을 쫒아서 생하고 도리어 마음을 쫒아서 멸한다고 하니  고로 알라 선악의 일체의 것이 모두 자심을 말미암음이라. 소이로 마음이 근본이 됨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하는 자일진댄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함이니 만약 이 이치를 요달하지 못하고 헛되이 공력을 낭비하야 바깥 형상에 좌지우지된다면 맞지 않음이로다.
     禪門經云 "於外相에 求하면 雖經劫數나 終不能成이요 於內覺觀하면 如一念頃에 卽證菩堤니라.
선문경에 이르되  바깥형상에 끄달려 구한다면 비록 아승지겁을 닦더라도 끝내는 이루지 못할것이요, 안으로 깨달아 관한다면 마치 일념의 순간에 바로 보리를 얻으리라.
 
  3. 禪定

問 : 夫修根本에 以何法修오       
  대저 근본을 닦음에 무슨법을 닦으리까.
答 : 惟坐禪禪定하면 卽得이니라 禪門經云 求佛聖智인댄 卽要禪定이니 若無禪定이면 念想이 喧動하야 壞其善根이니라.  오직 좌선으로 선정을 닦으면 된다.  선문경에 이르되 부처의 성지를 얻고자할진댄 반드시 선정을 닦아야 할것이니 만약 선정이 없다면 생각 생각이 어지럽게 동하야 그 선근을 부서뜨린다했다.

問 : 云何爲禪이며 云何爲定고 
  무었이 선이며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答 : 妄念不生이 爲禪이요 坐見本性이 爲定이니라.
本性者는 是汝無生心이요 定者는 對境無心하야 八風不動이니 八風者는 利衰毁譽稱譏苦樂이 是名八風이니라. 若得如是定者는 雖是凡夫나 卽入佛位니  何以故오   菩薩戒經云 "衆生이 受佛戒하면 卽入諸佛位라 하니 得如是者는 卽名解脫이며 亦名達彼岸이라 超六度越三界하야 大力菩薩이며 無量力尊이니 是大丈夫니라.
     망념이 불생이 선이요  앉아서 본성을 봄이 정이니라.   본성이란 것은 이 너의 무생심이요.  정이란 것은 경계에 대하야 무심하야 여덟 바람에도 부동함이니 팔풍이란 것은 이익 쇠퇴 헐고 기리고 칭찬 시기 고통 쾌락등이 팔풍이라한다. 만약 이같은 정을 얻은 자일진댄 비록 이 범부이나 바로 불위에 들어가리니 어찌해서 그러한가.
    보살계경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받으면 바로 모든 부처의 지위에 들어 간다하니 이와같이 얻은자가 해탈이라 이름하며 또한 피안에 이르렀다고 이름하나니라. 육도와 삼계를 초월한 대력보살이며 무량력존자이니 이 대장부이니라.

  4. 無住處 無住心

問 : 心住何處卽住오       
 마음이 어디에 주하면 곧 주함이 됨인가
答 : 住無住處卽住니라 
   무주처에 주하면 주하는 것이 된다

問 : 云何是無住處오   
    무엇이 이 무주처인가
答 : 不住一切處가 卽是住無住處니라.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 것이 이 무주처에 주하는것이니라.

問 : 云何是不住一切處오 
 무엇이 이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것인가.
答 : 不住一切處者는 不住善惡有無內外中間하며 不住空하며 亦不住不空하며 不住定亦不住不定이 卽是不住一切處니 只箇不住一切處卽是住處也라. 得如是者는 卽名無住心也니 無住心者는 是佛心이니라.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 것은 선악과 유무와 내외중간에도 주하지 않으며 공에도 주하지 않고 또한 불공에도 주하지않고 정에도 주하지 않고 정하지 못함에도 주하지 않는 것이 곧 이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것이니 단지 이낱 일체처에 주하지 않음이 곧 이 處에 住함이니라. 이와같음을 얻은 것이 이 무주심이라 이름함이니 무주심이 곧 이 불심이니라.
問 : 其心似何物고     
   그 마음이 무엇과 같은고.
答 : 其心이 不靑不黃不赤不白하며 不長不短不去不來며 非垢非淨이며 不生不滅하야 湛然常寂이 此是本心形相也니 亦是本身이라 本身者는 卽佛身也니라.
     그 마음은 청도 황도 적도 백도 아니며 길지고 짧지도 가지도 오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생하지도 멸하지도 아니하야 담연해 항상 고요한 것이 이 본심의 형상이니 또한 이 본신이라. 본신이란 것은 곧 불신이니라.

  5. 自性見

問 : 身心은 以何爲見고 是眼見 耳見 鼻見 及身心等見가  
  신심은 무엇으로 보는가.   이 눈으로 봄인가. 귀로 봄인가 코로 봄인가 내지 심심등으로 봄인가.
答 : 見無如許種見이니라. 
  봄은 이러한 허다한 봄이 있지 않다.

問 : 云 旣無如許種見인댄 復何見고 
 이르되 이미 이러한 봄이 없을진댄 다시 무엇으로 봄을 삼는가.
答 : 是自性見이니 何以故오 爲自性이 本來淸淨하야 湛然空寂일세 卽於空寂體中 에 能生此見이니라.    이는 자성으로 봄이니 어찌 그러한가.  자성이 본래로 청정하야 담연 공적하기 때문에 곧 공적체중에서 능히 이 봄을 낸다.

問 : 只如淸淨體도 尙不可得이온대 此見은 從何而有오  
  단지 이러한 청정체도 오히려 얻지 못함이온 하물며 이 봄은 어디로 부터서 있음인가.
答 : 喩如明鑑中에 雖無像이나 能見一切像이니 何以故오 爲明鑑無心故니라. 學人이 若心無所染하야 妄心이 不生하야 我所心이 滅하면 自然淸淨이니 以淸淨 故로 能生此見이니라 法句經云 於必竟空中에 熾然建立이 是先知識也라 하니라.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이 비록 상이 없음이나 능히 일체의 상을 보는것과 같음이니  어찌 그러한가  밝은 거울이 무심한 연고라.  학인이 만약 마음이 물듬이 없어 망심이 생하지 아니하야 나와 상대되는 마음이 멸하면 자연히 청정하야 청정한 연고로 능히 이 봄이 생기나니라.  법구경에 이르되 필경 공가운데 맹렬히 나툼이 이 선지식이니라하니라.


