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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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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전통을 불교 중흥의 밑거름으로(1991-1993)

1991년 역시 대내외적으로 복잡다단한 일이 연이어 발생하여 석림회 또한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같은 해 5월 3일에는 조계사에서 석림회, 중앙승가대학 등 학인 100여 명이 모여 종정 추대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같은 해 5월 23일 부처님오신날 여의도에서 조계사간에 있었던 제등행렬 중에 일어난 경찰 폭력에 대해 규탄법회와 항의 농성을 갖고 제등행렬시 경찰의 폭력만행에 대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같은 해 6월 12일 '故 강경대군 49재 및 민주열사 천도재'를 정각원에서 석림회, 중앙승가대, 정토구현 전국승가대회의 주최로 거행하였다. 7월부터 10월까지 백상원 건립을 위한 만등불사 백일기도를 가졌고, 10월 9일 마침내 소망하던 현대식 기숙사인 백상원 준공 및 백일기도 회향식을 가졌다.

1992년 3월 13일 석림동문회 10차 정기총회 및 한국 불교발전을 위한 대 토론회를 개최하고 불교발전을 위한 일꾼으로서의 인식전환을 위한 3대항의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으며, 이어 1993년 9월 5-6일 '석림동문회 임시총회 및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서 '석림인의 위상과 역할'이란 주제로 강원도 낙산유스호스텔서 열린 이 세미나에서는 동국대 김용정 교수가 '협동과 불교의 중흥발전' 이란 특별강의를 했고, 4기 송병욱 법사가 '현대포교에 있어서 석림인의 역할'이란 주제 발표를, 5기 최법혜스님이 '석림인의 종단 역할'을, 13기 박진관 스님이 '석림동문의 사회역할'이란 주제를 발표하는 등 다각적인 분야에서 진지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돼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모임과 관련 한겨레신문은 '석림동문회 종단 개혁 주체 변신 선언'이란 제하의 큰 기사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석림동문회가 이 모임에서 정관 개정을 통해 "한국불교 지도자들의 모임으로서 불교 발전을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고 성격을 새롭게 규정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은 석림동문회가 26기까지 5백 8명의 인재를 배출했는데 이들 중 주지직을 맡고 있는 이가 1백 20명이 며 종회회원 7명, 군법사 25명, 학계79명, 예술계 12명 등 각 분야에 폭넓게 진출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동문회가 종단의 신진엘리트 집단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불교 계에서 현대교육을 통해 불교와 산업사회를 매개할 유일한 전문집단인 석림동문회가 바람직한 자기 변신을 이루려면 문중과 파벌 의식을 버리고 능동적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데 의견이 집약됐다"는 사실의 보도를 잊지 않았다. 한편 이 해 5월에는 기존의 계속 사업인 순회 포교를 위한 '석림법사단'이 발족되었고 법사단은 여름 방학동안 각지에서 다각적인 포교활동을 펼쳤다. 9월에는 경주 석림회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을 위한 불서판매 행사를 가져 대사회봉사 활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한편, 11월 11일 경주 석림회는 정부가 새로 건설을 추진 중인 경부고속 전철의 경주 캠퍼스 교내통과 결사반대를 위한 결의대회에 적극 참여하면서 석림회 지성스님이 이 대책위의 주요 역할을 맡기로 했다. 12월 27 일에는 백상원 불상 봉불 점안식이 열려 모처럼 동문 선후배가 모여 친선과 단합을 과시했다.

이상이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본 석림 30년의 발자취이다.