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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구례 화엄사(1)/ 채색되지 않은 자연의 美.. 0
 작성자: 다나  2009-05-27 19:34
조회 : 3,269  
■ 화엄사의 建築美


▲ 화엄사 전경


화엄사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km 떨어진 곳,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백제 성왕 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로서 화엄경의 화엄 두 자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한다.

한국의 삼보사찰이라 하면 불·법·승의 통도사,해인사,송광사를 꼽는데 교학(敎學)을 덧붙인다면 화엄사를 으뜸으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법장(중국 화엄종 제3조)의 화엄경 수현기를 국내 10개 사찰에 나눠줬는데 이 절은 그 중의 하나로 현재 각황전 안에 보전돼 있는 석경은 그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화엄사 경내에는 각황전과 석등 4사자3층석탑 등 4점의 국보와 대웅전, 동서 5층석탑, 원통전, 사자석탑 등 5점의 보물등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 화엄사의 가람배치

해동선종대가람(海東禪宗大伽藍)인 화엄사 일주문(一柱門)에 들어서면 거북모양 비슷한 아주 오래된 비석이 있다. 『연 』이다. 머리는 용, 몸둥이는 거북이, 날개가 있는 동물 모양을 한 조각위에 벽암(碧巖)스님 비석이다.
연을 지나면 금강문이 나온다. 금강문 왼쪽으로 덕장전(德藏殿), 오른쪽으로 법회장소 및 종무소인 연화당(蓮華堂)이 있으며, 천왕문(天王門) 왼쪽으로 만월당(滿月堂), 오른쪽으로 요사체인 청풍당(淸風堂)과 원융요(圓融寮)가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보제루(普濟樓)가 다가선다. 단청이 되지 않은 아주 오래된 고건물이다. 그옆으로 운고각(雲鼓閣)이 있으며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범종각(梵鐘閣)이 보인다.

보제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앞에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아래는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과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큰방인 적묵당(寂默堂)과 왼편으로는 봉향각(奉香閣)이 있다.
대웅전을 향해 계단을 올라서면, 동쪽으로 명부전(冥府殿)과 삼전(三殿), 서쪽으로는 영전(影殿),원통전(圓通殿), 나한전(羅漢殿), 4사자감로탑(四獅子甘露塔),석등(石燈)과 각황전(覺皇殿)이 배치되어 있다.
각황전 왼쪽으로 동백나무 숲과 어우려져 있는 백팔 계단을 올라가면 노송(老松)으로 둘러싸인처님 사리탑인 4사자 3층사리석탑(四獅子三層舍利石塔)과 견성당(見性堂)이 있다.

일반적으로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 대웅전이 일직선상으로 가람배치를 하는반면, 화엄사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 하나의 태극형상을 이루며, 보제루, 운고각으로부터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또 하나의 태극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 태극형상은 진리를 표현한 상징적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첫 번째 태극은 세간법(世間法)을 비유하고, 두 번째 태극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비유한 것이다.
세간이란 세상이라는 뜻으로 세속을 이르며, 세상의 사물, 번뇌에 얽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의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출세간이란 세간을 뛰어 넘어 여의고 있는, 즉 부처님의 열반법(涅槃法)을 말한다.
세간법(중생), 출세간법(부처님)은 법성원융(法性圓融)하여 두가지 상이 따로 없으니 이것이 바로 화엄법계를 말하는 것이다.

대웅전에는 화엄법계의 부처님은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彿)을 모시고 있다.

○ 입구전경

♧ 일 주 문 ♧ 천 왕 문





♧ 연


금강문 오른쪽에 있는 벽암스님의 비석을 받치고 있는 동물이름이 연으로서 머리는 용(龍), 몸은 거북이,날개를 달고 있다. 이 충무공의 군사(軍師)이며 부장군으로 활약하신 자운스님이 연기존자께서 타고 오신 연의 모습을 본따 거북선을 만들게 하였다 . 이 동물이 바로 연이요, 거북선의 원형이다.


♧ 사천왕상 ♧ 동오층석탑 문양


♧ 동오층석탑 문양


○ 범 종 각

♧ 범종각 기단


♧ 종 문 양


♧ 종 문 양


○ 보 제 루

보제루는 법요식때 스님이나 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세운 누각 건물로, 지형의 높이차이를 조형적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보제루의 처마선(Line) ♣ 보제루의 측면


♣ 보제루의 기초는 예술이다. ♣ 보제루의 박공부분


○ 당 간 지 주

당간지주는 신라 선덕여왕5년(784)에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선종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간지주는 기단 위에 두 개의 돌기둥을 세워 상하 구멍을 내어 나무를 끼우고 당간을 고정한 흔적과 양쪽 돌기둥 사이에 간주를 받치는 원형으로 된 간대가 있다.










○ 대 웅 전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전면에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단석과 대석계가 있다.
기둥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게 되어 있으며,높은기둥의 주열(柱列) 매우 정돈된 느낌을 준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14)에 각성(覺性)대사가 재건한 조선중기이후의 대표적인 다포계 건물이다.





















♧ 대웅전의 선(Line)



♧ 대웅전의 기초 ♧ 대웅전의 활주


○ 화엄사 각황전 (華嚴寺 覺皇殿) ; 『한국의 美』의 극치라 하고 싶다.

