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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남원 만복사지를 찾아서.. 0
 작성자: 다나  2009-05-27 19:59
조회 : 3,092  
○남원 만복사지..
이곳은 고려 문종(1046~1083)때 처음세운 만복사가 자리했던 터이다.
기린산 아래에 지은 사찰로 일설에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고려 문종 때 세운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찰에는 대웅전, 천불전, 영상전, 종각, 명부전, 나한전, 약사전이 있었으며 5층석탑, 석불입상, 당간지주, 석인상 등이 있어 규모가 매우 큰 사찰이었다고 하며 만복사지 부근에는 백뜰, 썩은 밥배미, 중살골 등의 지명이 있어 당시의 사찰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백뜰은 만복사지 앞 제방을 말하는데, 승려들이 빨래를 널어 이곳이 온통 하얗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썩은 밥배미는 절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는 장소로 승려의 수가 많았다는것을 알 수있다.

만복사지는 정유재란 남원성 싸움시 소실된 후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고한다.
근래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만복사는 가운데 목탑을 세우고 동-서-북쪽에 법당을 둔 일탑삼금당(一塔三金堂)식 배치였다.

이 사찰은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에 실린 만복사저포기의 무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중기까지 번창하던 만복사는 정유재란(1597)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석탑과 돌 유물 몇개가 절터를 지키고 있어, 일면이나마 웅장했던 옛 사찰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경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오층석탑(보물제30호),불상좌대(보물제31호),당간지주(보물제32호),석불입상(보물제43호)가 있다.

○ 만복사지 전경

♤ 만복사지 전경

○ 만복사지 석좌(萬福寺址 石座)

♤ 만복사지 석좌(萬福寺址 石座)

이 석좌는 불상을 올려놓았던 육각형의 받침돌로, 만복사를 지으면서 함께 만든것으로 보인다.
아랫부분은 각 측면에 꽃장식을 담은 코끼리 눈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연꽃을 조각하였다.
중간부는 아래쪽보다 너비가 줄어 들었는데, 모서리마다 짧은 기둥모양을 새겼다.
윗부분은 다시 넓어지며 그 옆면 역시 연꽃으로 장식하였던 듯하다.
위쪽바닥중앙에는 불상을 고정시키기위해 파놓은 사방 30cm가량의 네모난 구멍이 있다.

○ 만복사지 오층석탑

♤ 만복사지 오층석탑

이 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세운것으로, 높은 받침부 위에 5층의 몸체와 지붕을 얹었다.
윗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현재 남아있는 탑의 높이는 5.57m이다. 1968년 탑을 수리하던중 1층 몸체에서 사리보관함이 발견되었다. 층마다 몸체와 지붕은 각각 별개의 돌로 만들었는데, 첫 번째 층이 유달리 높다.
각 층 몸체의 귀퉁이에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지붕마다 귀퉁이 아래를 약간 치켜올렸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으로 단순한 구조이지만, 2층부터 지붕과 몸체사이에 넓은 돌판을 끼워 넣은점이 특이하다.

○ 만복사지 석불입상

이 불상은 고려초기에 만복사를 지으면서 함께 만든 것으로, 바위에 부처의 서 있는 모습을 조각한 석불이다.
부처 바깥쪽에는 몸에서 발하는 빛을 묘사한 광배가 있는데, 위쪽 일부가 소실되었다.
받침으로는 팔각형의 납작한 돌을 놓고 그 위에 연꽃으로 장식한 둥근돌을 얹었다. 머리의 윤곽은 뚜렸하고
고수머리는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얼굴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에 미소를 머금어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어깨로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자락과 원만한 굴곡을 이루는 몸매가 어우러져 자연스럽고도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뒷면에는 부처의 앉아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2003.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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