  6. 涅槃經의 二句

問 : 涅槃經 金剛身品에 不可見이나 了了見이요 無有知者이나 無不知者라하니 云何오.    
   열반경의 금강신품에 가히 볼수 없음이나  밝게 요달해 봄이요 아는 것이 없지만 알지 못하는것도 없다하니  이 무엇인고.
答 : 不可見者는 爲自性體가 無形하야 不可得故오 是名不可見也니라.
     然이나 見不可得者는 體寂湛然하야 無有去來일세 不離世流나 世流不能流하야  坦然自在卽 是了了見也니라. 無有知者는 爲自性이 無形하야 本無分別이 是名無有知者요 無不知者는 於無分別體中에 具有恒沙之用하야 若能分別一切하야 卽無事不知하나니 是名無不知者니라. 般若偈云 般若는 無知나 無事不知며 般若는 無見이나 無事不見이니라.
가히 볼수 없다 한 것은 자성체가 형상이 없어 가히 얻지 못하는 때문일세 이 가히 볼수 없다고 이름함이나  그러나 가히 얻을수 없음을 본자는 당체가 고요해 담적하야 오고 가고함이 없음일세 세간의 흐름을 여이지 않음이나 세간에 흐름이 또한 능히 흐르게  할 수가 없어 탄연히 자재한즉 이에 료료히 봄이니라.  아는것도 없다는 것은 자성이 형상이 없어 본래로 분별이 없음이 이 무유지자라고 이름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함은  분별이 없는 바탕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이 있어서  또한 능히 일체를 분별하야 곧 알지 못하는 일이 없나니 이것이 무불지자라 이름함이니라. 반야경에 이르되 반야는 앎이 없음이나 알지 못하는 일도 없음이며  반야는 봄이 없음이나 보지 못하는것도 없음이니라.

  7. 不見有無가 眞解脫

問 : 經云 不見有無眞解脫이라하니 何者是不見有無오.
答 : 證得淨心時에 卽名有요 於中에 不生得淨心想이 卽名不見有也니라. 得想無生無住하야 不得作無生無住想이 卽是不見無也니 故로 云不見有無也니라. 楞嚴經云 "知見에 立知하면 卽無明本이요 知見에 無見하면 斯卽涅槃이라 亦名解脫이니라".
경에 이르되  유무를 보지 않음이 이 참 해탈이라하니 무엇이 이 유무를 보지 않음인가.   답이라.  정심을 증득할때에 곧 있음이나 이 가운데에 정심을 얻었다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곧 있음을 보지 않음이요.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아니해서 무생무주의 생각을 짖지 않음이 곧 이 없음을 보지 않음이니 고로 이르되 유무를 보지 않음이니라.  능엄경에 이르되 알았다는 견해에 알았다는 것을 세우면 곧 이 무명의 근본이요  알았다는 견해에 견해가 없으면 이 곧 열반이라. 또한 해탈이라 이름한다고했다.

  8.無所見

問 : 云何是無所見고 
   무엇이 이 보는바가 없음인가.
答 : 若見男子女人及一切色相하되 於中에 不起愛憎하야 如不見으로 等이 卽是無所見也니라.   만약 남자와 여자와 그리고 일체의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마치 보지 아니한것과 같으리니 곧 이 보는 바가 없음이니라.

問 : 對一切色像時 卽名爲見이니 不對色像時도 亦名見否아
答 : 見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  곧 본다라고 함이니 색상을 대하지 아니할때도 본다라고 하는가.  답이라.  본다라고 한다.
問 : 對物時엔 從有見이나 不對物時엔 云何有見고
  대상을 대할때는 있다는 견에 따름이나  대상을 대하지 아니할때엔 어떻게 보는 것이 되는고. 
答 : 今言見者는 不論對物與不對物이니 何以故오 爲見性이 常故로 有物之時로 卽見이며 無物之時도 亦見也니라. 故知物은 自由來去나 見性은無來去也니  諸根도 亦爾니라.
지금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상을 대할때나 대상을 대하지 아니할때나를 막론하나니 어찌그러한가 보는 성품은 항상하는 때문이라. 그래서 대상이 있을때나 대상이 없을때나 봄이니라.  고로 알라 대상은 오고 가고 함이 있음이나  보는 성품은 오고가고함이 없음이라.
問 : 正見物時 見中에 有物否아 
  정히 대상을 볼적에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있음인가.
答 : 見中에 不立物이니라.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없다.

問 : 正見無物時 見中에 有無物否아  
  정히 대상이 없음을 볼때에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없음을 보는가 마는가.
答 : 見中에 不立無物이니라.         
   보는 가운데에 대상이 없음을 세우지 아니한다.

問 : 有聲時卽有聞이어니와 無聲時에도 還得聞否아
  소리가 있을때에 곧 듣거니와 소리가 없을때도 들을수 있음인가.  
答 : 亦聞이니라.                  또한 들음이로다.
問 : 有聲時엔 從有聞이어니와 無聲時엔 云何得聞고  
 소리가 있을때는 소리를 따라서 듣거니롸  소리가 없을때는 어떻게 들을수 있는가.
答 : 今言聞者는 不論有聲無聲이니 何以故오 爲聞聲이 常故로 有聲時卽聞이며 無聲時 亦聞이니라.   지금 듣는다고 말하는 것은 소리가 있고 없고를 상관함이 아님이니 어찌그러한가. 소리를 들음이 항상하기 때문에 소리가 있을때도 또한 들으며 소리가 없을때도 또한 들음이로다.

問 : 如是聞者是誰오 
   이같을진댄 듣는 놈이 이 누군가.
答 : 是自性聞이며 亦名知者聞이니라.    이는 자성이 듣음이며  또한 아는 놈이 들음이라.