원래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고, 670년(신라 문무왕10)에 의상대사가 건립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02년(숙종 28)에 다시 세우면서 각황전으로 개칭되었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2층의 다포식 건물이며 빛바랜 나무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신라 때 조성된 길이 30m의 석조기단 위에 선 웅장한 건물로, 기둥머리에 창방(昌枋)을 끼고 그 위에 평방(平枋)을 둘렀다.




















▲ 활주와 서까래의 선(線)에서 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평방 위에는 기둥 위와 주간(柱間)에 공포(包)를 올렸으며, 공포는 상하층 모두 2출목(二出目)으로 되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현재 건물 중앙에 길게 설치된 불단 밑에는 석각(石刻) 화엄경석(華嚴經石)이 수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중기의 양식을 잘 간직하여 국보 제 67호로 지정 될 만큼 가치 있는 건물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 공포와 서까래가 선(線)의 미(美)로 와닿는다.



























◀ 1,2층의 활주가 건물의 균형미를 더해준다.



♧ 공포의 모양이 화려 하면서도 채색되지 않아 더욱 정감이 간다.

♧ 2출목형태의 공포 어디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 문살 하나하나에도 숨결이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기초, 어느것 하나 쉽게 처리하지 않고 조형미를 더했다.

○ 각황전 앞 석등(覺皇殿 石燈)

각황전 앞 석등은 국보 제12호로 지정돼 있으며, 전체높이 6.4 로서 세계최대의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신라 석등의 기본형인 팔각을 따르고 있으나, 간주석(竿柱石)을 장구모양의 고복형으로 만들어 당시 전라지방에서 유행한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섬세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스케일이 위엄을 느끼게 한다.

팔각 하대석 각 면에는 짝을 이룬 안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귀꽃이 있는 8엽 복련이 크게 조각되어 있으며, 운문과 팔각 받침으로 간주석을 받고 있다.

간주석은 중앙에 2조 횡대를 돌리고 팔각의 면마다 횡대 위에 4엽 꽃무늬를 장식하였다.
팔각의 화사석에는 화창을 네 곳에 내었을 뿐 장식이 없다.

지붕돌은 얇은 편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며 추녀 위에는 귀꽃을 크게 세웠다.

상륜부는 사다리꼴의 노반과 팔각 앙화를 얹고 그 위에 보륜, 귀꽃이 달린 보개를 차례로 얹었으며, 정상에 연화가 장식된 보주를 얹어 마무리하였다.

이와같이 화려한 장식을 갖춘 이 석등의 조성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함통연간(860-873)을 전후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 원통전 앞 사자탑(圓通殿 獅子塔)

보물 제300호로 지정된 사자탑은 이중기단에 무문의 중석과 부연을 갖춘 갑석을 구비한 사자탑이다.

상층의 기단 네 귀에 4구의 사자를 배치하였고, 그 사자상 밑에는 복련석을 두어 받치게 하였다.

방주형으로 된탑신은 높으며 탑신 각면에는 방광(方圈)을 돌렸으며 그 속에 다시 신장상 1구씩을 배치 조각 하였다. 2층 기단 위에 탑신을 얹고 있는 모습의 이형이라 해도 석탑이라 단정할 만큼 모습이 완전한 것이 아니여서 석탑형 건조물, 흔히 노주(露柱)라 불린다.

외형을 살펴보면, 여러개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방형의 지대석 위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하층기단 중석을 얹었으며, 그 위에 갑석을 마련하고 복련좌대에 올라앉은 네 마리의 사자를 귀퉁이에 장식하여 상층기단을 삼았다.

사사자 삼층석탑의 사자들과 마찬가지로 머리에는 복련대좌와 대칭되는 앙련(仰蓮)을 이고, 상면에 복련(伏蓮)을 장식한 갑석을 놓았으며, 그위에 탑신부를 모시고 있다. 두 마리는 입을 벌리고, 또 두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높직한 탑신의 각 면에 네모난 궤를 두른 다음 신장상을 한 구씩 얕게 조각하였다. 탑신위에도 한 매의 갑석을 놓았는데, 아래쪽에 앙련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도 반구형의 돌출 석재가 있다.

석탑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이 점이다.

이 사자탑은 그 조형이 특례의 이형일 뿐만 아니라 사사자를 이용한 조각 수법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양식과 조각 수법이 섬약해 보이는 탑 형으로 9세기경의 작품으로 본다.

○ 영 전(影殿)

영전은 응향각(凝香閣)의 중노전(中爐殿)으로 대웅전, 나한전의 소임을 맡은 스님이 거주했던 전각 이었는데 영전으로 바뀌면서 연기조사, 자장율사, 원효성사, 의상조사, 도선국사등 화엄사의 역대조사,선사, 대사 분들의 영정(影幀)을 모셨던 전각입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영정이 1976년에 도난 했으며, 현재는 보물인 화엄석경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원통전은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인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703년(숙종 29)에 중건 한 것이지만 신라시대의 기단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건물의 주존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한 쪽에는 1897년에 조성된,칠성,독성,·산신탱화가 걸려져 있습니다.




















[ⓓ200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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