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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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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의 진리와 민주의 함성(1986-1990)

1986년 석림회 회원들은 한국불교 1600년 이래 최대의 쾌거로 일컫는 9.7 해인사 승려대회에 적극 참가, 한국불교 자주화를 큰 소리로 외쳤다. 22기의 법안스님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9.7승려대회에 있어 석림회의 역할은 다른 어느 승가단체보다 막강했다"고 자부한다. 법안스님과 본원스님 등 회원들이 실무 준비 책임을 맡았고, 성보 스님이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결의문 낭독을 맡기도 했다는 것이다.

같은 해 10.27 법난을 올바르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개최했고, 석림동문회 중심으로 백상원 건립과 비구니 기숙사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한편 1987년 경주분교에 불교학과가 신설되면서 경주에도 정식으로 석림회가 창립되었다. 그 후 경주석림회는 1987년 경주분교에 불교와 관련된 5개 단체로 불교도연합회가 구성되면서 그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7년 석림회는 '故 박종철 열사 49재'를 주도적으로 나서 봉행하는 한편, 5.18 광주항쟁 계승 및 호헌 철폐 민주쟁취를 위한 단식 정진대회를 갖는 등 사회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등 파사현장의 보살도를 적극 구현하려 노력했다.

같은 해 광주 원각사 경찰 난입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고 '故 이 한열 열사 추모제'를 가졌다. 또 종단내로는 매종 폭력승 규탄 및 정법수호 결의대회 성사에 주역을 담당했다. 이 같은 스님들의 파사현정의 노력과 전국민의 열화같은 민주화 열기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6.29선언을 통한 직선제 쟁취라는 성과로 나타나게 된다. 법안 스님은 "석림의 정신이란 역사와 사회 그리고 종단과 학교에 책임을 지는 주인의 정신이며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선두자라는 사명감을 철두철미하게 지니고 있는 승가의 정신"이라고 토로한다. 한편 1987년 가을 석림회는 '10. 27 법난 주간' 선포식을 갖고 법난 이 주는 교훈과 앞으로의 나아갈 길에 대한 다각적 모색을 강구하는 한편, 88 학원자주화투쟁 석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는 등 현실 참여의 폭을 한층 넓혔다.

1989년 한국불교 현실극복을 위한 석림토론회를 가졌으며 민주자주통일불교협의회 주최 3.1 민주해방운동 계승 애국불교도법회에 주동적으로 참여했다.

또 종단 분규 종식을 위한 기도정진법회를 개최하는 한편, 석림회의 오랜 숙원이던 백상원 신축공사의 불사에 적극 박차를 가한다. 1990년 6월 석림인의 오랜 꿈이던 백상원 기초 공사가 착수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