  9. 頓悟門宗旨와 體用


     1, 宗旨와 體用

問 : 此頓悟門은 以何爲宗이며 以何爲旨며 以何爲體며 以何爲用고 
 이 돈오문은 무었으로 종으로 삼으며 무엇으로 旨로 삼는며 무엇으로 체로 삼으며 무엇으로 용으로 삼는가.
答 : 無念으로 爲宗이요 妄心不起로 爲旨며 以淸淨爲體요 以智爲用이니라.
무념으로 종으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로 삼고 청정으로 체로 삼고 지로서 용으로 삼는다. 
問 : 旣言無念爲宗인댄 未審커라 無念者는 無何念고  
 이미 무념으로 종으로 삼을진댄 알지 못커라  무념이 어떤 념이 없음인가.
答 : 無念者는 無 邪念이요 非無正念이니라.    무념은 삿된 념이 없음이요 정념이 없지 않음이니라.
問 : 云何爲邪念이며 云何名正念고 
  무엇이 삿된념이며 무엇이 정념인가.
答 : 念有念無 卽名邪念이요 不念有無 卽名正念이며 念善念惡이 名爲邪念이요 不念善惡이 名爲正念이니 乃至苦樂生滅取捨怨親憎愛가 幷名邪念이요 不念苦樂等이 卽名正念이니라.
있다는 생각에 없다는 생각이(은연중 유무를 느끼는 생각) 곧 이 삿된  생각이요 유무를 생각하지 않음이 이 정념인것이며  선악을 생각함이 사념이요  선악을 생각하지 않음이 정념이다. 내지 고락과 생멸과 취사와 원친과 증애가 모두 사념이요  고락등을 생각하지 않음이 곧 이 정념이다.
問 : 云何是正念고 
  무엇이 정념인가.
答 : 正念者는 有念菩堤니라   정념은 보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問 : 菩提는 何得否아       
   보리는 어떻게 얻는가.
答 : 菩提는 不可得이니라               보리는 가히 얻을수 없다.
問 : 旣不可得인댄 云何有念菩提오.  
 이미 불가득인댄 어떻게 보리를 생각한다말인가.
答 : 只如菩提는 假立名字라 實不可得이며 亦無前後得者니 爲不可得故로 卽無有念이라 只箇無念이 是名眞念이니 菩提는 無所念일세니라. 無所念者는 卽一切處無心이 是無所念이니 只如上說如許種無念者는 皆是隨事方便으로 假立名字니 皆同一切요 無二無別이니라. 但知一切處에 無心하면 卽是無念也니 得無念時에 自然解脫이니라.
단지 저 보리는 짐짓 이름을 지음이라 실로는 얻을수 없으며  또한 앞서 얻지 못하다가 뒤에 얻음이 없나니  가히 얻지 못함을 말미암는 연고로 곧 념이 있을수가 없다.  단지 이낱 념이 없음이 이 참되 념인것이니 보리는 념하는 바가 없음인연고라.  념하는 바가 없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이 념하는 바가 없음이니 단지 앞의 허다한 념이 없다는 말은 모두 일을 따른 방편으로 이름자를 세움이니 모두 한가지라서 다른 것이 없다.  고로알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만하면 곧 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때가 자연 해탈이니라.
問 : 云何行佛行고 
  어떻게 불행을 해야하는고.
答 : 不行一切行이 卽名佛行이며 亦名正行이며 亦名聖行이니 如前所說 不行有無憎愛等이 是也라. 大律卷五 菩薩品云 一切聖人은 不行於衆生行이오 衆生은 不行如是聖行이니라.
일체의 행을 행하지 않음이 곧 이 불행이라 이름하고 또한 정행이라 이름하나니  앞의 설한바  유무증해등을 행하지 않음이 곧 이것이라.  대율의 5권 보살품에 이르되 일체의 성인은 중생의 행을 행하지 않음이오 중생은 이같은 성행을 행하지 못함이로다고했다.
問 : 云何是正見고             
   무엇이 이 바로봄인가
答 : 見無所見이 卽名正見이니라.  봄이나 보는바가 없음이 곧 바로보는것이다.
問 : 云何名見無所見고 
 어찌해서 봄이나 보는바가 없다하는고.
答 : 見一切色時에 不起染着이니 不染着者는 不起愛憎心일새 卽名見無所見也니라. 若得見無所見時엔 卽名佛眼이니 更無別眼이니라. 若見一切色時에 起愛憎者는 卽名有所見이니 有所見者는 卽是衆生眼이라 更無別眼作衆生眼이니 乃至 諸根도 亦復如是니라.          일체의 대상을 볼때에 착을 일으키지 않음이니  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좋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않음일세 곧 봄이나 보는바가 없다함이라.  만약 봄이나 보는바가 없음을 얻었다면 곧 불안이라고 이름함이니 다시 달리 불안이 있지가 않다.  만약 일체의 대상을 볼때에 좋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곧 보는바가 있음이니 보는바가 있다는 것은  곧 이 중생안이라 다시 달리 눈이 있어 중생안을 지음이 아님이니 내지 모든 眼도 또한 이와 같음이니라.

     2, 二性空
問 : 旣言以智爲用者인댄 云何爲智오
 이미 지로서 용이 된다고할진댄 무엇이 지가 됨인가.
答 : 知二性空이 卽是解脫이오 知二性不空하면 不得解脫이니 是名爲智며 亦名了邪正이며 亦名識體用이니라. 二性空이 卽是體라 知二性空이 卽是解脫이니 更不生疑하면 卽名爲用이니라. 言二性空者는 不生有無 善惡愛憎 名二性空이니라.   二性이 공함이 곧 이 해탈인줄 알며 이성이  공하지 않음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아는 것이  이 智라.  또한 사와 정을 요달함이며 또한  체용을 안다고 함이니라.  이성의 공함이 곧 이 체이요  이성이 공함이 곧 이 해탈인줄 알아서 다시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이  곧 용이라 이름한다.  이성이 공하다고 하는 것은 유무를 내지 않고 선악 증애를 내지 않음을 이성공이라 이름한다.


