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꾸물 주름이 잡힌 애벌래는 자신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주름을 이용해 어떻게든 용을 쓰며 계단을 오르려 하고 있었다.
물론 애벌래가 계단을 기어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불가능 한 것이다. 그 둥글둥글한 몸으로는 조금만 벽에 가까이 가도 언제나 ‘데구르르’하고 굴러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기 일 수 인 것이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싶어 한참을 그 앞에 앉아서 애벌래를 지켜보았다.
내리쬐는 뙤약볕은 등을 따갑게 하고 있어 오랫동안 그러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다못해 인내력이 바닥난 것이다. 하지만 애벌래 만은 아직도 지치지 않는지 계속해서 오르며 구르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혹시 저렇게 구르는 게 재미있는 건 아닐까. 또 다시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애벌레를 보며 어린아이가 미끄럼틀을 타는 장면을 이 떠올랐다. 그러나 애벌래는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
나는 순간적으로 그것에 대해 연민이 느껴졌다. 애벌래를 집어서 내손에 살며시 올려놓은 나는 계단을 올랐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손을 펼쳐보았다. 다행히 애벌래는 다치지 않았지만 애벌래는 몸을 바짝 오므려 둥굴게 말고 있었다. 마치 죽지 않으려는 것처럼...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동도 없이 바짝 오므린 애벌래는 오히려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었다. 오직 갖고 태어난 주름만으로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몸을 오므리고 있는 것이다. 위험할 것 같으면 몸을 오므리라고 누구에게 배운 걸까. 그것은 분명 본능적인 것임이 틀림없음에도 나는 그것이 애벌레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하는 애벌래의 ‘삶의 의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나는 애벌래를 바닥에 놓아주었다. 꾸물거리는 애벌래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던지 살며시 몸을 피고는 몸을 조금씩 휘저어 보였다.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애벌래는 다시 어딘가를 향해 기기 시작했다. 나는 애벌래를 지켜보며 바닥에 앉았다. 앉은 바닥은 불 위에 올려놓은 프라이팬 마냥 뜨끈뜨끈했다. 작고 하얀 애벌래에게 뜨거운 뙤약볕을 받은 바닥은 상당히 뜨겁게 느껴질 터였다. 아마도 지금 꿈틀 대고 있는 주름만큼이나 더 쭈글쭈글 해지는 것은 아닐까. 바닥은 모래하나 깔려있지 않은 평평한 돌바닥이라 햇볕에 잘 달궈져 있었다. 나는 살며시 다가가 애벌래의 그림자가 되어 주었다. 갑자기 그림자가 생기자 애벌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쉴 그늘을 찾은 여행자처럼... 어쩌면 그것은 경계였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날아온 발은 애벌래를 밟았고 다행히 애벌래는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다른 생각을 할 세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머리가 백지 상태가 된 나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발의 주인은 그러고도 모자라 밟은 발을 바닥에 쓰윽하니 닦아 내었다. 닦아낸 자리엔 초록의 진액이 그 색조차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발에 닦여진 방향을 따라 그려져 있었다. 그냥 물감도 칠하지 않은 붓으로 물만 뭍혀 쓰윽하니 붓 터치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이미 애벌래는 있지 않았다. 너무도 허망한 나머지 나는 발로 애벌래를 터트린 장본인을 올려다보았다.
“아~죽였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옥상위에 심은 배추를 가리켰다.
“배추흰나비 애벌래야”
“왜 죽였어...?”
조용히 나는 물었다. 화가 났다.
“그대로 나뒀어도 배추를 찾지 못해서 바닥을 기다가 햇볕에 말라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을꺼야”
“그럼 배추위에 놔주면 되잖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곤 정색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넌 벌래먹은 배춧잎을 제일 싫어하잖아. 너는 네가 먹을 배추를 이런 벌레가 갉아먹어도 상관없는 거야?”
“그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에 배춧잎에 벌레먹은 흔적이 있으면 불쾌해서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애벌레가 꼭 죽어야만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얼마 시간이 가지도 않아 뜨거운 태양은 바닥에 펼쳐진 애벌래의 잔해마저 말려버려 바람결에 쓸려 보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