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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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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을 딛고 선 석림(1967-1970)
1968년 4월 21일 석림회는 전국순회 포교를 다녀온 1회 졸업생 스님 다섯명과 백상원에서 간담회를 갖는다. 첫 졸업생 스님이 배출된 것이다. 같은 해 7월 13일 3 일간 봉은 교육원에서 봉사 활동을 갖고 같은 해 6월에는 회지발간을 결의하고 그 준비 작업에 들어가 7월 14일 석림 제1집을 발행하였다.

같은 해 7월 20일에는 현행 교육에 대한 종합의견서를 전국에 배부하여 그 조사결과를 석림 제2집에 공표했다. 10월 1일에는 회지 2호 편집에 착수했으며, 11월에는 '승가교육에 관한 문제' 설문지를 전국 강원에 배포했다.

1968년 석림회 회원들은 덕산 이한상 거사의 도움으로 한국불교 최초로 양복기지로 된 두루마기를 착용, 일종의 제복으로 삼고 통 학했는데 이전의 승복과 교복 논란에 이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68년 11월 3일자 대한불교지에 이 문제와 관련한 특집기사가 눈에 띈다. '종비생 교복착용 찬반론' 이란 제하에 법정스님이 '사문의 옷을 벗기지 말라'는 반론을 기고한 것이다. 법정스님은 반론에서 "종비생은 학생 이전에 승단에 적을 둔 사문이기 때문에 삭발염의로 특징 지워지는 외형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스님은 "승려들에 대한 예외를 입학 당시부터 인정한 학교측은 미시적인 교칙 자구에 구애됨이 없이 동국 건학이념인 불교정신 구현에 부응, 사문의 옷을 벗기려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스님은 "속복을 입겠다는 이유가 일반 학생들과 잘 어울리겠다는 것인데 어울리고 안어울리고는 옷모양이나 빛깔에서보다는 인품에 달린 것으로 사문은 어디까지나 사문의 처지에서 어울리면 된다"면서 "종비생들이 승복을 벗고 속복을 입는 일이 묵인된다면 전체 승단에 속복이 합리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이어 "출세간의 사문의 승복을 누가 벗길 수 있으며, 또 사문이 어찌 옷을 벗을 수 있느냐"며 비분강개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편 1969년은 종비생 1기들이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한 해이기도 했다. 졸업생들은 종단의 새로운 도제양성이라는 면에서 큰 기대와 보람이 있었고, 1기 졸업생들은 그후 각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 종단의 동량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70년과 1971년에는 별 특별한 활동이 눈에 띄지 않고 교육 활동 등 지속사업에 정진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시기에는 1970년 10월 제 3차 석림회 주최 친선배구대회를 개최한 것이 자료에 나와 있다. 이 시기에 대해 5기 법혜 스님은 "정화 직후였기 때문에 비구종단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한 한편, 백상원에서 발우 공양을 실시하는 등 규율이 엄격했다"고 회상한다.

석림회 8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6기의 법조스님은 "강원 교육만을 받아서는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생각에서 강원 졸업후 학교에 올라왔다"면서 "승가의 교육체계에 있어서는 답습보다는 활동의 폭을 넓히는 개선 보완이 절실하며 불교 이외 다른 강의도 들어 시야의 폭을 넓히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학교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