  10. 頓悟 檀波羅蜜

問 : 此門은 從何而入고    
    이 門은  무엇을 쫒아 들어가는가.
答 : 從檀波羅蜜入이니라.   단바라밀(보시바라밀)을 쫒아 들어간다.

問 : 佛說六波羅蜜이 是菩薩行이어늘 何故로 獨說檀波羅蜜이며 云何具足而得入也오  
불이 설한 육바라밀이 이 보살행이어늘 어찌해서 유독 단바라밀만을 설하는것이며 어떻게 구족히 들어갈수 있으리오.
答 : 迷人은 不解五度皆因檀度生이니 但修檀度하면 卽六度悉皆具足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나머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을 인해서 생한줄을 모르나니 단지 단바라밀만 닦아도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것이다.
問 : 何因緣故로 名爲檀度오  무슨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하는가.
答 : 檀者는 名爲布施니라.  단이란 것은 보시라 이름함이라.

問 : 問 : 布施何物고     
     무슨 물건을 보시하는고
答 : 布施却二性이니라.   이성을 보시해버림이라.
 
問 : 云何是二性고
  무엇이 이성인고
答 : 布施却善惡性하며 布施却有無性과 愛憎性과 空不空性과 定不定性과 淨不淨性하야 一切를 悉皆施却하면 卽得二性空이니라. 若得二性空時에 亦不得二性空想이며 亦不得作念有施想이 卽是眞行檀波羅蜜이니 名萬緣이 具絶이니라. 萬緣이 具絶者는 卽一切法性空이 是也니 法性空者는 卽一切處無心이 是니라. 若得一切處無心時에 卽無有一相可得이니 何以故오. 爲自性이 空故로 無一相可得이니라 無一相可得者는 卽是實相이니 實相者는 卽是如來妙色身相也라 金剛經云 離一體諸相이 卽名諸佛이라 하니라.           선악성을 보시해버리고 유무성을 보시해 버리고 증애성과 공불공성과 정부정성과  淨不淨性을 보시해버려 일체를 모두 보시해 버리면 곧 이성공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이성공을 얻을때에 또한 이성공의 생각을 얻지 못함이며 또한 보시했다는 생각도 짖지 않음이 곧 이 참 보시바라밀을 행함이니 만연이 모두 끊어졌다할 수 있다. 만연이 모두 끊어진 것은 곧 일체법성이 공함이 바로 이것이요.  법성이 공한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이것이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을 얻을떼에  곧 한 생각상도 가히 있음이 없음이니 어찌그러한가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한 상도 가히 얻을수 없음이니라.  한 상도 가히 얻을수 없는 것이 곧 이 실상이니 실상이란 것은 곧 이  여래묘색신상이니라.  금강경에 이르되 일체의 상을 여임이 곧 제불이라 하니라.

問 : 佛說六波羅蜜이어늘 今云何說一하야 卽能具足고. 願說一具六法之因하라.    불이 육바라밀을 설했거늘  지금 어찌 하나를 설해서 곧 능히 구족할수 있는고  원컨대 하나를 설해서 육을 구족할수 있는 이유를 설하시라.
答 : 思益經云 網明尊이 爲梵天言하되 若菩薩이 捨一切煩惱하면 名檀波羅蜜이니 卽是布施요 於諸法에 無所起가 名尸羅波羅蜜이니 卽是持戒요 於諸法에 無所傷이 名 提波羅蜜이니 忍辱이요 於諸法離相이 名毘離耶波羅蜜이니 卽是精進이요 於諸法無所住가 名禪波羅蜜이니 卽是禪定이요 於諸法無戱論이 名般若波羅蜜이니 卽是智慧라 是名六法이니라. 今更名六法함에 不異一捨 二無起 三無傷 四離想 五無住 六無戱論이니라. 如是六法은 隨事方便으로 假立名字요 至於妙理하야는 無二無別이니 但知하라 一捨 卽一切捨요 無起卽一切無起이니라 迷徒不契하야 悉謂有差하나니  愚者는 滯其法數之中하야 卽長輪生死로다. 告汝學人하노니 但修檀之一法하면 卽萬法이 周圓이온 況於五法豈不具耶아.
사익경에 이르되 망명존이  범천에 일러 말호대 만약 보살이 일체번뇌를 여이면 단바라밀이라 이름하나니 곧 이 보시이요.  제법에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바라밀이라 이름함이니 곧 지계이요  제법에 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니 인욕이요  제법에 상을 여임이 비리야바라밀이니 곧 이 정진이요  제법에 주하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니 곧 이 선정이요  제법에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니 곧 이 지혜라  이것이 여섯 법이니 지금 다시 여섯법을 이름함에  첫 번째는 사,두번째는 기, 세 번째는 상, 네 번째는 리상, 다섯 번째는 무주, 여섯 번째는 희론과 달리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여섯법은 일을 따르는 방편으로 짐짓 이름자를 세움이요 묘리에 이르러서는 둘도 아니고 다름도 없음이니 다만 알라 한번 버림에 곧 일체를 버림이요 일어남이 없음에 일체가 일으키지 않음이로다. 미혹자는 알지 못하야 모두 차이가 있다함이니   어리석은 자는 法數의 가운데에 막혀 길이 생사에 윤회함이로다. 너희들학인에게 이르노니 다만 단바라밀만 닦으면 곧 만법이 두루 원통함이온 하물며 다섯법에 어째 구족하지 못할까.

  11. 三學을 함께 쓰다

問 : 三學等用이라 하니 何者是三學이며 云何是等用고
 삼학을 함께 쓴다하니 무엇이 이 삼학이며 어떻게 같이 쓰리까.
答 : 三學者는 戒定慧是也니라.  삼학은 계정혜가 이것이라.

問 : 云何是戒定慧오. 
 무엇이 이 계정혜이오,
答 : 淸淨無染이 是戒요 知心不動하야 對境寂然이 是定이요 知心不動時에 不生不動想하며 知心淸淨時에 不生淸淨想하야 乃至善惡을 皆能分別하되 於中에 無念하야 得自在者是名爲慧也니라 若知戒定慧體俱不可得時에 卽無分別者이니 卽同一 라 是名三學等用이니라.
청정해서 더럽지 않음이 이 계요  마음이 부동함을 알아 경계에 대하여도 고요함이 이 정이요  마음이 부동함을 알 때 부동하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할때에 청정한 상을 내지 아니하야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생각이 없어서 자재함을 얻는 것이 이 혜이니라 만약  계정혜체를  모두 가히 얻을수없음을 알때에 분별하는 것이 없을지니 곧  一體라 이것을 이름하야 삼학을 같이 쓴다함이라.

  12. 無生心

問 : 若心住淨時에 不시是着淨否아 
   만약 마음이 정에 주할때에 이 정에 착함인가 아님인가.
答 : 得住淨時에 不作住淨想이 是不着淨이니라.  정에 주함을 얻을때에 정에 주한다는 생각을 짖지 않으면 이  정에 착함이 아님이니라.

問 : 心住空時에 不是着空否아  
  마음이 공에 주할때에 이 공에 주함인가 아님인가.
答 : 若作空想하면 卽名着空이니라.   만약 공이라는  생각을 지으면 곧 공에 착함이 됨이라.

問 : 若心得住無住處時에 不是着無住處否아
 만약 마음이 무주처에 주함을 얻을때에 이것이 무주처에 착함인가 아님인가.
答 : 但作空想하면 卽無有着處라 汝若欲了了識無所住心時인댄 正坐之時에 但知心에 莫思量一切物하고 一切善惡을 都莫思量하라. 過去事는 已過去而莫思量하면 過去心이 自絶이니 卽名無過去事요 未來事未至니 莫願莫求하면 未來心이 自絶이니 卽名無未來事요 現在事는 已現在라 於一切事에 但知無著하면 無著者는 不起憎愛心이 卽是無著일세 現在心이 自絶이니 卽名無現在事라 三世不攝일세 亦名無三世也니라. 心若起去時에 卽莫隨去하면 去心이 自絶이요 若住時에 亦莫隨住하면 住心이 自絶하야 卽無住心이니 卽是住無住處也니라. 若了了自知 住在住時에도 只物住이니 亦無住處이요 亦無無住處也니라. 若自了了知하야 心不住一切處하면 卽名了了見本心也며 亦名了了見性也라. 只箇不住一切處心者는 卽是佛心이며 亦名解脫心이며 亦名菩提心이며 亦名無生心이며 亦名色性空이니 經云證無生法忍是也니라. 汝若未得如是之時에 努力努力하야 勤加用功하야 功成自會니 所以會者는 一切處無心이 卽是會니라. 言無心者는 無假不眞也니 假者는 愛憎心이 是也오 眞者는 無愛憎心이 是也니라. 但無憎愛心하면 卽是二性空이니 二性空者는 自然解脫也니라.
다만 공이란 생각이면 곧 착하는 곳이 있음이 없음이라 너가 만약 무소주심을 밝게 요달할려고 할때 정히 좌선함에 다만 마음에 일체 대상을 思量하지 말며 일체선악을 모두 思量말줄을 알아라.  과거의 일은 이미 과거일세 사량하지 않으면 과거심이 저절로 끊어질것이니 곧 과거사가 없다고 함이요, 오지 않은 미래사에 다만 원하지도 말고 구하지도 않으면 미래심이 저절로 끊어지니 곧 미래사가 없음이 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했음이라 일체의 일에 다만 무착할줄을 알면  무착이란 것은 증애의 마음을 내지 않음이 곧 이 무착일세 현재심이 저절로 끊어져서 곧 현재사가 없다 이름함이니라. 삼세를 섭하지 않음일세 또한 삼세가 없다고 이름함이라. 마음이 만약  일어나갈때에 곧 일어나감을 따르지 말면 과거심이 저절로 끊어짐이요 만약 주할때에 또한 따라 주하지 아니하면 또한 주하는 마음이 저절로 끊어져서 곧 무주심이니 곧 이 무주처에 주함이니라.  또한 住함에 住해 있을때라도 단지 境界인 住일 뿐임을 료료히 스스로 앎이니 또한 주하는 곳이 없으며 또한 무주처도 없음이니라. 만약 마음이 일체처에 머무름이 없음을 스스로 료료히 안다면  곧 료료히 본심을 봤다고 할것이며  또한 료료히 성품을 봤다고 할 것이다. 단지 이낱 일체처에 주하지 않는 것이 곧 이 불심이며 또한 해탈심이며 또한 무주심이며 또한 색성공이니 경에 이르되 무생법인이란 것이 이것이다. 너가 만약 이같음을 얻지 못했다면 노력노력하야 부지런히 닦아 나간다면 공을 이루어 저절로 알게되리니  안다라고한것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앎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한 것은  假가 眞아님이 없음이니 假는 증애심이 이것이요, 眞은 증애심이 없음이 이것이라. 다만 증애심만 없다면 곧 이 이성공이니 이성이 공한자는 자연히 해탈함이라.
 
  13. 常住

問 : 只坐爲用가 行時도 亦得爲用否아 
  단지 앉아서만 用功을 해야되는가 아니면 행시에도 또한 용공할수있는가.
答 : 今言用功者는 不獨言坐니 乃至 行住坐臥所造運爲一切時中에 常用無間이 卽名常住也니라.
지금 힘쓴다는 말은 단지 앉는것뿐이 아님이라.  내지 行住坐臥의 나아가는바 행동의 일체시중에 항상 用功하야 간단함이 없음이 곧 이름하야 상주가 됨이니라.

 14. 五種法身

問 : 方廣經云 五種法身은 一實相法身이요 二功德法身이요 三法性法身이요 四應化法身이요 五虛空法身이라하니 於自己身에 何者是오           방광경에 이르되 오종법신은  첫째는 실상법신이요, 둘쩨는 공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넷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라하니 자기 법신에서 어느것이 이것인가.
答 : 知心不壞가 是實相法身이요 知心含萬象이 是功德法身이요 知心無心이 是法性法身이요 隨根應說이 是應化法身이요 知心無形하야 不可得이 是虛空法身이니 若了此義者는 卽知無證也니라. 無得無證者는 卽是證佛法法身이요 若有證有得을 以爲證者는 卽邪見增上慢人也며 名爲外道니 何以故오 維摩經云 舍利弗이 問天女曰 如何所得이며 何所證하야 辯乃得如是오 天女答曰 我無得無證하야 乃得如是라하니 若有得有證하면 卽於佛法中에 爲增上慢人也니라.
심이 불괴함이 이 실상법신인줄 앎이요, 심이 만상을 함용함이 이 공덕법신임을 앎이요. 심이 무심함이 이 법성법신인줄 앎이요.  근기에 따라 응해 설법하는 것이 이 응화법신이요, 심이 형상이 없어 가히 얻을수 없음이 이 허공법신임을 앎이니 만약 이 뜻을 아는자일진댄 곧 증할것도 없음을 알 것이다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을진댄 곧 이 불법신을 증득함이거니와 만약 증함이 있고 얻음이 있어 이것으로 증득했다하는 자는 곧 사견의 增上慢人이니 外道라 이름함이라  어찌그러한가 유마경에 이르되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어 가로되 무슨 얻음과 무슨 證辯으로 이같음을 얻었는가  천녀가 답해 이르되 내가 얻음이 없고 증함이 없어서 이에 이같음을 얻었나이다하니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한 것이 있다면 곧 불법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됨이니라.

  15. 等覺과 妙覺

問 : 經云 等覺妙覺이라 하니 云何是等覺이며 云何是妙覺고 
  경에 이르되 등각과 묘각이라 하니 무엇이 이 등각이며 무엇이 이 묘각인고.
答 : 卽色卽空이 名爲等覺이요 二性空故로 名爲妙覺이며 又云 無覺無無覺이 名爲妙覺이니라.
곧 색이 곧 공을  등각이라함이요  이성이 공한연고로 묘각이라 이름하며  또 이르되 각이 없고 각이 없음도 없음을 묘각이니라.

問 : 等覺與妙覺이 爲別가 爲不別가  
  등각과 묘각이 같은가 다른가
答 : 爲隨事方便으로 假立二名이라 本體是一이요 無二無別이니 乃至一切法이 皆然也니라.
 일을 따른 방편으로 짐짓 두가지 이름을 세웟으나  본체는 이 하나이요  달리 둘이 아님이이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다.

  16. 說法

問 : 金剛經云 無法可說이 是名說法이라 하니 其義云何오 
 금강경에 이르되 무법을 가히 설함을 이 설법이라 이름한다하니 그 뜻이 어떠하오.
答 : 般若體畢竟淸淨하야 無有一物可得이 是名無法可說이요 卽於般若空寂體中에 具恒沙之用하야 卽無事不知是名說法이니 故云無法可說이 是名設法이니라.
반야체는 필경에 청정하야 일물도 가히 얻을수 없음이 이 무법을 가히설한다고 이름함이니 곧 반야공적체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이 갖추어 있어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이 설법이라 이름함이라.  고로 이르되 무법을 가히 설함이 이 설법이라 이름함이니라.

  17. 金剛經의 輕賤

問 :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호대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어늘 以今世人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卽爲消滅하야 當得阿 多羅三 三菩堤라하니 其義云何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경을 수지 독송호대 사람이 輕賤하면 이사람은 선세의 죄업으로 응당히 악도에 떨어져야 하거늘 지금 당세인(當世人)이 輕賤하는 연고로 선세죄업이 곧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을것이다라하니  그 뜻이 어떠한고.
答 : 只如有人이 未遇大善知識하야 唯造惡業하야 淸淨本心이 被三毒無明所覆하야 不能顯了故로 云爲人輕賤也요 以今世輕賤者는 卽是今日에 發心求佛道하야 爲無明이 滅盡하야 三毒이 不生하야 卽本心이 明朗하야 更無亂念하고 諸惡이 永滅故로 以今世人輕賤也요 無明이 滅盡하야 亂念이 不生하면 自然解脫故로 云當得菩提니 卽發心時名爲今世요 非隔生也니라. 
 단지 어떤사람이 대선지식을 만나지 못해서 악업만 지을줄을 알아 청정본심이 삼독무명의 덮힌바가 되어서 능히 드러나지 못하는 연고로  사람이 경천한다함이요.  금세인이 경천한다는 것은 지금 금일에 발심해서 불도를 구하야 무명이 멸해 다하고 삼독이 생하지 아니하야
곧 본심이 밝고 밝아서 다시 잡념이 없고 제악이 길이 멸하는 연고로 지금 세인이 경천함이요 무명이 멸해 다해서 어지러운 생각이 생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하는 연고로 마땅히 보리를 얻을 것이다함이니 곧 발심할때가 금생임을 말함이요 隔生이 아님이라.
 
  18. 如來의 五眼

又云 如來五眼者는 何오  
  여래 오안은 어떤것이냐.
答 : 見色淸淨이 名爲肉眼이요 見體淸淨이 名爲天眼이요 於諸色境乃至善惡에 悉能微細分別하야 無所染着하고 於中에 自在名爲慧眼이요 見無所見이 名爲法眼이요 無見無無見이 名爲佛眼이니라.
대상 청정함을 보는 것을  육안이라하고  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을  천안이라 하고  모든 색경과 내지 선악에(모든 대상에) 잘 미세 분별하야 물든 바가 없고 그 가운데에 자재함을 혜안이라 이름함이요.  봄에 보는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봄도 없고 봄이 없음도 없음이 불안이니라.

  19. 大乘과 最上乘

又云 大乘最上乘 其義云何오 
  대승과 최상승의 뜻이 어떠한고
答 : 大乘者는 是菩薩乘이요 最上乘者는 是佛乘이니라.   대승이란 것은 이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것은 이 불승이니라.

愚問 云何修而得此乘고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는고.
答 : 修菩薩乘者는 卽是大乘이라 證菩薩乘하야 更不起觀하고 至無修處하야 湛然常寂하야 不增不減이 名最上乘이니 卽是佛乘也니라      보살승을 닦는자는 곧 이 대승이요. 보살승을 증득하야 다시 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곳이 없는곳에 이르러서 담연히 상적하야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음이 최상승이라 이름함이니 곧 이 불승이니라.

  20. 定慧를 함께 씀 

問 : 涅槃經云 定多慧少하면 不離無明이요 定少慧多하면 增長邪見이요 定慧等故로 卽名解脫이라하니 其義云何오. 
  열반경에 이르되 정이 많고 혜가 적으면  무명을 벗어나지 못함이요, 정이 적고 혜가 많으면 사견을 증장함이요, 정혜가 동등한연고로 곧 해탈이라 이름하나니 그 뜻이 어떠한고.
答 : 對一切善惡하야 悉能分別이 是慧요 於所分別之處에 不起愛憎하며 不隨所染이 是定이니 卽是定慧等用也니라.   일체선악을 대하야 모두 능히 분별할줄앎이 이 혜요, 분별하는 바의 곳에 증애를 일으키지 않음이 이 정이니 곧 이 정혜를 동등히 씀이니라.


  21. 鏡像과 定慧

又問 無言無說이 卽名爲定이라 하니 定言說之時에 得名定否아. 
 무언 무설이 곧 정이라하니 정히 설할때에 정이라 이름할수 있는가.
答 : 今言定者는 不論說與不說常定이니 何以故오 爲用定性일새 言說分別時에 卽言說分別도 亦定이니라. 若以空心으로 觀色時엔 卽觀色時도 亦空이며 若不觀色不說不分別時도 亦空이며 乃至見聞覺知도 亦復如是니라. 何以故오 爲自性空하야 卽於一切處悉空이니 空卽無着이요 無着이 卽是等用이라.爲菩薩이 常用如是等空之法하야 得至究竟故로 云定慧等者이니 卽名解脫也니라.
지금 정이란 것은 설함과 설하지 않음을 막론하고 항상 정이니 어찌그러한고 정성을 쓰는 연고일세 언설분별할때에 곧 언설분별도 또한 정이니라.  만약 공심으로 색을 관한다면 곧 색을 관할때에도 또한 공이며  또한 색을 관하지 않아 설하지도 않고 본별하지도 않을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견문각지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찌 그러한가.  자성이 공하야 곧 일체처에 모두 공함이니 공한즉 착함이 없음이요 착함이 없은즉 이 동등히 씀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같이 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至함을 얻는 연고로 정혜를 동등히 쓴다라고 이른 것이니 곧 해탈을 이름함이니라.
今更爲汝譬喩顯示하야 令汝惺惺得解斷疑하리라. 譬如明鑑照像之時에 其明이 動否아 不也니라. 不照時에 亦動否아 不也이라. 何以故오 爲明鑑用無情明照일새 所以照時도 不動이며 不照하야도 亦不動이니라. 何以故오 爲無情之中에 無有動者며 亦無不動者니라 又如日光이 照世之時에 其光이 動否아 不也니라. 若不照時에 動否아 不也니라. 何以故오 爲光無情故로 用無情光照일새 所以不動이며 不照亦不動이니라. 照者는 是慧요 不動者는 是定이니 菩薩이 用是定慧等法하야 得三菩提故로 云定慧等用이 卽是解脫也니 今言無情者는 無凡情이요 非無聖情也니라.
지금 다시 너를 위하여 비유를 현시해서 너로 하여금 성성히 의심을 끊게 하겠다.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이 상을 비출 때  그 밝음이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그러면 비추지 아니할때에 또한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어찌 그러한고 밝은 거울이 무정히 밝게 비춤을 씀일세 소이로 비출때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아니할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하나니라.  어째 그러한가 무정한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음이며 또한 움직이지 아니하는것도 없음이니라.  또 마치 태양의 광명이 세상에 비추일에 그 광이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만약 비추지 아니할떼에 움직이는가 아님이니라  어째 그러한가 광이 무정한연고니 무정히 광을 비춤을 씀일세 소이로 부동하며  비추지 아니함에도 또한 부동함이니라.  비춤은 이 혜요, 부동은 이 정이니 보상리 이 정혜의 동등한 법을 써서 삼보리를 얻는 연고로 정혜를 동등히 씀이 곧 이 해탈이라 함이니 범정만이 없음이요, 성정이 없음은 아님이니라.

問 : 云何是凡情이며 云何是聖情고 
 무엇이 이 범정이며 무엇이 이 성정인가.
答 : 若起二性하면 卽是凡情이요 二性空故로 卽是聖情이니라. 
 만약 이성을 일으키면 곧 이 범정이요, 이성이 공한 연고로(이성공; 不生 有無 善惡 憎愛등)  곧 이 성정이니라.


  22. 言語道斷心行處滅

問 : 經云 言語道斷心行處滅이라 하니 其義如何오 
 경에 이르되 언어도단심행처멸이라하니 그뜻이 어떠하오.
答 : 以言顯義에 得義言絶이니 義卽是空이요 空卽是道라 道卽是絶言故로 云言語道斷이니라. 心行處滅은 爲得義實際更不起觀이니 不起觀故로 卽是無生이라 以無生故로 卽一切色性空이니 色性空故로 卽萬緣이 俱絶이요 萬緣俱絶者는 卽是心行處滅이니라.
말로서 뜻을 나툼에 뜻을 얻고 말이 끊어짐이니  뜻은 곧 이 공이요, 공은 곧 이 도이라.  도는 곧 이 말을 끊는 연고로 언어도단이라하니라.  심행처멸은 義實際를 얻어 다시 관을 일으키지 않음이니  관을 일으키지 않은 연고로 곧 이 무생이라.  무생을 쓰는 연고로 곧 일체 색성이 공함이니 색성이 공하는 연고로 곧 만연이 모두 끊어짐이요  만연이 모두 끊어진 것이 곧 이 심행처멸이다.

  23. 如如

問 : 如如者는 云何오 
 여여는 무엇인가.
答 : 如如者는 卽是不動義니 心眞如故名如如也니라. 是知過去諸佛도 行此行하야 亦得聖道며 現在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며 未來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니 三世所修證道도 無二故로 名如如也니라 維摩經云 諸佛도 亦如也며 至於彌勒도 亦如也며 至於一切衆生도 悉皆如也니 何以故오 爲佛性은 不斷有性故也니라.     여여는 곧 이 부동의 뜻이니 심진여인연고로 여여라 이름하니라.  이로서 알라 과거 제불도 이 행을 행하여 또한 성도를 얻었으며 현재불도 이 행을 행하여 또한 도를 이루었으며 미래불도 이 행을 행하여 또한  도를 이룸이니  삼세의 닦아 증득하는 도가 둘이 아닌연고로 여여불이라 이름함이라.  유마경에 이르되 제불도 또한 如하며 미륵불에 이르기 까지
또한 如하며  심지어 일체중생에 이르기 까지 모두 如하나니 어째 그러한가 불성은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성품이 아닌연고니라.

  24. 卽色卽空

問 : 卽色卽空하고 卽凡卽聖이 是頓悟否아
 바로 색이 곧 공이고 바로 범이 곧 성이 이 돈오인가 
答 : 是니라.  맞다.

問 : 云何是卽色卽空이며 云何是卽凡卽聖고
  무엇이 이 즉색즉공이며 무엇이 이 즉범즉성인가.
答 : 心有染이 卽色이요 心無念이 卽空이며 心有染이 卽凡이요 心無染이 卽聖이니라.
又云 眞空妙有故로 卽色이요 色不可得故로 卽空이니 今言空者는 是色性이 自空이요 非色滅空이며 今言色者는 是空性自色이요 非色能色也니라.    마음에 물들임이 있음이 색에 즉함이요.  마음에 념이 없음이 공에 즉함이며  마음에 물듬이 있음이 범에 즉함이요 마음에 물듬이 없음이 성에 즉함이니라.  또한 이르되 진공묘유인 연고로 색에 즉함이요.  그러나 색은 불가득인 연고로 공에 즉함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색성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멸한 공이 아님이며  지금 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공성이 저절로 색하는 것이요 색이 능히 색하는 것이 아닌것이니라.


  25. 盡과 無盡

問 : 經云 盡無盡法門如何오
 경에 말한 진법문과 무진법문은 무엇인가.
答 : 爲二性空故로 見聞無生이 是盡이니 盡者는 諸漏盡이요 無盡者는 於無生體中에 具恒沙妙用하야 隨事應現하야 悉皆具足하야 於本體中에 亦無損減이 是名無盡이니 卽是盡無盡法門也니라.
이성이 공하기 때문에 견문이 생함일 없음이 이 진이니 진은 모든 루가 다함이요. 무진은 무생가운데에 항사묘용을 보아서 일을 따라 응해 나투어서 모두 구족하야 본체 가운데에 또한  덜어 손실이 없음이 이 무진이라 이름함이니 곧 이 진무진 법문이니라.

問 : 盡與無盡이 爲一가 爲別가     
     진과 무진이 같음인가 다름인가.
答 : 體是一이나 說卽有別이니라.        체는 이 하나이나 설함인즉 다름이 있음이니라.

問 : 體旣是一인댄 云何說別고
  체는 이미 이 하나인댄 어떻게 설이 다름인가.
答 : 一者는 是說之體요 說是體之用이니 爲隨事應用故로 云體同說別이니라. 喩如天上一日下에 置種種盆器盛水하면 一一器中에 皆有於日하야 諸器中日이  悉皆圓滿하야 與天上日로 亦無差別故로 云體同이요 爲隨器立名하야 卽有差別일새 所以有別이니라. 故云體同이나 說卽有別이라 하나니 所現諸日이 悉皆圓滿하야 於上本日에 亦無損減故로 云無盡也니라.  하나인 것은 이 설의 체이거니와 설은 이 체의 용인것이라  일을 따라 응해 쓰는 연고일세  체는 같으나 설은 다르다고 함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하늘위의 한 태양아래에 가지가지 그릇에 물을 담으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에 다 태양이 있음이어든 모든 그릇가운데에 태양이 모두 원만하야 하늘위의 태양으로 더불어 쪼금도 차이가 없는 연고로 체가 동이라고 함이요  그릇에 따라 이음을 세움인댄은 곧 차별이 있음일세 소이로 다름이 있음이니라.  고로 이르되 체는 같음이나 설은 곧 다름이 있음이라하나니 나툰바의 모든 태양이 모두 원만하야 하늘위의 태양으로 더불어 또한 손감이 없는 연고로 무진이라 이름함이니라.

 
  26. 不生不滅

問 : 經云 不生不滅이라 하니 何法不生이며 何法不滅고
 경에 이르되 불생불멸이라 하니 무슨법이 불생이며 무슨 법이 불멸이닛고.
答 : 不善이 不生이요 善法이 不滅이니라.    불선이 불생이요 선법이 불멸이니라.

問 : 何者善이며 何者不善고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불선이냐
答 : 不善者는 是染漏心이요 善法者는 是無染漏心이니 但無染無漏하면 卽是不善不生이며 得無染無漏時에 卽淸淨圓明하야 湛然常寂하야 畢竟不遷일새 是名善法不滅也니 此卽是不生不滅이니라.
불선은 이 물들어 새는 마음이요. 선법은 이 물들어 새지아니하는 마음이라. 다만 무염무루하면 곧 이 불선이 불생이니 무염무루를 얻을때에 곧 청정원명하야 담연상적해서 필경에 바뀜이 없음일새 이 이름이 선법불멸이니 이것이 곧 이 불생불멸이니라.
 
  27. 佛戒는 淸淨心

問 : 菩薩戒云 衆生이 受佛戒하면 卽入諸佛位라 位同大覺已하야 眞是諸佛子라하니 其義云何오
보살계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수지하면 곧 제불의 위에 든다  위도 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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